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
히든스테이지
주요뉴스 사회

[세계 피임의 날] ‘알아서 조심해’ 말뿐인 청소년 피임 대책

기사등록 : 2018-09-19 07:10

※ 뉴스 공유하기

URL 복사완료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한국 청소년 첫 성경험 평균 '12.8세'...갈수록 빨라져
절반이 피임 안해...성병·낙태 위험 우려
보건전문가 "부실한 교육과 정책이 원인"
잘못된 성 지식이 청소년 안전 위협

[서울=뉴스핌] 박진범 기자 = 올해 9월 26일, 피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확산시키기 위한 '세계 피임의 날'이 12주년을 맞는 가운데 우리나라 청소년 피임 문제에 대한 우려가 여전하다. 한국 청소년은 이르면 초등학교 6학년 때 첫 성관계를 가지며 성경험이 있는 청소년 중 절반 가까이가 피임을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충격적인 통계가 해마다 쏟아지고 있지만 관련 대책은 아직도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빨라지는 성경험 시기

18일 여성가족부 청소년유해환경접촉 종합실태조사(2012)에 따르면 성경험이 있는 청소년이 성관계를 처음 경험하는 나이는 평균 15.1세다. 이 가운데 중학교 때 처음 성관계를 가졌다는 응답은 △중1(11.8%) △중2(17.4%) △중3(20.1%)으로 조사됐다. 7.6%는 초등학교 때 처음 성관계를 가졌다고 답했다.

청소년들의 성경험 시기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2014년 같은 조사에서 첫 성관계 경험 연령은 12.8세로 나타났다. 민간 연구결과도 이와 비슷하다. 지난 2015년 이동윤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팀이 청소년 21만2538명을 조사한 결과 성관계 시작 연령은 평균 12.8세에서 13.2세였다.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우리나라 미성년자들 중 일부는 초등학생 때 이미 성경험을 하고 있는 셈이다.

◆낮은 피임실천율...성병·낙태 위험 불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문제는 저조한 피임 실천율이다. 여가부 조사에서 성경험이 있는 청소년 중 남자 42.8%, 여자 41.1%만이 성관계시 피임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19세 여학생 피임 실천율이 99%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에 비춰보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때문에 청소년이 성병에 노출될 위험이 높아진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수경 안산대 간호학과 교수팀이 보건복지부 2014~2016년 청소년건강행태온라인조사에 참여한 청소년 20만5631명을 분석한 결과 성경험이 있는 중·고생의 9.7%가 임질·매독·클라미디아 등 성병에 감염된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인한 낙태의 위험은 더 심각하다. 삼성서울병원 연구결과 성경험이 있는 여학생 중 0.2%는 임신으로까지 이어졌고, 이들 중 66.1%~73.6%는 인공임신중절수술(낙태)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허술한 교육과 정책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런 상황이 벌어진 가장 큰 이유로 부실한 청소년 성교육이 손꼽힌다. 한국학교보건학회지에 실린 ‘한국 청소년의 보건교육 실태분석’에 따르면 전체 보건교육 시행률은 최근 10년(2005~2015) 동안 증가했으나 성교육은 오히려 2005년이나 2010년보다 2015년 시행률이 낮았다. 연구팀은 “사회적으로 합의된 성 가치관이나 성교육의 철학, 방향성 없이 교재의 내용만으로 가르치고 있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해당 학회지 저자 중 한명인 이재영 경성대 간호학과 교수는 “교육부 성교육 표준안을 활용해 적절한 시간만큼 실제로 교육이 잘 되고 있는 지는 의문이다”고 말했다.

정부는 성교육 가이드라인인 표준안조차 제대로 정립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 2015년 3월, 6억원을 들인 '학교 성교육 표준안'을 발표했다. 연령대별로 체계적이고 실효성 있는 성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표준안 내용이 성차별과 왜곡된 성의식을 부추긴다는 여성계의 반발을 불렀고, 홍역을 앓다 결국 올해 3월 재검토가 결정됐다.

설익은 정책도 비판의 대상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12월 ‘제2차 인권정책 기본계획 초안’에서 학교 및 공공기관에 ‘콘돔자판기’ 배치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곧바로 실효성 논란과 함께 미성년자 성관계를 오히려 조장한다는 각계 비판을 받았다. 올해 3월 공개된 최종안에서는 해당 방안이 빠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논란 때문에 뺀 것은 아니고 법령과 예산 등 문제를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배제했다”고 해명했다. 이와 관련, 이재영 교수는 “언제든지 콘돔을 눈에 띄는 곳에 두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실제로 아이들한테 필요한 교육이 우선시 됐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잘못된 피임 지식, 청소년 안전 위협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올바른 교육의 부재는 그릇된 인식과 잘못된 정보를 부른다. 최근 몇 년간 온라인에는 ‘콘돔이 없어서 비닐을 끼고 성관계를 했는데 문제가 될까요’라는 유형의 글이 수차례 게재됐다. 작성자 대부분이 자신을 10대라고 밝혔다. 성지식이 부족한 청소년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이다.

흔히 알려진 경구피임약 복용법도 청소년에겐 위험할 수 있다. 여고생 사이에선 수능 등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경구피임약을 먹는 것이 생리를 멈추기 위한 '비책'처럼 퍼져있다. 그렇지만 미성숙한 청소년기에 피임약 복용은 자칫 월경장애나 골다공증 등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

이재영 교수는 “신체가 덜 성장한 청소년기의 성관계는 기본적으로 위험하다”며 “최대한 성관계를 피해야하지만 관계를 할 경우 제대로된 피임법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beom@newspim.com 

<저작권자© 글로벌리더의 지름길 종합뉴스통신사 뉴스핌(Newspim),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