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백지현 기자 = 코로나19 대출 수요와 '빚투'(빚내어 투자) 열풍이 맞물리면서 은행들의 현금 유동성 사정이 눈에 띄게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빠져나가는 돈은 늘었는데 저금리 환경 속 정기예금을 유치하기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실물 위기로 당장 대출 줄이기가 어려운 가운데, 하반기에도 은행들의 현금흐름은 더욱 경색될 것으로 우려된다.
10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은행의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이 최근 일제히 권고 수준인 100% 아래로 떨어졌다.
은행별로는 살펴보면, 6월말 기준으로 농협은행이 유일하게 100%를 넘었지만 낙폭은 가장 컸다. 작년말 대비 27.35%p 떨어진 104.53%를 기록했다. 국민은행이 98.61%로 5.98%p 떨어졌다.
뒤이어 8월말 기준으로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이 각각 14.58%p, 9.47%p 하락했고, 우리은행이 14.58%p(7월말) 내렸다.
LCR은 금융기관의 유동성을 나타내는 지표로 향후 30일이내 순현금유출액에 대한 고유동성자산의 비율을 의미한다. 즉, 은행에 예금이 대출보다 많으면 비율이 상승하고 반대로 대출이 더 많으면 비율이 하락한다.
이처럼 LCR이 급락한 데는 코로나19에 따른 실물경기 지원으로 대출은 늘고 있는 반면, 정기예금은 급속도로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정기예금은 통상 12개월 은행에 묶여 있기 때문에 은행들은 이를 자금 조달 통로로 애용해왔다. 그러나 최근 기준금리가 사상 최대수준으로 인하됨에 따라 이율이 낮아졌고, 고객 입장에서는 정기예금의 매력이 낮아졌다. 은행 입장에선 대출금리 역시 역대 최저 수준인 가운데 굳이 예금이자를 높여 수익률을 낮출 필요가 없다. 정기예금 유인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다.
이에 따라 정기예금은 줄고 언제든 고객들이 빼갈 수 있는 요구불예금으로 전환되고 있다. 5대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지난 1월 이후 18조7247억원이 빠져나갔다. 반면, 수시입출금 통장 잔액은 88조8686억원 증가했다.
정기예금을 해지하고 수시입출식 통장에 돈을 잠깐 파킹해두는 사람이 많아지면 결국 LCR을 떨어뜨리게 된다. 요구불예금은 은행에 유입되는 자금이지만 언제든지 빠져나갈 수 있다는 성격이기 때문에 3~10%이 현금 유출로 잡히기 때문이다. 다만,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은행이 들어온 돈을 유가증권으로 갖고 있을지, 대출로 운용하는지에 따라서도 달라지기 때문에 LCR이 무조건 하락한다고는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금 코로나19로 인해서 각 은행 대출수요가 급증하고 있는데 LCR이 원래 비율이라면 이를 맞추기 위해 은행이 자금을 따로 조달을 해야하는 부담이 생긴다"며 "그러나 건선성 규제를 일시적으로 완화했고 은행들은 이에 따라 적정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올해 초 금융당국은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금융권의 적극적인 실물경제 지원을 이끌기 위해 LCR 규제 비율은 100%에서 85%로 완화했다. 지난 8월에는 유연화 방안을 내년 3월까지 연장해 운영하기로 했다.
한편, 대출 잔액은 빠르게 치솟고 있다. 코로나19 금융지원과 더불어 부동산·주식 투자열풍이 가세하면서 가계대출은 매월 신기록을 경신했다. 특히 연내 빅히트 상장이 예정되어 있어 대출 증가세를 부추길 전망이다. SK바이오팜, 카카오게임즈 등 공모주 청약에 상당 자금이 대출을 통해 마련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처럼 대출 증가세가 이어질 경우 LCR 추가 하락은 불가피하다.
하반기 유동성 사정이 개선 악화가 우려되는 가운데 은행들은 단계적인 개선 전략을 실시할 것으로 관측된다. 은행 관계자는 "당국이 규제를 한번에 올리지 않고 조금씩 조정할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다. 만일 한번에 100%로 올릴 경우 은행 대출이 그만큼 상환되어야 하는데 이는 당국도 원하는 바가 아닐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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