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등록 : 2025-01-14 06:26
[서울=뉴스핌]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 일본 외무대신이 한·일 외교장관회담을 위해 7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양국은 최근 한·일 관계 개선 기조를 유지하면서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흔들림 없이' 양국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이와야 다케시(岩屋毅) 일본 외무상은 13일 회담을 가진 뒤 공동기자회견에서 이같은 방침을 한 목소리로 천명했다.
그러나 양측의 관계 개선 의지에도 불구하고 결국 한·일 관계의 미래는 '과거 역사 문제'를 어떻게 다뤄나갈 것인지가 관건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날 회견에서 두 장관은 과거사 문제에 대해 미묘한 시각 차이를 드러냈다. 조 장관은 지난해 말 한·일 갈등 재연 조짐을 보인 사도광산 추도식 문제와 관련한 질문에 "추도식 문제는 희생자를 진심으로 위로하고 앞으로 역사적 의미를 기억하는 행사가 되도록 일본 측과 진지하게, 솔직하게 협의하기로 했고, 우리가 생각하는 여러 우려 사항을 분명히 전달했다"고 밝혔다. 지난해와 같은 추도식이 계속 진행되어서는 안된다는 의미를 담은 언급이다.
이와야 외무상의 발언은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한·일 간 합의는 원만한 타협의 결과라는 뜻을 담고 있다. 사도광산 관련 합의가 일본이 조선인 노동자 강제동원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불완전한 미봉책이며 결국 추도식 문제에서 일본이 당초 약속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외교적 참사'임이 드러났다는 한국 측의 인식과는 완전히 다른 발언이다. 또한 일본은 앞으로 있을 추도식도 지난해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할 것이라는 점을 확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이와야 외무상은 2015년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총리가 '전후 70년 담화(아베 담화)'에서 밝힌 미래의 한·일 관계에 대한 일본 측의 시각이 계속 유지될 것임을 분명히했다. 이와야 외무상은 올해 종전 80주년을 계기로 발표되는 일본의 담화가 아베 담화의 인식을 이어갈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내각은 지금까지 정부 입장으로서 밝혀 온 것처럼 역대 정부의 역사 인식 담화를 잘 이어받고 있다"면서 "이 인식에는 전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아베 담화는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일본 정부가 발표한 문건으로는 단연 최악으로 꼽힌다. 당시 아베 총리는 고노 담화를 포함해 역대 일본 내각이 과거사 문제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음을 언급했지만 아베 총리 자신은 사죄도 유감도 표명하지 않았다.
또한 아베 담화는 "전쟁과 아무 관계가 없는 미래 세대에 사과를 계속할 숙명을 지게 해서는 안된다"고 선언함으로써 앞으로는 일본이 과거사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사과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했다. 일본의 침략 전쟁 시발이 된 러·일 전쟁에 대해서도 "많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줬다"며 일본의 침략을 미화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실제로 일본은 아베 담화 발표 이후 한국에 과거사 문제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있으며 식민지배가 합법이었다는 인식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다. 또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주장을 정부 차원에서 노골적으로 펴고 있다.
이날 이야와 총리의 언급은 일본 정부가 아베 담화의 인식을 이어받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 같은 인식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한·일 관계가 원만하게 유지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양측 모두 인정하고 있다. 또한 안보·경제 문제에서 예측할 수 없는 트럼프 행정부의 재출현으로 한·일의 협력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인식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날 공동기자회견은 한·일 관계에서 가장 근본적 요소인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커다란 인식 차이가 여전하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향후 양국 관계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한·일 관계에 정통한 외교 전문가는 "한·일 모두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인 과거사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면돌파를 회피하고 있다"면서 "해마다 닥쳐오는 '다케시마(독도)의 날', 외교·국방 백서, 역사 교과서 기술, 야스쿠니 참배 등의 문제가 불거질때마다 한·일 관계 전체가 흔들리는 현상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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