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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모스크바 이야기]...(1)들어가는 말

기사등록 : 2018-12-14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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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첫 모스크바 상주특파원이 기록한 소련 붕괴 막전막후
소련 최후의 날 1991년 12월 25일...탄생처럼 소멸도 혁명적
소련 붕괴와 러시아 탄생 반추...한국 발전적 미래 모색 계기

(1) 들어가는 말

[김흥식 뉴스핌 객원논설위원]

12월 25일은 현대사에서 최대의 사변이라는 소련 붕괴가 있었던 날이다. 1991년의 일이니 벌써 4반세기가 넘었다.

사람에게 출생, 성장, 쇠퇴, 죽음이라는 생명주기가 있듯이 국가에도 비슷하게 탄생, 성장, 쇠퇴, 소멸이라는 생명주기가 있다고 한다. 국가의 생명주기는 수백년 간 지속된 경우도 있고 단지 몇 십년만에 종말을 고하는 사례도 있다.

보통 한 국가가 한창 ‘젊을’ 때는 생명력, 에너지가 넘쳐 외부적 위기에도 유연하게 대처하지만 쇠퇴기에 접어들면 무감각해지고 무력해지기 마련이다. 세계적인 제국이었던 소련의 경우는 소멸과정이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특이하다.

루스키 포진지에 소련 시절의 다양한 군사 차량과 탱크 등이 전시돼 있다. [블라디보스토크=뉴스핌] 김유정 여행전문기자. 2018.05.12 youz@newspim.com

◆소련, 탄생처럼 붕괴도 혁명적..“시름시름 앓다가 돌연 침몰”

역사상 최초로 성립된 사회주의국가인 소련의 탄생은 세계 역사의 큰 흐름을 바꿔 놓았다. 한창 기세등등할 때는 전 세계가 떨 정도로 초강대국이었다. 그런 국가가 체제적 동맥경화로 시름시름 앓다가 갑자기 무너져 버렸다. 불과 70년만이었다. 탄생이 혁명적이었던 만큼 붕괴 그 자체도 혁명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거대한 국가의 소멸이었는데도 폭발성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미국이나 서방의 그 어떤 나라도, 그리고 그 어떤 소련 전문가도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 정도로 돌발적인 사변이었다. 지구 육지면적의 6분의 1을 차지하며 반세기 가량 미국과 세계를 양분해 초강대국의 지위를 누렸던 소련이 외부충격보다는 내부적 원인으로 붕괴한 것은 지금도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대체적으로 말하기는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정책이 소련인들의 억눌렸던 감정을 폭발시켜 누적된 체제모순에 대한 비판과 저항을 초래했고 결국 붕괴에까지 이르게 했다고 한다.

이런 역사적 격변의 시기에 필자는 한 달간의 장기출장과 5개월 어학연수 그리고 바로 이어진 3년간의 특파원 등 총 3년 반 동안의 모스크바 생활을 통해 격동의 현장을 취재하는 일생일대의 행운을 얻었다. 한국기자로는 소련 외무부가 허가를 내준 최초의 상주 특파원이라는 점에서 자부심을 가졌고 활발한 취재활동을 통해 가장 보람을 느꼈다. ‘그때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이 지금에 와서도 가슴을 뛰게 한다.

소련 정부가 발급한 한국 첫 모스크바 상주 특파원 신분증 [사진=뉴스핌DB]

◆러시아, 출범 직후는 비참한 ‘세계의 병자’

소련침몰 전후와 신생 러시아 출범 과정에서 고르바초프와 옐친의 대결을 비롯해 3일 천하로 끝난 보수파의 쿠데타 사건, 소련 공산당 해산, 고르바초프 사임과 소련해체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사건들이 마치 톱니바퀴 돌 듯 줄지어 일어났다. 마치 장대한 역사드라마를 보는 듯 했다.

이런 격동의 와중에 유례없는 생활고에 허덕이던 러시아인들은 일말의 희망조차 갖기 어려웠다. 비참한 미래의 종착역이 어디쯤일지 예측할 수도 없었다. 그야말로 ‘세기말의 풍경’에 다름이 아니었다.

소련을 승계한 옐친의 러시아는 공산체제에서 서구식 민주주의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학습이 전혀 되어 있지 않은데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로 간다는 게 힘겨워 보였다. 서구식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시스템을 무리하게 추진한 결과 정치적, 경제적 혼란은 더욱 가중돼 총체적 난국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급기야 ‘세계의 병자’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정치에 흥미와 자신감을 잃은 옐친이 임기 중에 사임하고 후계자로 지목한 푸틴이 등장했다.

옐친 대통령이 92년 11월의 방한에 앞서 한국 특파원단과 특별기자회견을 갖고 기념촬영했다. 앞줄 옐친 대통령 오른쪽으로 두번째가 필자. [사진=뉴스핌DB]

◆운좋은 사나이 푸틴...‘강력한 옛 소련 향수’ 불지펴

억세게 운이 좋은 푸틴은 석유와 천연가스의 가격폭등에 힘입어 국력을 회복하며 대내적으로는 권력의 고삐를 확고히 쥐었다. 체첸 독립운동 무력진압, 크림반도 강제병합 등으로 러시아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장기독재의 길로 나서게 된다. 대외적으로도 ‘강한 러시아’를 향한 힘찬 발걸음을 재촉하며 도처에서 미국과의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푸틴 치하에 정치적 안정을 이루고 경제면에서도 괄목할만한 성과를 일궈내면서 러시아의 면모는 달라졌다. 간단히 수치로 말하면 국가 모라토리엄 지경까지 몰렸던 러시아의 외환보유고는 꾸준한 상승을 보여 4천억달러 내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018년 10월 현재 4590억달러를 돌파해 세계5위를 기록할 정도다. 이런 식의 성장이 지속된다면 조만간 5천억달러를 훨씬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

공공·민간 부채도 꾸준히 감소하고 있고 경상수지 흑자폭도 늘어 2018년 3월 기준 183억달러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수년간 국제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가 낮은 유가와 제재상황에도 안정적으로 적응하고 있다고 긍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런 청신호에 따라 러시아인들 사이에 초강대국 소련 시절의 향수가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글로벌 파워로서의 영향력 행사를 과시하려는 듯 세계 도처에서 북극곰의 거친 숨소리가 다시 들리고 있다. 한반도와 관련해서도 ‘러시아 패싱’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소련의 국가문장이 낫과 망치였다면 러시아의 문장은 좌우를 바라보는 ‘쌍두독수리’다. 유럽과 아시아를 아우르면서 유라시아의 중심연결고리가 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고 할 수 있다. 붉은색만 빠졌을 뿐 소련은 여전히 살아있다고 봐야한다. 그런 점에서 “소련체제를 그리워하지 않는 자는 가슴이 없는 자다. 그렇다고 소련체제를 지향한다면 그는 머리가 없는 자다”라고 한 푸틴의 언급은 주목을 끈다.

모스크바의 대조국전쟁 박물관 앞 승리광장에 전시돼있는 각종 무기들. 2차 대전 당시 소련군이 나치 독일군을 파멸시키는데 사용했던 핵심 무기들이다. [사진=뉴스핌DB]

◆한국, 대 러시아 외교는 낙제점...현장지킨 한국기업 활약 돋보여

필자는 소련붕괴 전후의 역사적 과정이 일회성 사건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와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다. 과거의 사실이 반영되지 않은 현재는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관심이 없다면 망각만이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도 푸틴 치하 러시아의 정치적 입장과 대외정책 방향을 보면 일정부분 소련시절을 연상케 하고 따라서 우리로선 무관심할 수 없다.

필자의 짧은 생각으로는 우리나라의 러시아 외교가 애석하게도 장기적인 안목에서 정교하지 못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수교초기의 들뜬 분위기 속에서 러시아 관료조직의 실체와 잠재력을 제대로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말로만 강대국이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열등국 취급하는 엉뚱한 착각도 적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러시아를 과소평가하는 우를 범하기도 했고 그로인한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다. 필자는 아직도 착각의 후유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근래들어 우리를 보는 러시아의 눈이 예전같지 않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반면 한국기업의 러시아 진출은 확연하게 성과를 거두고 있다. 나름대로 열심히 씨앗을 뿌린 결과물로 봐야한다. 소련이 붕괴되고 신생 러시아가 경제난으로 허덕이고 국가모라토리엄 상황에 이르게 되자 서방의 기업들은 서둘러 발을 빼기 시작했다. 경제적 감각이 남다른 일본기업들조차 철수하거나 사업규모 축소에 나섰다.

그러나 한국기업들은 굳건히 현장을 지키며 시장의 중심을 파고 들었다. 한국인 특유의 부지런함과 끈기가 점차 러시아인들의 마음을 사게 되었다. 정치. 외교분야의 부진과는 달리 한국기업의 활약이 돋보이는 게 현실이다. 모스크바를 가보면 한국인으로서 뿌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시내 요소요소에 삼성, LG,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등 한국기업들의 휘황찬란한 홍보간판물의 불야성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모스크바 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세칭 ‘LG다리’는 한.러 관계에서 우정의 상징성을 띄고 있다고 하겠다.

▲ 모스크바에서 열린 야말 프로젝트 쇄빙 LNG 시리즈 첫 호선 계약식에 참석한 대우조선해양 고재호 사장(왼쪽)과 소브콤플롯 세르게이 프랑크 회장이 건조계약서에 서명 후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대우조선해양]

◆소련 붕괴와 러시아 탄생 반추로 대한민국 발전적 미래 모색

필자는 붕괴 직전의 소련과 새로 탄생한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상황을 되짚어보고 특히 우리나라와 관련된 당시 일들을 반추해보는 것도 발전적 미래를 위해 약간의 의미는 있다고 생각한다.

연재되는 내용들은 당시의 일들을 보고 듣고 느끼고 체험한 취재기자 입장에서 풀어가고자 했다. 취재노트와 인터뷰, 송고기사 등 자료와 입수한 비밀문건들을 통해 감춰진 이면사를 규명하고 각종 취재 비화와 뒷이야기 등 당시 상황을 가능한 한 생생하게 드러내고자 했다. 특히 우리의 최대 관심사이기도 했던 북한 관련 사안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쏟았다.

당시에는 경천동지했던 사건, 사고들이지만 시간이 꽤 지나고 보니 쉬어버린 음식처럼 신선한 맛이 떨어질 수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또한 당시의 일들을 놓고 해석하고 평가하는 데 있어 선택하는 기준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고 그래서 편협한 부분이나 착오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언론인으로서 최대한 객관적 입장에서 사안들을 보려고 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김흥식 뉴스핌 객원논설위원
한국외대 러시아어과를 졸업하고 1977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첫발을 디뎠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강제로 해직되는 아픔을 겪고 쌍용그룹에 몸담고 있다가 1988년 연합뉴스 기자로 복귀했다. 1991년 한국의 첫 모스크바 특파원으로 파견돼 맹활약했다. 이후 연합뉴스 북한부장, 남북관계 부장, 문화부장, 논설위원실 간사, 경영기획실장을 거쳐 편집담당 상무이사를 지냈다. 퇴임후 연합뉴스 부설 동북아센터 상임이사, 중소기업진흥공단 비상임이사, 도로교통공단 비상임이사,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특별위원 등을 지낸뒤 현재 뉴스핌 객원논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khs@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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