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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중의 세상엿보기] 한국에서 대기업하는 죄

기사등록 : 2018-05-0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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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들의 금고는 정권의 딴 주머니인가?

 [서울=뉴스핌] 이석중 에디터 = 박근혜 정부에서 이뤄진 미르와 K스포츠재단에 대한 출연을 뇌물로 규정하고 처벌한 게 불과 얼마 전이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에서는 기업 돈을 걷는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다시 벌어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산업혁신기금을 더 내라고 하고,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을 걷겠다고 나섰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역 영세상공인들과 상생펀드를 만들라며 갓 개장한 대형 쇼핑몰의 문을 닫으라고 한다.

대기업이라서다. “북한의 핵문제가 해결되면 천문학적인 남북경협자금이 필요할 텐데 남북협력기금을 얼마나 내라고 할지 벌써부터 걱정”이라는 재계 관계자의 말은 과연 기우일까?

 

한국에서 대기업은 주홍글씨인가?

 정권 차원에서 공익 목적 임을 내세워 대기업들로부터 돈을 걷은 것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처음이다. 아웅산 테러 발생 직후 일해재단 설립을 위해 모금한 것이다.

그후 역대 정권들은 대기업들에게 손 벌리는 걸 당연시했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대북비료 보내기 사업,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 설립 등을 대기업 돈으로 충당했다.

노무현 정부 때는 공익재단을 설립해야 한다며 모금했다. 금융지주회사들에게는 공익재단 설립을, 삼성 현대차 SK 등 재벌그룹에게는 사회공헌재단 설립을 강제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금융위원회가 주도해 대기업과 은행들이 개별적으로 미소금융재단을 설립토록 했다. 신용등급이 낮아 제도권 금융이 어려운 서민들을 대상으로 저리로 대출 지원한다는 취지로 대기업과 은행들로부터 돈을 걷었다. 대.중소기업협력재단에 삼성을 포함한 주요 대기업들이 출연토록 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미르와 K스포츠 재단을 통해 대기업으로부터 774억원의 기금을 걷었고, 탄핵과 사법 처리의 중요한 사유 중 하나가 됐다.

정권의 모든 모금은 자발적 형태를 띠었지만, 대기업 입장에서는 살아있는 권력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내야 하는 고육지책이었다.

 

그때는 틀렸고, 지금은 맞다?

 농식품부는 농민복지증진을 위해 설립한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의 모금이 지지부진하자 대기업에게 손을 벌릴 심산이다.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은 지난 2015년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 당시 농민들의 반발이 거세자 농수산물 생산·유통 사업 등을 지원하기 위해 설정한 기금으로 지난해 3월 출범했다. 매년 1000억원 씩 10년간 총 1조원이 목표다.

지난해 한국전력 등 에너지공기업들이 50억원 내외씩 냈고, 민간 대기업 중에는 현대자동차 만이 2억원을 냈다. 올해말까지 2000억원 모금이 목표지만, 고작 16% 정도가 걷혔다.

모금이 지지부진하자 농식품부는 5대 또는 10대 그룹과의 간담회를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직접 기부금을 모집할 수 없어 농어업협력재단 등을 내세우기로 했다. 재단은 그룹 규모에 따라 출연금을 할당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산업부도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위한 기부금을 내라는 의사를 협력재단을 통해 대기업 관계자들에게 전달했다.

기업들이 2013년부터 오는 7월까지 진행되는 ‘산업혁신운동’ 1단계 사업에 총 2277억원을 냈는데, 8월부터 시작하는 2단계 사업에 출연액을 20% 늘리라고 요청한 것. 물론 자발적인 모금이라고 한다.

롯데쇼핑몰 군산점의 경우는 대한민국에서 대기업을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또 다른 경우다.

중기부는 지난달 27일 개점한 롯데쇼핑몰 군산점이 지역 소상공인 단체들과 상생 합의를 하지 않은 채 개점했다는 이유로 “영업을 일시 중단하라”는 조치를 내리겠다고 한다.

영업 일시정지 이행명령이 내려지면 7~10일 이내에 합의해야 하고, 합의 없이 영업을 계속하면 5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이후 사업조정 권고 및 이행명령까지 거부하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1억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도 있다.

대형 점포 출점에 대한 ‘유통산업발전법’과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의 ‘이중규제’ 때문에 빚어진 결과다.

롯데쇼핑은 유통산업발전법의 규정에 따라 지난 2016년 12월 군산지역 소상공인협회를 주축으로 구성된 ‘군산 롯데몰 입점저지 대책위원회’와 상생방안에 합의하고 상생기금으로 전북신용보증재단에 20억원을 출연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지역의 3개 조합이 이번에는 상생법을 근거로 중기부에 사업조정을 신청했다. 개점을 3년 연기하거나 260억원의 상생기금을 추가로 내놓으라는 요구다. 여러 차례 협의를 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해 정부가 나선 셈이다.

 

기금 출연하면 공공연하게 특혜(?) 주겠다는 정부

 기금 모금을 위해 내놓은 농식품부의 당근도 문제다. 기금출연기업에 대해 동반성장지수 가점을 부여하는 방안을 중기부와 협의하고 있다고 한다. 동반성장지수 ‘최우수’ 또는 ‘우수’ 등급 기업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의 직권조사를 1~2년 면제하고 조달사업 참여 시 가점을 준다는 것이다.

기금을 내면 공정위 직권 조사를 한시적으로 면제해 주겠다는 발상이 가당치 않다.

거래행위가 잘못 됐으면 조사하는 것이 맞다. 그것이 공정위 직권조사든, 국세청의 세무조사든. 잘못된 행위가 조사하지 않는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언젠가 조사가 이뤄져 적발될 일이면 일정 기간 봐준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조삼모사식 행정일 뿐이다.

무엇보다 공정위나 국세청의 조사는 조사 자체가 징벌적 성격이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은 한참 잘못됐다.

julyn11@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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