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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추상회화의 거목 서승원 "한국의 정체성은 흰색, 한이 담겨있다"

기사등록 : 2018-03-0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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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이현경 기자] "우리의 정체성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국 추상회화의 거목 서승원(77)이 '도전과 침정의 반세기'를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1960~70년대 작품을 볼 수 있다. 50여년 화업의 중추인 '동시성' 시리즈를 중심으로 총 23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이 중에는 올해 들어 제작된 최신작은 물론, 그가 소유하고 있는 1960년대 기하학적 추상 작품도 함께 공개한다.

서승원은 1960년대 국내 화단의 주류였던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중심의 사실주의와 비정형 추상회회운동인 앵포르멜 사이에서 독자적 경향을 모색했던 추상화가다.

그는 1963년 기하추상회화 그룹 '오리진(Origin)'을 창설했고 1967년 젊은 작가들이 파격적 시도를 대거 선보인 '청년연립작가전'에 오리진의 멤버로 참여했다. 또 1969년 작업과 이론 모두에서 전위를 추구했던 '한국 아방가르드 협회'의 멤버로 활동하며 한국 화단에 새로운 미의식을 정립하고자 했다. 그는 '새로움을 찾기 위한 미술 운동'이라고 표현했다.

"4·19혁명이 일어났던 1960년대, 우리도 새로움을 찾기 위해 새로운 미술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당시에는 액션 페인팅이 주류였어요. 서구 문화였죠. 저는 서구 문명의 잔재를 왜 우리가 그려야하는지에 대한 (비판)의식이 생겼고, '우리 것을 찾아보자'고 학생들과 토론했습니다. 그 결과가 '오리진' 결성입니다. 당시에는 우리가 선배들을 향해 크게 한 방을 던진 겁니다. 기성 세대에 대한 도전이고 우리의 회복과 도전을 의미했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미술로 옮기는 일은 '오방색'부터 시작했다. 빨강, 노랑, 파랑 등이 그림에 쓰였다. 당시에는 화려한 색상을 볼 수 있는 회화가 않은 시절이었기에 파격적인 시도였다. 선과 띠를 두른 것은 '기하학적' '구조학적' 표현이다. 이는 '여백의 미'를 나타낸다.

"전통 사상을 색채를 통해 현대화 시킨 겁니다. 지금은 붉은색, 노란색을 그림에서 흔하게 볼 수 있지만 1960년대만 해도 과감한 색으로 해석했죠. 당시에 조선일보 기사에는 붉고 노란색에다 선과 띠가 그려진 것을 보고 '이것도 그림이냐'는 기사가 났었어요. 오방색은 한국을 나타내는 색이고 이를 캔버스로 옮겼기 때문에 우리의 정체성이며 시대를 앞서 나간 미학 운동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공간을 우리화, 색을 우리화한 것이죠."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서승원은 한국의 정체성을 '흰색'으로 시각을 바꿨다. 그의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면 한지의 느낌이 묻어난다. 그는 흰색은 우리의 색이며, 한을 갖고 있다고 바라본다. 동경 갤러리의 야마모토 사장이 그의 그림을 보고는 '묘하다. 일본의 흰색과는 다르다. 어느 색에서 볼 수 없는 걸러진 희색'이라고 하더라'고 한 일화도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흰색'에는 우리의 혼이 담겨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흰색이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백자를 떠올립니다. 백자의 선, 형, 면에서 오는 느리면서도 희고 희면서 희지 않은 느낌이죠. 그 색을 중심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한지도 마찬가지고요. 흰색은 색이 아니면서도 색이 갖고 있는 힘이 있고 민족의 혼이 담겨 있습니다."

서승원은 자신이 '흰색'을 표현하고, 한국의 정체성을 캔버스에 추상화로 작업하게 된 배경이 자신이 살아온 환경의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살던 곳은 한옥이었고 그 시절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던 한국의 정서가 캔버스에 담긴 것이다. 그리고 故 김환기 선생의 영향도 있다고 덧붙였다.

"어려서부터 할아버지, 할머니 때부터 저희는 한옥에서 살았어요. 한옥에서 살던게 저에게 자연스럽게 한국의 정체성, 그리고 그 정신이 스며들게 됐죠. 아직도 생생해요. 집 밖에는 우물이 있고, 마당에는 복숭아 나무가 있고요. 안방 다락 6개 문에 동양화를 다셨던 아버지, 책에 얹어놓은 그림들이 제 삶 가까이에 었었죠. 그래서 남들이 말하는 묘한 색이라는 건, 제가 어릴 때부터 봐온 색이에요. 그런 정신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거고요. 대학교 다닐 때 회화는 김환기 선생님이 은사였는데, 선생님은 청색, 흰색을 많이 그렸기에 그 영향도 받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또, 동양화 선생님은 제게 도자기에 대한 가르침이 있었고 그 역시 회화로 표현될 수 있었고요."

그는 '예술가란 무엇이냐'라고 했을 때, 시대를 앞서 나아가야 하면서 미치도록 작품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예술은 그 시대를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앞서 나가야 합니다. 오늘 그린 그림을 이 시대가 받아주지 않더라도 열심히 그려야 합니다. 그렇게 미치도록 빠졌을 때 독창적인 그림이 나올까 말까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서승원은 60년간 추상화의 길을 걸어왔다. 화면에서 형과 색과 면이 동시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장면을 '시각화'하는 '동시성'으로. 그는 "오로지 추상화만 했다. 내 길만 걸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그는 작품을 만들고, 기록하고, 보관하면 역사가 된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이 아끼는 작품은 보관하고 있고 역사를 쓰고 있다. 그는 "내 길만 걸었기 때문에 작품을 많이 갖고 있다. 쌓이면 역사고 그게 진정한 예술이다"라고 자신했다.

향후 그는 수양한다는 의미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 때문인지 그의 그림에도 이런 영향이 나타난다. 2000년대에 들어서 흰색에서 발현된 푸른빛과 파스텔톤의 색상들이 각이진 사각형의 모습이 아니라 번진 형태로 바뀌었다.

"요즘 작업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가끔 합니다. 스님이 선산에서 목탁을 두들기는데 아침부터, 점심, 저녁으로 다 하루종일 앉아 있죠. 저도 하루 종일 캔버스 앞에 앉아 있는데 그게 나를 수행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조수 없이 그림을 그리고, 마무리하고 작품 넘버 치고 갤러리로 옮기는 것까지 제가 다 합니다. 무엇을 이루려고가 아니라 나 자신을 터득하기 위해서 이 전 과정을 겪습니다. 이렇게 면이 없어지고 사라져가는 형체들처럼 해탈해보고 싶습니다. '나 자신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또 한번 던져봅니다." 

[뉴스핌 Newspim] 글·사진 이현경 기자(89hklee@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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