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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A칼럼]거스 히딩크와 교육부장관

기사등록 : 2018-08-31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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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오승주 사회부장 =‘한국 축구국가대표팀 감독’하면 저절로 떠올려지는 인물이 거스 히딩크다. 2002년 월드컵을 경험하지 못한 유·청소년들이야 히딩크 전 감독이 잘 와닿지 않겠지만, 한일 월드컵을 경험한 세대는 ‘축구대표팀 감독=히딩크’가 조건반사적으로 입에서 튀어나올만큼 한국인의 뇌리에 각인됐다.

히딩크는 ‘독이 든 성배’를 마시고 살아남은 대표팀 축구감독이다. 독이 들어 있어 목숨을 잃을 것을 알면서도 욕망에 굴복해 술잔을 마셔버리는 위험한 자리. 하지만 매력은 넘쳐 독배를 안 마실수 없는 자리가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다.

축구대표팀 감독직과 더불어 한국에서 투톱을 이루는 ‘독이 든 성배’ 자리는 교육부장관이다. 5000만 국민 전체가 축구감독이자 교육전문가인 나라에서 교육부장관은 앉는 순간 독에 취해 휘청거린다.

수십년간 가슴에 품은 한국교육 개혁을 위해 ‘이 자리를 받아 들였노라’고 자신만만하게 취임 일성을 외치지만, 1년반을 못채우고 대부분 보따리를 싼다.

1948년 정부수립 이후 교육부장관은 모두 57명이다.(문교부와 교육부, 교육인적자원부, 교육과학기술부를 거쳐 다시 교육부까지 직무대리를 제외한 장관중 30일 문재인 정부 2기 개각에서 지명된 유은혜 장관 지명자를 제외한 숫자)

70년간 교육부 장관 57명의 평균 재임연수는 1년5개월 가량이다. 역설적으로 ‘장수 장관‘은 군사정권 시절에 나왔다. 최장수 장관은 전두환 정권 당시 이규호(25대) 장관으로 3년 4개월22일을 재임했다. 이에 앞선 박정희 정권 시절 민관식(20대)장관이 3년3개월13일로 뒤를 잇는다.

교육은 백년지대계, 즉 1백년을 바라보고 세워야 하는 장기적인 계획이라지만 정작 교육부장관들의 수명은 그리 길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교육부 장관에 낙점된 김상곤 교육부 장관도 청문회 통과 이후 본격적으로 의자에 앉은 지 1년1개월 만에 교체됐다.

학벌주의 해체와 무한 경쟁교육에서 공존과 협력교육으로 전환, 양극화와 기회불평등의 해소 등 우리교육이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겠다고 취임사에서 일성을 토했지만 1년을 갓 넘기고 뒤돌아섰다.

갈팡질팡 끝에 ‘변한 게 없는 도루묵’이라는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안이 결정타가 됐다는 각종 분석이 나오지만 잠깐 제쳐두자. 그동안 교육부를 거쳐간 숱한 장관들이라고 취임할 때 포부가 없었겠나. 하지만 한국에서 가장 풀기 힘든 난제인 교육문제를 의지와 철학만 갖고 밀어붙이기에는 현실이 너무 두텁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 아닌지 싶다.

한국에서 교육문제는 간단치 않다. 가계소비, 부동산 등과 실타래처럼 엉킨 것은 기본이고, 사회계층간 갈등, 청년실업, 출산 등 각종 사회적 문제에 실핏줄처럼 연결돼 있다.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에 올인하고 있지만 정작 가정은 애들 교육비에 허리가 휜다. 이리저리 먼저 쓸 돈을 계산하면 소득 올라봤자 크게 실감나지 않는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지출되는 교육비는 가계지출에 상당한 압박이다.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초·중·고사교육비조사(전국 17개 시도)를 보면 한국의 2017년 전체 사교육비는 18조 6223억원이다. 학생 1인당 월평균 27만1000원이다.

서울로 좁히면 금액은 훌쩍 뛴다. 서울의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39만원이다. 통계 기준 7년전인 2010년(32만1000원)보다 21.4%(6만9000원) 증가했다. 초등학교부터 한달 평균 40만원이 지출된다. 통계에 따르면 2017년 서울의 한 가구에서 사교육비로 지출한 금액은 △초등학교 39만원 △중학교 41만6000원 △고등학교 44만3000원이다.

부동산도 교육과 뗄레야 뗄수없다. 수십억원대 아파트가 즐비한 ‘서울 강남’ 집값은 생활환경 등 차이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명문고등학교들이 많다. 강남에 집중된 학원과 강남엄마들 사이의 정보력도 다른 지역에서는 따라가기 힘든 프리미엄이다.

부유층일수록 교육에 대한 집착도가 높다. 많이 버는 가구는 당연히 아이들에게 평균 이상의 사교육비를 투입하고, 대부분은 돈 들어가는만큼 효과를 낸다. 교육에 많은 자금을 투입하지 못하는 가구는 상대적으로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고, 성과도 뒤떨어지는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청소년기에 이같은 위화감을 맛본 아이들은 이 땅에서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는 자체가 비극이고, 이같은 대물림을 하지 않기 위해 결혼을 미루고, 설령 결혼했다 해도 정부가 하는 일을 보니 교육격차 해소는 '달나라 이야기'로 여겨져 아이를 낳지 않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 현재 한국의 현실이다.

물론 출산, 청년실업, 가계소비 등 문제가 교육정책에만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살아보니 교육문제가 사회에 미치는 파급력은 교육부 장관과 관료들이 생각하는 것을 넘어선다고 여겨지는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이런 문제를 교육부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대책이 수십년간 천편일률적이다. 외국어고, 자율형사립고 등을 없애고 공교육 정상화를 외친다.

그런데 이리 메치고 저리 메쳐도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 억제라는 취지는 좋지만, 어떻게 보면 시장원리를 완전 도외시한 탁상행정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공교육이 사교육에 비해 왜 신뢰를 얻지 못하는 지 분석은 없다. 초등학교만 봐도 그렇다. 제도는 ‘복합형 인간’을 만든다고 하면서 국어와 수학, 미술 등 영역을 우겨넣어 창조형 사고력을 요구하는 문제라고 초등학생들에게 들이민다. 솔직히 요즘 초등학교 5학년생 수학 문제만 봐도 부모가 풀기 힘든 난해한 문제가 상당수다.

그런데 초등학생 부모보다 나이가 많은 일부 교사들은 여전히 부모세대가 학교에서 배우던 방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중고교로 올라갈수록 교사가 학생을 따라가지 못한다.

정부는 아이들에게 창의적 교육을 가르치라는데, 실제 학교현장에서는 교사들이 학습과정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여학교에서는 세상 변한 줄 모르고 여학생에 대한 교사들의 성희롱이 줄을 잇는다.

63세까지 정년이 보장된 기득권에 안주해 교사들이 공부하지 않고 발전이 없는데, 사교육을 없애라는 교육부 정책이 먹힐 리가 없다.

새로 지목된 유은혜 교육부 장관 후보자든 훗날 '독이 든 성배'를 받을 다른 교육부 장관이 자리에 앉든  거창한 교육철학을 취임사에서 밝히지 말고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일선학교 교사개혁’만 추진해도 성공적인 장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이 든 성배’를 ‘꿀이 든 성배’로 만든 히딩크 감독의 한국축구 국가대표팀 개혁은 별게 없었다. 부임 이전에 한국 축구계를 단단하게 옥죄던 축구계 파벌을 배제했고, 실력에 따라 선수들을 썼다. 숱한 테스트를 거쳐 마음에 드는 선수를 뽑으면, 외풍이 아무리 불어와도 한 길만 보고 갔다. 이 때문에 박지성과 송종국 등 무명들이 한일 월드컵 4강이라는 신화를 이뤄낼 수 있었다.

누가 교육부 장관이 되든지 간에 히딩크 전 감독처럼 좌고우면하지 말고 추진력있게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교사개혁’에 나서는 장관이 교육계에도 나오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면 국민들은 안 보는 듯 하면서 마음속으로는 박수를 보내고 있을 공산이 크다.

fair77@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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