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
히든스테이지
주요뉴스 오피니언

[조용준의 시시콜콜] '여권통문(女權通文)의 날'을 아십니까

기사등록 : 2021-08-31 13:13

※ 뉴스 공유하기

URL 복사완료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올해 마흔살 '82년생 김지영', 경력단절과 가사노동에 여전히 시달린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논설위원 =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민족적 자긍심이 넘쳐나던 광무2년(1898) 9월 8일, 『황성신문』의 '별보(別報)'란에 "북촌 여성군자 수삼 분이 개명상에 유지하여 녀학교 설시하라는 통문이 있었기에 하도 놀라고 신기하여 우리 논설을 빼고 그 자리에 게재하노라."라는 기사가 실렸다.

'놀랍고 신기한 일'은 바로 1898년 9월 1일, 즉 지금으로부터 123년 전 서울 북촌의 양반여성들이 이소사(李召史), 김소사(金召史)라는 이름으로 '여학교설시통문(女學校設始通文)'을 발표한 일이었다. 즉 북촌의 여성 서너명이 여학교를 만들라는 선언을 했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소사(召史)'란 기혼여성을 일컫는 말이다.

1876년 개항 이후 조선 사회에 개화론(開化論)이 등장했다. 나라의 개화와 함께 여성의 의식도 자연스레 깨우치게 되었고, 전통적인 여성관에 변화를 가져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개화사상가들은 여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당시 독립협회와 『독립신문』에서는 여성의 권리 찾기, 남녀평등 실현을 위한 구체적 방법으로 여성교육을 강조했다. 그리하여 1886년부터 1890년대를 거쳐 개신교 선교사들에 의해 이화학당, 정신여학교 등 여학교들이 연이어 세워졌다. 바로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바탕으로 서울 북촌 양반여성들이 찬동자 300명 정도를 모아서 '여학교 설시 통문'을 발표하기에 이른 것이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논설위원 = 여성가족부 '여권통문의 날' 홍보물. [사진=여성가족부 제공] 2021.08.31 digibobos@newspim.com

'여학교설시통문'은 이 나라 최초의 여성인권 선언서로, 지금은 흔히 '여권통문(女權通文)'이라 불린다. 이 통문에는 여성의 평등한 교육권, 정치참여권, 경제활동 참여권이 명시되었으며, 『황성신문』과 『독립신문』이 이를 보도하였다.

"어찌하여 우리 여인들은 일양 귀먹고 눈 어두운 병신 모양으로 구규(舊閨)만 지키고 있는지 모를 일이로다. 혹자 신체와 수족과 이목이 남녀가 다름이 있는가. 어찌하여 병신 모양 사나이의 벌어주는 것만 먹고 평생을 심규에 처하여 그 절제만 받으리오. 이왕에 먼저 문명개화한 나라를 보면 남녀가 일반 사람이라 어려서부터 각각 학교에 다니며 각항 재주를 다 배우고 이목을 넓혀 장성한 후에 사나이와 부부지의를 정하여 평생을 살더라도 그 사나이의 일로 절제를 받지 아니하고 도리어 극히 공경함을 받음은 다름 아니라 그 재조와 권리와 신의가 사나이와 같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2020년에 9월 1일을 '여권통문의 날' 법정기념일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양성평등주간도 기존의 7월에서 9월로 변경됐다. 그러니까 올해는 '여권통문의 날'이 지정된지 두해 째다. 그러면 2020년 현재 통계로 보는 우리나라 여성의 삶은 어떠할까.

'82년생 김지영'은 올해 나이 마흔살이 됐다. 김지영은 살림을 하면서 막 돌 지난 듯한 딸을 키우고 있다. 김지영은 대학을 졸업하고 홍보대행사에 취업하는데, 물론 취업이 쉽지는 않았다. 같은 직장의 한 선임 여직원은 창사 이래 처음으로 1년 육아휴직을 쓰지만, 복귀 후 바로 퇴사한다. 김지영 역시 출산 후 고민 끝에 퇴사를 한다.​

지난해 9월 2일 여성가족부와 통계청이 합동으로 발표한 <2020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의하면, 82년생 김지영처럼 70%의 여성이 20대에 일을 시작하지만,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10년 차에는 10%p의 여성이 일을 쉬고 있다. 5년이 지나면 다시 생계를 위해 일터로 나가는데, 그녀들은 과연 꿈을 되찾은 것일까? 2009년에 비해서는 높은 비율로 여성이 일을 하고 있지만, 연령대가 높아지면(40대 이후) 급격히 하락하는 추세가 여전하다.

김지영(여성노동자)과 같은 경력단절 여성은 2019년 169만9천 명으로 5년 전인 2014년(216만4천 명) 대비 21.4%p가 감소했다.

여성 고용률은 2021년 6월 현재 58.4%로 2014년(49.7%)보다 늘어난 8.7%p가 늘어났다. 코로나19가 시작된 2010년의 고용률은 1월 57.7%에서 12월 56.0%까지 떨어졌는데, 올해의 경우 1월 55.2%까지 감소했다가 다시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여성 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는 2019년 23.3%로 10년 전(20.2%)보다 3.1%p 증가했다.

남녀 고용률 격차는 2019년이 19.1%로 2014년(22%)보다 줄어들었지만,  남성고용률이 2014년(71.7%)보다 줄어든 70.7%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개선이 별로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여성 상용근로자 비중도 47.4%로 남성(54.3%)보다 6.9%p 낮으며, 임시근로자 비중은 여성(25.5%)이 남성(12.6%)보다 2배 이상 높다. 비정규직 비율을 보더라도 여성은 여전히 '질 좋은 일자리'에 더 가기 힘들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시간당 임금을 보면 2019년 여성 임금근로자 평균 16,358원으로 2009년(8,856원) 대비 84.7% 상승했다. 여성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은 2009년 64.6%(10,013원> 6,468원)에서 2019년 76.4%(17,566원> 13,417원) 수준으로 역시 상승했다. 그러나 여성 정규직 임금은 남성의 25,127원의 69.4% 수준이다. 이는 2014년(19,505원>12,500원)의 64.1% 수준보다 늘어난 것이지만 임금격차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여성의 가사 시간도 5년전과 거의 변화가 없었다. 2014년의 경우 취업자 여성의 가사 시간은 2시간 27분이었는데, 2019년 2시간 24분으로 고작 3분 줄었다. 맞벌이 가구 여성의 가사 시간도 2014년 3시간 13분에서 2019년 3시간 7분으로 거의 똑같다.  남성의 가사 시간은 취업자가 2014년 40분에서 2019년 49분으로 약간 늘어났고, 맞벌이가구는 2014년 41분에서 2019년 54분으로 역시 약간 증가했다.

취업 여성과 맞벌이가구 여성의 하루 평균 가사시간은 남성보다 각각 1시간 35분, 2시간 13분이 더 많아서, 이 부분에 관한한 별다른 개선이 없는 형편이다. 다만,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활용한 여성은 2020년 상반기 67,879명으로 2019년 전체(4,918명)보다 크게 늘어났다(1,961명).

한편 여성 흡연률은 2008년 7.4%에서 2018년 7.5%로 차이가 거의 없었다. 다만 고위험음주율(주 2회 이상, 1회 평균 5잔 이상 음주량)은 2008년 6.2%에서 2018년 8.4%로 크게 늘어났다.

남녀 대학 진학율은 2005년에 남성 73.2%, 여성 73.6%로 뒤집어진 이후, 그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2019년에는 남성의 65.9%, 여성의 73.8%가 대학 진학을 했다. 따라서 123년 전에 여학교를 만들어 문장을 깨우치게 해달라고 선언했던 여성들의 바람은 완전히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논설위원 = '여권통문전' 전시회에 출품된 김명희 '태극기 그리는 날', 185x106cm, 칠판에 오일파스텔, 비디오 모니터 [사진=토포하우스 제공] 2021.08.31 digibobos@newspim.com

김소사, 이소사와 같은 선배들의 뜻을 기리기 위한 '여권통문의 날 기념전'이 9월 1일부터 7일까지 서울 인사동의 토포하우스(topohaus) 갤러리(대표 오현금)에서 열린다. 이 전시회에는 30여명의 작품들이 전시된다. 

 digibobos@newspim.com

<저작권자© 글로벌리더의 지름길 종합뉴스통신사 뉴스핌(Newspim),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