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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엔 왜 '3차 베이비붐'이 오지 않았을까

기사등록 : 2018-06-11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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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빙하기+안일한 낙관론 겹쳐 청년층 부담↑
출산율 1.5 한번 내려가면 1.5 넘어가기 힘들어

[서울=뉴스핌] 김은빈 기자 = 일본의 인구감소에 제동이 걸리지 않고 있다. 지방을 위축시키던 인구감소는 이제 대도시에서도 현실화되기 시작하면서 일손부족에 대한 일본 내 위기감이 심각해지고 있다.

10여년 전부터 예견됐던 인구감소 문제를 일본이 멈추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11일 아사히신문은 그 답으로 "헤이세이(平成·일본 연호) 불황이 제 3차 베이비붐 세대의 등장을 가로막은 영향이 크다"고 지적했다. 

가미기타무라마을 초·중등학교 [사진=가미기타무라 초·중등학교]

기이반도(紀伊半島·일본 남서부에 있는 반도)에 위치한 나라(奈良)현 가미기타야마(上北山)마을의 초·중등학교는 지난해부터 수업시간이 비는 선생님들은 다른 선생님의 수업에 들어가 학생 역할을 맡고 있다. 

가미기타야마마을은 5개 이상이던 초·중등학교를 통합해 지금은 이 곳 한 군데만이 남았다. 그럼에도 전체 9학년 중 학생은 6명뿐이다. 교직원은 17명. 함께 운영하는 보육원의 아동을 합해도 학생들보다 선생님의 수가 더 많다. 복수로 운영되는 학년은 중3이 유일하다. 

후쿠모토 요시히사(福本能久)교장은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의견을 갖고 있다는 점을 학교 수업만으로는 알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임기응변으로 수업시간이 없는 선생님들이 학생 역할로 수업에 참가하는 실험을 시작하게 됐다. 

지난 3월 마을엔 충격적인 뉴스가 전해졌다. 2045년 마을 내 14세 이하 아이가 사라진다는 내용이었다. 일본 정부가 발표한 최신 인구예측에 따른 뉴스였다. 현재 마을 인구는 510명정도로 1990년과 비교해 절반으로 줄었다. 27년 뒤엔 4분의 1로 줄어든 122명이 될 전망이다. 

인구 감소를 위해 마을차원에서도 손을 쓰고 있다. 1세~18세 아이에게는 매년 10만엔(약 100만원)을 지급하고,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입학할 때는 10만엔을 추가로 지급한다. 중학생은 호주 케언즈 홈스테이에 파견하는 비용(1인당 50만엔)을 전부 마을에서 부담한다. 

이 마을의 촌장인 야마무로 기요시(山室潔)는 "당랑거철(螳螂拒轍)의 상황일지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이 마을은 사라진다"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인구감소를 막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들을 우대해도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없다면 마을에 정착할 수 없다. 마을의 주요생산원이었던 임업은 쇠퇴했고, 의존해왔던 공공사업도 2000년대 중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총리의 '고이즈미 개혁' 이후 크게 줄어들어 지방 토건사업 기업 5개사가 모두 폐업했다. 

신문은 "이런 문제는 지금까지 지방의 이야기였지만 앞으로는 도시부에도 해당될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일본 인구가 2008년 1억2808만명을 정점으로 찍은 후 계속해서 하락 추세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 추계에 따르면 수도인 도쿄(東京)도 2035년 이후 인구감소로 전환하며, 아다치(足立), 가쓰시카(葛飾), 에도가와(江戸川) 구의 경우 2045년이 되면 현재보다 인구가 10% 줄어들 전망이다. 

보다 심각한 것은 노동층의 감소다. 2017년 생산연령인구(15~64세)는 20년 전보다 1100만명 줄었다. 인구 확보를 하지 못하는 중소기업이 도산하고, 우체국·택배사가 가격인상에 나서는 등 도시생활에도 영향이 미치기 시작했다. 

◆ 비극의 시작, 정부의 낙관론

"일본의 사례는 특수해서 이미 회복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 정책결정자들의 근시안적인 대응이 놀라울 정도다"

2015년 영국 서섹스 대학교에서 열린 이민문제 세미나에서 로널드 스켈튼 명예교수는 이 같이 말했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인구학자인 그는 일본의 50년치 인구피라미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젊은이에 비해 고령층이 비정상적으로 많기 때문에 이대로라면 국가가 소멸할 수도 있는 형태라고 그는 지적했다. 

같은 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소자화(少子化·저출산)를 멈추기 위해 50년 뒤 인구 1억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국가의 의지를 명확히 하고 싶다"고 선언했다. 당시 일본인 여성 한 명이 생애에 낳는 아이수는 1.45명이었다. 아베 총리는 이를 2025년까지 1.8명으로 올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쓰야 노리코(津谷典子) 게이오(慶応)대 교수는 "10년 안에 출산율을 1.8로 올리는 일은 일어나기 어렵다"고 냉정하게 말했다. 인구학 세계에는 '저출산의 굴레'라는 가설이 있기 때문이다. 

교수에 따르면 출산율이 장기간 1.5 이하로 내려가 있는 나라가 이후 1.5를 크게 상회하는 수치로 회복한 사례는 없다. 부모세대의 '저출산' 라이프 스타일이 아이에게도 그대로 이어져 사회에 정착되기 때문이다. 

일본의 저출산은 종전 이후 4를 넘겨 제1차 베이비붐(1947~49) 세대가 등장했다. 이후 급속하게 저하돼 2로 내려갔다. 이후 1차 베이비붐 세대가 결혼 적령기를 맞이한 71~74년에는 제 2차 베이비붐이 와서 일시적으로 2를 상회하는 숫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후 다시 내려갔다. 

헤이세이가 시작한 1989년엔 출산율이 역대 최저였던 1.57로 내려가는 '1.57 쇼크'가 발생했다. 당시 후생노동성 아동가정국장이었던 후루가와 데이지로(古川貞二郎·후 관방부장관)는 "심각한 일"이라며 가이후 도시키(海部俊樹) 당시 총리의 연설에 대책을 넣자고 재촉했다.

일본 정부는 장시간 노동 시정, 육아휴업과 보육소 충실화, 아동수당 증액 등의 대책을 내놓았지만, 정부는 실제 실행을 하지 않았다. 

"국장,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아직 아이들은 늘어나고 있으니까"

후루가와 당시 과장은 일본 첫 여성 국회의원으로 여성운동을 이끌었던 가토 시즈에(加藤シヅエさん) 의원에게 이런 격려를 들었던 사실을 기억한다. 신문은 "일본정부의 안일함의 배경엔 '제 2차 베이비붐 세대가 출산 적령기를 맞이하면 3차 베이비붐이 온다'는 낙관론이 있었다"

◆ 취업 빙하기, 3차 베이비붐 도래를 저지하다

하지만 3차 베이비붐은 오지 않았다. 출산율은 1991년 이후에도 계속 내려가, 1995년엔 1.5를 뚫고 내려갔다. 3차 베이비붐으로 예상했던 2000년대에도 출산율은 회복되지 않았다. 

오오타니 야스오(大谷泰夫) 전 후생노동심의관은 "최악의 타이밍에 '취업빙하기'가 와버렸다"고 말했다. 

1990년대부터 장기불황을 고민하던 기업들은 비용절감을 위해 비정규직 사원을 늘렸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금융대기업들이 연이어 파산한 1997년엔 신입사원 채용을 동결하는 기업이 줄을 이었다. 정직원이 되지 못한 젊은이들은 가정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게티이미지뱅크]

2005년 출산율이 1.26까지 내려가자 정부는 저출산 문제를 전담하는 전임각료를 마련했고 대책마련을 가속화했다. 하지만 고이즈미 정권의 '재정재건 계획'에 밀려 저출산 대책은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다. 

당시 저출산 문제 담당 직원 중 한명이었던 마스다 마사노부(増田雅暢) 전 내각부참사관은 "육아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3세 미만 의료비의 본인부담을 20%에서 10%로 줄이는 대책을 내놨지만, 부서간 절충에 들어가면 늘 뒷전으로 밀렸다"고 했다. 

당시 후생노동성 직원이었던 한 각료는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육아 예산을 늘리려면 연금이나 의료비에서 예산을 줄여야 했다"고 회고했다. 

출산율이 아베정권의 목표치인 1.8을 넘기는 선진국은 스웨덴, 프랑스 등 적지 않다. 이들의 공통점은 일본보다 세금이 높고 육아지원책도 두텁다는 데 있다. 

국립 사회보장·인구문제 연구소의 아토 마코토(阿藤誠)명예소장은 "부담없는 예산만 찾았던 게 문제 아닐까"라고 되묻는다.

신문은 "2001년 보육원 '대기아동 제로작전'을 일본 정부는 시작했다"며 "하지만 예산의 제약때문에 아직도 실현되지 않았다"며 현실을 짚었다. 

 

kebjun@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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