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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치우의 외계인 수첩] 예술가 김종덕 ''예술은 과학이다''

기사등록 :2019-11-11 13:58

[편집자] '삶'이라는 글자를 해체하면 ㅅㆍㅏ ㆍㄹ ㅏㆍㅁ 이 된다. 사람이 문명을 연다. 사람이 문화를 빚고 오롯이 역사가 된다. 그래서 미래를 위해 사람을 관찰하고, 사람을 알처럼 품는 것이다. 

국가대표급 크리에이터로 통하는 오치우 빅브라더스 대표가 글로벌뉴스통신사 뉴스핌을 통해 '외계인채집'이라는 생경한 이름으로 주 1회 인터뷰를 연재한다. 문화계를 비롯한 각계각층과의 세밀하고 주관적인 만남 속에서 지구 곳곳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매력 넘치고 독특한 인간 모습들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오 대표는 소설 목민심서 250만부 판매전략 [사람을 좋아하는 책] 캠페인, 실패상황 정복전략 [프로는 실패로 배운다], 최초의 중소기업 채용전략 기획, 청바지 점핑 프로모션전략, 중저가 다이아몬드 특화판매전략 등 처음이라는 수식어를 달며 기발한 아이디어와 기획으로 광고·카피라이터 업계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세번이나 자살에 실패했다. 그러나 그는 춤으로 박사학위를 받는데 성공했다. 옛날에 대학국문과를 다니며 시를 쓰다가 학업을 포기하고 몸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새파랗게 젊은 날, 세번의 자살기도는 참으로 독하게 쓴 '시'라고 볼 수있지요''

오치우 빅브라더스 대표

첫번째 시도는 줄을 맨 기둥과 천장이 무너져내려 실패하고, 두번째는 가스를 틀어놓고 잤는데 가스가 새나가는 바람에 실패했다. 세번째는 수면제, 그러나 그 독한 가스도 수면제도 그의 인생보다 싱거웠던 모양이다.

그리고 이십년이 지난 지금,  그는 지금 대학교수다. 서울시립무용단원,한국예술종합학교·한양대학교·서울문화예술대학교 겸임교수 수원대학교 객원교수, 천안시립무용단 예술감독을 거쳐 지금은 세종대학교 창의소프트학부 초빙교수이고 전국무용제 예술감독, KBOX TV 예술감독이다.

6남2녀의 막내로 자라며 옷과 학용품을 두 단계에 거쳐 물려 받으며 겨우 국문학 공부를 했지만 졸업장까지 물려받진 못했다. 학업중단후, 그는 모진방황과 자살기도 후에 ''나 아닌 삶을 살고싶어'' 연극 속으로 익사하듯 빠져 들었다. 그리고 깊은 바다같은 연극무대 위에서 마약같은 위로를 만난다.

''춤! 그건 죽음보다 완벽하고 삶보다 치열한 교감을 주는 절대적인 존재였다''고 그는 말했다. ''다른 별로 통하는 비상구가 거기 열려 있다는 걸 알게된 거지요. 그날부터 내게 춤은 삶의 이유가 됐어요.'' 

목숨을 건다는 건 모두다 거는게 아니다. 깡패들이나 도박꾼들은 모두다 걸었다. '올인'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진짜 목숨을 건다는 딱 하나 '살아있음' 자체를 거는거다. 

그리고 그는 살아 남았다. 춤을 추면서 대학을 다녔고 춤 때문에 부산시립무용단원이 됐고, 부산대 무용학과 석사, 그리고 서울시립무용단원이 됐다. 

내친김에 시작한 박사는 춤 으로만 되는게 아니었다. 춤 박사라니. 그러나 박사가 되기위해서는 춤보다 침이 필요했다. 송곳보다 더 예리하고 푹 꽂으면 벌떡 일어나는 '신침'같은 능력이 필요했다. 

김종덕 세종대학교 창의소프트학부 초빙교수

그때, 그에게 그야말로 '신침'처럼 예리한 문학적 감성이 소름처럼 돋아올라 깃발처럼 나부끼게 되고 젊은 날 완성하지 못했던, 부러진 칼날처럼 날카릅기만한 그의 시어들이 몸을 관통하고 나와 눈물같은 ''춤''으로 흘러 내렸다. 

그의 박사학위는 장작같은 가난 위에 누워서 숨을 거둔 아버지의 출상날 무대 위에서 춤을 추어야했던 김종덕이 아버지에게 헌정한 훈장이다. 

''출상 날 무대에 오를 수 밖에  없던 그가 그 날을 생각하며 만든 작품  꼭두의 눈물' 은 아버지에게 바치는 천도제였어요. 그 무대 위에서 하늘로 아주 떠나시는 아버지의 눈물을 보았지요. 아버지가 임종하실 때 까지 내가 춤꾼이 된걸 모르셨거든요. '꼭두의 눈물'을 보신 아버지의 영혼이 용서하고 떠나셨을까요?''

[서울=뉴스핌] 정태선 기자 2019.11.11 windy@newspim.com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허공을 보는 그의 각진 턱선이 아름답게 슬프다. 반듯한 플라타나스 나무처럼 곧게 편 어깨로 세상을 받치고 사는 그를보고 왜 '시지프스' 신화가 떠오르는 걸까?

그는 깊은 계곡 끝에서 부터 바위를 굴려 올리듯 그렇게 무대위로 작품을 끌어 올렸다. '아빠의 청춘', '꼭두의 눈물',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통해 생전에 춤꾼 이라고 밝히지  못한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회한을 풀기위해 속죄하듯 춤을 추었다.

그후, '아우라지는 두 갈래로 흐른다.', '그리움의 가속도', '천고의 노래', '광야' 등은 분단에 대한 아픔과 동질성 회복에 대한 염원과 3.1운동,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에 맞추어 혁명하듯 제작 된 그의 작품들은 묵직한 주목을 받게된다.

세상이 그를 주목 하는데 특별한 이유는 없다. 김종덕의 춤은 몸이 아니라 그의 영혼이 말하는 시어를 전하기 때문에 눈으로 보이는듯 하지만 사실은 그의 춤사위가 속삭이듯 소리가 되고 그 소리가 강물처럼 일렁여 사람들의 몸을, 마음을,흔들어 별빛 가득한 벌판으로 데리고 간다.

그는 춤 이라는 비상구를 통해 우리에게 '은밀한 유체이탈'을 유도 한다.

[서울=뉴스핌] 정태선 기자 2019.11.11 windy@newspim.com

그는 늘 '매우위험한 감성술사'로 우리앞에 선다. 춤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남자!  그러나 그는 춤으로만 끝낼 기세가 아니다. 춤에서 시로, 시에서 소리로, 소리를 다시 패션으로.

그 패션은 지금 4차 산업의 새로운 콘셉트로 주목받고 있다. 이 모든 메세지들이 말이 아니라 그가 연출하거나 실연하는 무대 위에 등장하고, 작동해서 ''춤꾼 김종덕''의 작품이 됐다. 그의 무대는 때로 감각적인 패션쇼가 되는가 하면, 오페라, 뮤지컬 공연장이 되기도 하고, 때때로 미래세상을 구현하는 IT 퍼포먼스가 되기도 한다.

그의 무대는 한마디로 ''오늘이 미래다!''를 웅변하고 있다.

''예술은 미래를 말해야 합니다. 50년전 인류가 최초로 달에 발을 딛었지만 예술가들의 의식은 아주 오래전에 달을 향해 출발 했습니다. 그 의지가 엔지니어들의 등을 두드려 최근에서야 달에 도착시켰을 뿐이지요. 달에 쏘아올린 로케트는 아주 오래전의 벽화 속에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예술은 미래를 말하는 언어다!''라고 단언하는 그가 내민 명함에는 ''세종대학교 창의소프트학부 뉴미디어퍼포먼스전공 초빙교수'' 라고 쓰여 있다. 이렇게 긴 이름만큼 그의 꿈이 미래를 향해  길고 곧게 펼쳐져 있음을 세상사람들이 이제야 눈치채기 시작했다.

교수이자 예술가로 살아온  김종덕은 시인이기도 하고 칼럼니스트이고 교수 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여지없이 단호하다. ''김종덕은 춤꾼 입니다!'' 자신을  '미래를 구현하는 예술가' 로 단정하는 '춤꾼' 김종덕에게 예술에 대한 정의를 묻자. 과학자같은 표정으로 잘라 말했다.

''예술은 오래된 과학!'' 과연!

헌데,  달보고 쓴 이태백의 시는 달로 간 '아폴로'의 속도를 얼마나 더 빠르게 했을까? 어쨌든, 그건 맞다. ''예술은 언젠가 과학이 된다!''

[서울=뉴스핌] 정태선 기자 2019.11.11 windy@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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