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넥타이 풀고 청바지 입는 증권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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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우수연 기자] "치마 길이는 무릎선 유지, 액세서리는 3개 이내, 정장용 구두 힐 높이는 4~7cm…"

올해 초 한 증권사의 여직원에 대한 복장 규정이 입방아에 오르내린 적이 있다. 마치 학생 시절로 돌아간 듯한 지나친 복장 규정에 성차별 논란까지 불러일으켰던 사건이다. 해당 증권사는 복장에 대한 문의가 많아 가이드라인을 제공한 것이라며 세부규정을 간소화했다.

물론 고객을 직접 대면하는 직군(지점영업, 애널리스트 등)의 경우 깔끔한 인상은 필수다. 다만 해당 직원의 하이힐이 몇 cm인지, 액세서리를 몇 개 착용했는지, 정장 상·하의를 한 벌로 맞춰 입었는지 등의 여부가 실적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 지는 모르겠다. 그저 현재 증권가 기업문화가 얼마나 보수적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아니였나 싶다.

상대적으론 덜 하지만 남자직원에 대한 규정도 만만치않다. 대부분의 증권사들이 상·하의 소재가 다른 '콤비정장(혼합정장)'을 금지하고 있고 짙은 색이나 반팔, 무늬있는 셔츠도 금지하고 있다. 넥타이 착용은 필수다.

무더운 여름에만 '쿨비즈'를 외치며 노타이 차림과 반팔 셔츠를 허용하는 정도다. 30도가 넘는 한여름에도 여의도에서는 답답한 정장 자켓을 걸치고 다니는 증권맨들을 자주 마주칠 수 있다.

그런데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여름 뿐만 아니라 사계절 노타이 차림을 한 증권맨들을 요즘은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완전 자율복장을 시행하면서 청바지를 입고 출근하는 증권사 임원도 눈에 띈다. 지점 창구 여직원들의 유니폼 착용도 갈수록 찾아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메리츠종금증권은 증권가에서 가장 파격적인 '완전 자율복장'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회사 중 하나다. 지난 2015년 해당 제도를 실시하자 임원들부터 체크 셔츠에 청바지를 차림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직원들은 임원 보고나 회의를 앞두고 상의 자켓부터 찾아입던 예전과 분위기가 확실히 달라졌다고 전했다.

물론 옷차림 하나 달라졌다고 상하 관계가 하루 아침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율적인 옷차림이 수평적인 기업문화 조성의 첫 단추의 역할을 했다는 데는 어느정도 공감한다.

삼성증권은 훨씬 이전인 2008년부터 전 임직원의 '비즈니스캐주얼'을 도입했다. 비즈니스캐주얼의 개념은 상식적으로 눈살을 찌푸리지 않는 선에서 단정한 차림을 하면 된다는 것. 노타이, 면바지 착용 등이 가능하고 신발도 반드시 정장 구두가 아니어도 된다.

보수적인 대형사 중 하나인 한국투자증권도 이번 10월부터 파격적인 변화에 동참했다. 매주 수요일 실시하던 '캐주얼데이'를 폐지하고 전 임직원 상시 노타이, 세미정장으로 복장 규정을 완화했다. 남자 직원의 경우 상하의 소재가 다른 콤비정장을 입을 수 있고 사계절 내내 넥타이를 매지 않아도 된다. 여자 직원은 단정한 정장 느낌이 나는 세미정장을 갖추면 된다.

운동화에 반바지 차림도 허용한다는 제조업이나 IT기업 입장에선 이 같은 증권업계의 작은 변화가 우스운 얘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뿌리깊게 권위적 기업문화가 유지되던 금융권 내에서 체감하는 변화의 정도는 사실 놀랍다는 반응이다.

증권사의 한 직원은 "오히려 비즈니스 캐주얼에 익숙한 고객사들은 크게 신경을 안쓰지 않는데, 유독 사내에서만 '고객을 만나러가는데 옷차림이 그게 뭐냐'는 핀잔을 듣는다"며 "증권업계의 기업 문화가 시대와 동떨어졌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미래를 보고 투자하는 증권업계는 다른 업종보다 변화에 민감하고, 새로운 산업을 빠르게 받아들여야하는 업종이다. 고용의 형태도 성과에 연동된 계약직을 선호하는 등 개방적인 사고방식이 통용되는 곳이다.

하지만 동시에 보수적인 드레스코드, 관행적인 회식·영업문화, 군대식 조직 문화, 비효율적 야근 문화 등 시대에 맞게 변화해야할 과제들도 여전히 많다.

이들중 가장 쉽게 바꿀 수 있는 옷차림 관행부터 바꿔보는건 어떨까. 요즘은 옷차림도 전략인 시대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시시각각 요구하면서, 획일적인 검은 정장에 흰 셔츠를 입고 둘러 앉아 회의하는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지 않을까.

 

[뉴스핌 Newspim] 우수연 기자 (yesim@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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