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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 "증권사 본사를 옮겨라" 1-③ 홍콩 2라운드

기사등록 : 2008-06-02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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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창간기획] 1부 증권사 해외진출 현장을 가다

[홍콩=뉴스핌 홍승훈기자] 지난 2003년 홍콩의 부동산 가치는 2000조 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2008년 현재 5000조 원까지 불어났다. 불과 5년도 안된 기간에 3000조 원이 뛴 것이다. 이를 누가 먹었겠는가.

현지 전문가들은 홍콩에 수많은 금융기관이 나와있는 가장 큰 이유를 '중국에 없는 정보가 홍콩에는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국 본토의 부자들이 자녀들을 홍콩으로 보내는 이유가 바로 그것인 셈이다.

홍콩에 진출한 국내증권사도 경쟁이 치열한 현장에서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자금력, 능력 등 모든 면에서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선진국에 진출한 국내사들이 주식세일즈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결국 돈 될만한 IB를 찾기 위해 동남아시장 등 세계 구석구석을 찾아 나가는 이유다.

"한국 금융인 지식, 홍콩 돈 많은 아줌마 수준?"

삼성증권 이주상 홍콩법인장은 이렇게 말한다. "골드만삭스 하면 M&A를, 맥쿼리 하면 인프라 스트럭처를, 바클레이즈 하면 채권을 떠올린다. 그만큼 한 분야에서 특화전략으로 브랜딩화에 성공했다는 의미다. 결국 우리도 우리만의 특화된 강점을 키워나가야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어디가 좋다'고 하고 수익이 조금 난다 하면 너도나도 몰려가는 게 한국인들의 특성. '일단 나가고 보자'는 식이다. 이렇다 보니 특별한 전략도 없고, 지원책도 모양새에 그치는게 사실이다.

홍콩 현지 한 법인장은 이렇게 토로했다. "본사에선 인력 몇명 보내고 자본금 보내면 다 된다고 생각한다. 자본도 선진국대비 턱없이 부족하고 거시적 안목도 없다. 해외진출 경험이 밑바닥인 상황인데도 당장 이익이 안나면 철수를 고려하는 경향도 짙다. 실패에 연연해선 안되는데..."

그나마 오너가 있는 한국증권이나 미래에셋증권은 상황이 나은 편. 오너가 직접 발로 뛰며 현장을 챙기기 때문이다.

차별화를 이뤄내려면 우선 금융에 대한 기본기가 필수다. 금융은 여타 서비스산업에 비해 고도의 테크닉이 필요한 산업이다. 제조업체처럼 단가만 낮춘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현대증권 류상인 홍콩법인장은 "의사가 진료비 낮춘다고 고객이 찾아오겠나. M&A 자문수수료가 높다고 골드만삭스를 멀리하는 고객은 흔치 않다"는 비유를 통해 고객 니즈를 충족시키는 증권맨의 능력을 강조했다.

현실을 보자. 국내기업들의 해외 파이낸싱 규모는 급증추세에 있다. 해외기업에 대한 M&A기회도 많아지고 여타 딜도 많아졌다. 그런데 이를 제대로 충족시켜줄 만한 곳은 별로 없다.

류 법인장은 "국내고객들이 글로벌경제에 관심을 갖고 디테일하게 물어봤을 때 이같은 상황을 꿰뚫고 답해줄 수 있는 금융인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한계를 꼬집었다. 그는 "예컨대 한국에도 중국 전문가들이 많다. 하지만 직접 중국 딜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좀더 냉정하게 말하면 한국의 금융인들 지식은 홍콩의 돈 많은 아줌마 수준에 불과하다"고 냉소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개인보다 못한 조직... 마인드 180도 전환해야"

과거 외환위기를 겪을 당시 국내 은행지점장은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이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십 수년 은행에서 일했지만 구조조정을 당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치킨집 정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국은 다르다. 아무리 금융과 경제위기 속에서도 금융회사 직원들은 또 다른 금융회사로 옮겨가는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IMF체제를 겪은지 10년이 지난 상황에서도 누구는 이런 비유를 했다. "국내 금융회사 직원 3000여명을 홍콩에 던져 놓았을 때 1% 정도나 금융회사에 취직을 할 수 있을까"

능력있다는 소문을 익히 접하고 만난 홍콩의 한 법인장은 "홍콩에 와서 개인적으로 '능력 없음'을 깨달았다. 비즈니스할 건 너무 많은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미미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또 기자에게도 지금이라도 홍콩의 언론사에 취업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 뒤 말을 이어갔다. "여기서 인정 받으면 한국에선 인정을 안받을래야 안받을 수가 없다고 본다. 결국 금융회사나 언론사나 마인드를 180도 바꿔야 살 수 있다"고.

그는 이어 "최경주와 박찬호, 박지성 등에 대해 한국인이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죽이되든 밥이되든 일단 나가서 부딪혔기 때문이다. 하물며 개인도 그런데 조직은 두려움에 운신의 폭이 적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그의 말은 본사를 해외로 옮기고 직원을 현지화하는 것이 최선이란 것. 그런 뒤에도 이익이 안나면 그것을 문제삼아야지 현재와 같은 소극적인 대응으로는 글로벌자본과의 경쟁력에서 갈수록 뒤쳐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특히 지금처럼 글로벌 리딩IB들이 서브프라임 파장에 발목이 잡혔을 때, 이 때가 우리에겐 기회라는 말을 거듭 강조했다. 아시아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는다면 글로벌IB로의 성장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사실 홍콩서 치열한 경쟁 분야인 브로커리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IB는 여전히 블루오션이다. 현지에서 서로 경계하는 법인장들도 IB분야는 워낙 범위가 넓고 각자 영역이 달라 국내사간 경쟁이 무의미하다는데 공감했다. 홍콩에서 치열하게 IB를 성장시키고 발전시키면 글로벌IB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역할론

정부의 역할론도 강조됐다.

대우증권 김종선 법인장은 과거 KT 민영화 당시의 예를 들었다. 당시 KT 민영화를 통한 뉴욕증시 상장시 모건스탠리에 주관사를 맡기면서 대우증권, 쌍용증권, LG투자증권(현 우리투자증권) 등에도 기회를 줬다.

김 법인장은 "당시 경험이 지금까지도 도움이 되고 있다. 당시 벌었던 수수료 수익 보다도 중요한 것은 고객 베이스를 알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때 일을 하며 모건스탠리의 고객들을 다 볼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을 몇 번은 해야 트랙레코드도 쌓이고 실력도 쌓인다. 또 이후에 그 고객들을 만나더라도 당시의 일을 기억하며 우리를 신뢰하더라"고 털어놓았다.

현지 법인장 및 IB맨들의 정부에 대한 요구사항은 한결 같았다. IB를 할 기회를 달라는 것이 요지다. 중국만 하더라도 자국내 기업상장시 반드시 중국 증권사 한 곳은 기본적으로 넣어준다는 것.

증권사 한 관계자는 "국내 정부 고위급 관료의 자제들 중 상당수가 외국계IB에 근무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구체적으로 이름을 거론하긴 그렇지만 이런 측면이 국내사를 배제시키는 요인 중 하나라는 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고 아쉬워했다.

현재까지의 금융 경제역사를 돌이켜볼 때 후발주자가 가장 빨리 올라설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M&A'였다. 굴지의 글로벌IB들 또한 이 방법을 통해 최고 대열에 낄 수 있었다.

스위스의 UBS, 독일의 도이치뱅크, JP모간 등 내노라할 만한 글로벌IB들의 예에서도 이같은 사례를 찾을 수 있다.

홍콩의 한 법인장은 이같은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최근 굴지의 베어스턴스를 JP모간이 인수했다. 우리는 무엇을 했나. 물론 국내사가 도전했더라도 서양인들끼리 넘겨주고 넘겨받는 것으로 결론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지켜만 보고 있는 것이 아쉽다. 국내에도 삼성전자나 현대차와 같은 굴지의 글로벌기업이 있다. 보다 공격적으로 세계의 M&A시장으로 나설 때다"

숨은 금융역꾼 일화

이번 취재중 들었던 재미난 에피소드 중 하나.

지난 2003년 싸스가 홍콩 전역을 휩쓸었다. 당시 홍콩서 근무하던 모 증권사 직원은 연 1회 참석하는 본사회의에 오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서러웠을 것이다.

당시 홍콩에 있던 한 법인장은 "가족들은 다 한국으로 보냈다. 당시엔 버스 타서 누가 헛기침이라도 하면 일제히 그를 쳐다봤다. 엘리베이터에서 층을 누를 때도 볼펜을 꺼내 누를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또 다른 이는 "한국 직원 하나는 본사에 갔다 홍콩으로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를 탔더니 혼자였다고 했다. 완전 전세기 같은 기분이 들었다더라"고 황당했던 순간을 기억했다.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일촉 측발의 순간, 모두가 외면한 그 순간에도 그들은 한국의 금융역꾼으로서 홍콩에서 자신의 일들을 묵묵히 수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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