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길고 묵직한 여운…아시아 초연 ‘스피킹 인 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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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텔방에 들어온 레온(강필석)과 제인(김지현), 피트(김종구)와 쏘냐(전익령)
[뉴스핌=장윤원 기자] 단편적 이야기의 담담한 나열이 얽히고 설켜 큰 그림을 완성한다. 여운은 길고 묵직하다.
 
호주 유명 극작가 앤드류 보벨(Andrew Bovell)의 대표작 ‘스피킹 인 텅스(Speaking in Tongues)’가 호주 시드니 초연(1996년) 이후 20여 년 만에 한국 상륙했다. 한국 초연이자 아시아 초연이다. 
 
이 연극의 가장 큰 특징은 여타 작품에서 볼 수 없는 형식적 개성이다. 저마다 다른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모습이 한 무대 위에서 오버랩 되고, 치밀한 계산 하에 대사가 겹치고 동선이 엇갈린다. 
술집에서 만난 쏘냐(전익령)과 제인(김지현)
1막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레온-쏘냐 부부와 피트-제인 부부다. 레온과 제인, 피트와 쏘냐는 한날한시 바람을 피우고, 같은 시간대 서로 다른 공간에서 벌어지는 두 장면이 한 무대에서 동시에 구현된다. 
 
2막은 1막에 나온 4명의 등장인물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인물들이 중심이 돼 전개된다. 레온이 조깅을 하다 우연히 만난 남자의 과거 이야기, 멀쩡히 길을 걷던 피트에게 소리를 지르던 여자의 뒷이야기, 제인이 목격한 옆집 남자의 남모를 사정이 베일을 벗는다. 
 
각각의 이야기는 마치 바닥에 쏟아진 퍼즐 조각들처럼 파편적으로 서술된다. 작은 퍼즐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큰 그림을 만들 듯 ‘스피킹 인 텅스’도 그렇다. 파편화된 이야기들이 작고 사소한 고리들로 연결되면서 희곡적 완성도를 갖춘다. 
각자의 고백, 닉(이승준) 사라(정운선) 닐(정문성) 발레리(강지원)
‘스피킹 인 텅스’은 인간 내면에 똬리를 튼 근본적인 욕구, 소통의 갈망을 전제로 한다. 각 인물들은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감정을 묘사함으로써 상대방과의 진정한 소통을 시도하지만, 이들의 말은 상대방에 닿지 않고 허공에 부유한다. 공감과 이해를 바라고 절규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소통의 태생적인 일방향성, 그리고 그로 인한 고독을 지적한다. 
 
무대에는 9명의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4명의 배우가 이를 소화한다. 네 배우는 레온/닉의 1인2역과 피트/닐/존의 1인3역, 쏘냐/발레리, 제인/사라에 각각 1인2역을 맡는다. 한국 초연에서는 각 배역이 더블캐스팅 돼 총 8명의 배우가 출연한다. 레온/닉 역에 이승준 강필석, 피트/닐/존 역에 김종구 정문성, 쏘냐/발레리 역에 전익령 강지원, 제인/사라 역에 김지현 정운선이다. 
 
연극이 전하려고 하는 소통의 문제는 이야기 표면에 흐르는 사건뿐 아니라, 형식이나 1인다역과 같은 요소를 통해 보다 총체적으로 다뤄진다. 기승전결이나 시간의 흐름을 무시한 단편적 이야기의 나열은 ‘말’ 그 자체를 대변하고, 너무 다른 두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 한 사람의 얼굴이 ‘이해와 소통’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처음부터 끝까지 불륜이 다뤄지나, ‘막장’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거의 유일무이한 작품이라 평가되는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도덕의 어느 귀퉁이가 무너져 내린 인간의 처절한 모습, 무언가 잃어버린 인간들의 외로움과 방황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상담하는 발레리(강지원)와 사라(정운선), 대화하는 레온(이승준)과 존(정문성)
연극 제목인 ‘speaking in tongues’는 직역하면 방언이란 뜻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의역한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적합하다. 종교적 황홀 상태에서 나오는 기도의 말이다. 제목과 함께, ‘잃어버린 자들의 고백’이라는 부제도 작품에 대해 잘 나타내고 있다. 
 
지난달 개막한 연극 ‘스피킹 인 텅스’는 오는 7월 16일까지 대학로 수현재씨어터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전석 5만 원. 만 15세 이상 관람가. 
 
[뉴스핌 Newspim] 글 장윤원 기자(yunwon@newspim.com)·사진 수현재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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