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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시론] 정의의 여신상을 일으켜 세우고, 눈을 가리면 나아질까

기사등록 : 2020-07-08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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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중앙 현관에는 오른손에 저울을 높이 들고, 왼손에 법전을 든 '정의의 여신상'이 있다. 한국 전통 복식을 한 채 눈을 부릅뜨고 앉아있는 모습이다. 반면 서양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에 정의의 여신상이 서 있다. 서양의 정의의 여신상은 한손에는 칼, 다른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으며 눈가리개를 했다. 눈을 가린 것은 주관을 버리고, 불편부당하게 재판하라는 의미다. 칼은 엄정한 법 집행을, 저울은 공정하라는 주문이다.정의의 여신상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법과 정의의 여신인 테미스(Themis) 또는 디케(Dike)가 모델이라고 한다. 로마신화의 정의의 여신은 유스티치아(Justitia)로, 정의(Justis)의 어원이다.

최근 한국 법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과연 정의의 여신상이 추구하는 정의의 가치가 살아있는 지 의문이다. 정의의 여신이 들고 있는 저울은 이미 기울대로 기울었다는 비판도 넘쳐난다. 당장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씨를 미국에 송환하지 않겠다는 법원 결정에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이 사건을 담당한 부장판사의 대법관 후보 자격을 박탈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지난 5일 게시판에 오른 이후 8일 오전 동의자가 40만명을 넘었다. 그만큼 국민적 분노가 크다. 외국의 비판도 거세다. 미 법무부와 워싱턴DC 연방검찰은 손씨의 미국 송환 불허를 결정한 한국 법원에 "실망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손씨가 운영한 사이트에서 아동 포르노를 내려받은 미국인들은 징역 5~15년을 선고받았는데 정작 그는 1년6개월 만에 풀려났다며 법원의 판결이 엄정하지 않음을 지적했다. 영국 BBC는 한국 검찰이 계란 18개를 훔친 생계형 범죄자에게 구형한 형량이 손씨의 형량과 같다고 조롱했다. 담당 판사는 손씨를 미국에 보내면 국내 수사가 지장을 받아 관련 범죄에 대한 발본색원이 어렵기 때문이라지만, 납득하기 어렵다. 법조계 일각의 '법원 결정의 독립성' 주장도 '법원도 공범이다'는 비판에 묻혀버렸다.

지난달 지방의 한 대학 캠퍼스에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인 20대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법원도 지탄의 대상이 됐다. 대전지법 천안지원은 지난해 11월 단국대 천안캠퍼스 건물 내에 문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인 25살 김모 씨에게 건조물 침입혐의를 인정해 벌금 50만원을 선고한 것. '국민들에게 재갈을 물리려는 것', '전두환 군사독재시절에도 없던 일'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심지어 광화문 네거리에서 문 대통령을 비난하는 구호를 외치면 '소란죄' 또는 '도로교통법 위반' 등의 혐의로 처벌하지 않겠느냐는 비아냥도 나왔다. 조국 일가와 관련된 재판에서 보여준 판사들의 행태는 기가 막히다. 노골적으로 피고측인 조국 일가의 편을 드는가 하면, "검찰의 말은 맞지만, 죄는 되지 않는다"는 해괴한 말도 했다.

최근 사법부에 대한 불신과 비판 여론이 거센 것은 법 집행이 엄정하지 않고, 법리 보다는 프레임에 갇혀 편파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 1988년 탈주범 지강헌이 인질극을 벌이며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한 말이 우리 사회에 깊은 울림을 울렸듯이 지금은 '내편 무죄, 니편 유죄'라는 말이 공감을 얻고 있다. 한국의 정의의 여신상이 눈을 뜨고 있는 것은 저울과 법전, 그리고 사실관계를 정확히 보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런데도 법리와 사실관계가 무색할 정도인 사법부의 최근 몇몇 판결을 보면 정의의 여신상이 눈을 뜨고 있는 것은 누가 내편인 지를 보기 위해서는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렇다면 정의의 여신상에 눈가리개를 하면 어떨까 싶다. 광장에 서 있는 서양과는 달리 한국의 정의의 여신상은 법원 건물 안에 앉아있는 모습이어서 그만큼 편협하고, 권위적이며, 시야가 좁은 것은 아닌지도 궁금하다.법은 엄정하고, 공정하게 적용돼야 국민적 공감을 얻는다. 사법부는 인공지능(AI)에게 재판을 맡기는 게 더 공정하고, 예측가능할 것이라는 세간의 얘기를 흘려들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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