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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談談)차이나] 술과시 그리고 삶

기사등록 : 2018-01-24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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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황세원 기자] 

넝인이베이우(能飲壹杯無)
누구 술 한잔 할 이 없는가

술과 함께 떠나는 한시(漢詩) 여행
하늘에서 귀양 온 신선 이백

전편 글에서 이백이 일종의 자기소개서에 해당하는 행권(行券)을 들고 만유(漫遊)를 시작한 과정을 소개한 바 있다. 그런데 당시에는 천하의 인재를 등용하는 과거제도가 잘 발달해 있었는데 시부에 능했던 이백이 어찌 과거시험에 응시하지 않고 어려운 만유의 길을 택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에 대해서는 그 시기의 인재 등용방식을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것 같다.

당나라 초기부터 조정은 전국의 유능한 인재들을 등용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크게 두 가지의 길을 마련해 두고 있었다. 진사, 명경 등을 통해 인재를 단계별로 등용하는 과거제도가 그중의 하나였으며, 천자가 덕행, 재능, 문학 등 다방면의 자질을 갖춘 사람을 전국 각 지역에서 천거받아 직접 테스트한 후 조정으로 불러들이는 제거(制擧) 시스템이 다른 하나였다. 후자의 시스템은 비교적 잘 작동해서 당대(唐代) 전기(前期)의 마주(馬周), 이옹(李邕), 방관(房琯), 여향(呂向) 등이 모두 이 경로로 평민에서 바로 경관(京官)이 됐던 사람들이다.

이백이 성공을 위한 루트로서 만유의 길을 택한 것은 한마디로 단계를 밟아 올라가는 과거 급제의 길보다는 영향력 있는 사람에 의해 천거돼 단번에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은 욕망이 컸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로 만유 과정에서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시부에 능한 그의 명성이 전국에 알려지게 되고, 그 결과 당 현종의 부름을 받아 관직에 등용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의 생각이 허황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관직 등용 때까지의 긴 기다림의 기간(17년)을 감안하면 그리 효과적인 방법도 아니었다. 아무튼 그가 출세를 위해 많은 사람을 만나며 떠돌아 다닌 긴 세월은 그에게는 고통의 기간이었겠지만 그 덕에 그의 시를 사랑하는 후세 사람들은 만남과 이별 그리고 회재불우(懷才不遇)의 한을 주제로 지어진 주옥 같은 시를 맘껏 만나보게 되었으니, 남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라는 말은 이런 경우에 적용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 즉흥적 권주가를 불후의 명작 시로 탈바꿈시킨 천재성

여러 만남의 과정에서 현종의 부름을 받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준 사람은 누구라 딱 집어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그 중에서도 평생지기 원단구(元丹丘)는 도교(道教)에 빠져 있던 당 현종의 누이동생인 옥진공주(玉眞公主)를 수행하면서 이백을 당 현종에게 천거하도록 부탁한 인물이다. 오매불망 그리던 이백의 조정 입성을 가능케 한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원단구 하면 떠오르는 것이 후대에 의해 이백의 천재성이 가장 잘 드러난 절창으로 평가받고 있는‘將進酒(술을 권함)’라는 시이다.

<將進酒>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황하의 물이 하늘에서 내려와 힘차게 흘러 바다에 이르면 다시 오지 못하는 것을.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귀한 집 사람이 거울을 보며 백발을 서러워하는 것을.

아침에 푸른 실 같던 머리칼이 저녁에 눈같이 세어졌네.

인생이란 때를 만났을 때 즐거움 다 누려야 하니, 금 술잔이 빈 채로 달을 맞게 하지 마시게.

하늘이 내게 주신 재주 반드시 쓰일 곳이 있으니, 천금을 다 써버려도 다시 생겨나리라.

양을 삶고 소를 잡아 즐겨나 보세, 모름지기 한번 마시면 삼백 잔은 마셔야지.

잠부자, 단구생이여, 드리는 술잔을 그대들은 멈추지 마시게.

그대들에게 노래 한 곡 들려주려 하니, 나 위해 귀 좀 기울여 주시게.

흥겨운 음악과 맛있는 안주는 귀할 게 없으니, 오직 오래 취하여 깨어나지 않기만 바랄 뿐.

예로부터 성현들은 다 쓸쓸해하셨고, 오로지 술 잘하던 사람만이 그 이름을 남겼었지.

진왕은 그 옛날 평락궁 잔치 열고서, 한 말에 만 냥이나 하는 술을 마음대로 즐겼다네.

주인이 어찌 돈이 모자란다 말하시는가, 당장 술을 받아 오시게.

그대들과 대작하리라.

오화마와 천금의 가죽옷을 아이 불러 맛있는 술로 바꿔오게 하시게.

그대들과 더불어 만고의 시름 녹여보세.

君不見, 黃河之水天上來, 奔流到海不復回. (군부견, 황하지수천상내, 분류도해부복회)

君不見, 高堂明鏡悲白髮, 朝如靑絲暮成雪. (군부견, 고당명경비백발, 조여청사모성설

人生得意須盡歡, 莫使金樽空對月. (인생득의수진환,막사금준공대월)

天生我材必有用, 千金散盡還復來. (천생아재필유용,천금산진환복내)

烹羊宰牛且爲樂, 會須壹飲三百杯. (팽양재우차위낙, 회수일음삼백배)

岑夫子, 丹丘生, 將進酒, 君莫停, 與君歌壹曲, 請君爲我側耳聽. (잠부자,단구생 장진주,군막정 여군가일곡 청군위아측이청)

鐘鼓饌玉不足貴, 但願長醉不願醒. (종고찬옥부족귀 단원장취부원성)

古來聖賢皆寂寞, 惟有飲者留其名. (고내성현개적막 유유음자류기명)

陳王昔時宴平樂, 鬥酒十千咨歡謔. (진왕석시연평낙 두주십천자환학)

主人何爲言少錢, 徑須沽取對君酌. (주인하위언소전 경수고취대군작)

五花馬, 千金裘, 呼兒將出換美酒, 與爾同消萬古愁. (오화마 천금구 호아장출환미주 여이동소만고수)

이백이 숭산(崇山)에 있는 원단구 산거에 두 번째 들렀을 때 펼쳐진 술자리에서 원단구와 그의 벗 잠훈(岑勛)에게 술을 권하면서 즉흥적으로 내뱉은 시구(詩句)들이다. 원단구가 그 자리에서 받아 적고 나중에 이백에게 그 제목을 물어 정리한 것일 뿐인데 천하의 명작이 되었으니 그의 천재성에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백은 이 시에서 회재불우의 울분과 인생무상의 비애감을 표출하면서도 이를 녹이는 수단으로서 술의 효용을 나열하면서 읽는 이로 하여금 형언할 수 없는 기개와 희망 그리고 기쁨을 느끼도록 이끈다. 이 시의 ‘朝如靑絲暮成雪’은 세월이 빨리 흘러 어느새 노년에 이르게 된 것을 탄식하는 표현인데 후대에 의해 널리 회자되는 대표적인 명구가 됐다.

이백의 ‘將進酒’는 우리나라 가사문학의 대가이면서 최고의 애주가로 꼽히는 조선시대 송강 정철의 ‘將進酒辭’(한잔 먹세그려~로 시작)와 함께 특히 애주가들에게 긴 세월 깊은 사랑을 받아온 시다. 우리말로만 읽어도 걸림 없이 술술 읽히니 큰 소리로 낭송하면서 그 자연스러운 이끌림에 흠뻑 취해 보는 것도 좋겠다.

◆ 경정산을 유명하게 만든 옥진공주와의 인연

이백을 당 현종에게 천거한 인물이 옥진공주였다는 내용은 안후이(安徽)성 쉬안청(宣城)현 징팅산(敬亭山, 경정산) 아래에 위치한 그녀의 묘지석에도 나온다.

그녀는 오빠 현종과 고모들의 영향을 받아 도교를 좋아했으며 같은 도우(道友)였던 이백을 총애해 현종에게 천거했다 한다. 또한 이백이 조정에서 퇴출당하자 상소를 올렸으며 늘 우울해하다가 공주의 신분도 버렸다 한다. 그녀와 이백 간에 어느 정도의 사랑 이야기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옥진공주와의 러브스토리가 있었기 때문일까. 이백은 경정산을 자주 찾았고, 말년에는 ‘경정산에 홀로 앉아(獨坐敬亭山)’ 라는 불후의 명시를 남겼다. 산을 사랑하는 시인의 마음이 표현된 듯하지만 이면에는 현실에 좌절한 시인의 고독한 마음이 짙게 묻어나는 시이기도 하다. 절창 중의 절창이기에 글의 말미에 소개하는 ‘오늘의 시’로 등장시켜 본다.

< 獨坐敬亭山 >

뭇새들 높이 날아 사라져 버리고

한 조각 구름 한가로이 흘러가네

서로 마주 보아 물리지 않는 것은

오로지 경정산 너뿐인가 하노라

眾鳥高飛盡
zhòng niǎo gāo fēi jìn
중조고비진

孤雲獨去閑
gū yún dú qù xián
고운독거한

相看兩不厭
xiàng kàn liǎng bú yàn
상간량불염

只有敬亭山
zhī yǒu jìng tíng shān
지유경정산

참고로 이백의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명산 경정산은 높이가 해발 286m(우리나라 서대문구에 있는 안산 정도 높이)에 불과한 낮은 산이다.

"산이 명산인 것은 높아서가 아니고 신선이 살기 때문(山不在高 有仙卽名)"이라 설파한 유우석(劉禹錫)의 시(陋室銘)처럼 주선 이백이 없었다면 아마 이 산도 동네 사람들만 아는, 이름 없는 산으로 남아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철성 우리술문화원 향음 이사, 전 JP모간 상임고문

경정산에 있는 옥진공주 동상

 

[뉴스핌 Newspim] 황세원 기자 (mshwangsw@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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