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범준 기자]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지난 1년간 '회식'이 늘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금액 상한선이 설정되면서, 회식이 줄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한국사회학회가 전국 성인남녀 직장인 425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한 결과, 주 평균 회식 횟수는 지난해 9월28일 청탁금지법 시행 초기 실시한 1차 조사(2016년 11월 11일~2016년 12월 10일)의 3.3회에서 2차 조사(2017년 8월 11일~8월 30일) 3.8회로 0.5회 증가했다. 직장인 1명당 한달 평균 2.5회 가량 회식이 많아진 것.
조사 결과를 연구·분석한 염유식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이렇게 늘어난 0.5회 정도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하다"며 "9개월 만에 한달 평균 2.5회 정도 증가한 것은 작은 변화는 아니다"고 해석했다.
① 회식, 증가의 이유
사람들은 저녁 술자리에서 주로 청탁이 일어날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한다. 이로 미뤄 회식의 증가는 청탁금지법의 입법 취지를 무색하게 한 것일까.
그러나 회식의 상대를 살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업무 관계자 혹은 친구와 회식은 거의 변화가 없는 반면 '가족' 혹은 '혼자'와 회식은 주 0.3회(월 1.5회) 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염 교수는 "회식 상대가 없거나 가족 사이에서는 부정한 청탁이 일어날 수는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적어도 저녁 회식에서 청탁의 기회가 줄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② 저녁 대신 점심
직장 동료 혹은 업무 관계자들과 이루어지는 직장인 점심의 경우, 업무적인 자리가 주 0.45회(월 2회) 가량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직장인들이 저녁 회식을 점심 식사자리로 대체하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대기업 홍보팀장인 김모(43)씨는 "청탁금지법 때문에 저녁 자리는 서로 부담스러워해 가급적 점심약속을 잡는다"며 "'맨날 술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나쁜 아빠'였는데, 요즘은 주 2~3회 저녁시간을 가족들과 함께 보낼 수 있어서 딸 아이에게 덜 혼난다"고 했다.
③ 식사 인원 늘고 1인당 비용은 감소
업무적 점심 자리는 늘었으나 총 비용은 변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점심 식사를 함께하는 인원이 청탁금지법 시행 직후보다 최근 들어 평균 0.4명 정도 늘어난 것으로 조사되면서, 1인당 점심 비용은 줄어든 것으로 볼 수 있다.
회계법인 회계사 박모(33)씨는 "요즘은 점심이라도 파트너사 관계자와 단 둘이 식사를 하면 '뭐(청탁 등) 있냐'는 식의 말을 듣기 일쑤다"며 "괜한 의심을 피하고자 아예 여럿이 만난다"고 말했다.
④ 아직 1년, 유미의한 변화는 시기상조
청탁금지법이 아직 우리 사회에 자리잡히지 않은 현 시점에서 유의미한 변화를 섣불리 진단하기가 이르다는 주장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모 대형 법무법인의 변호사는 "규제가 강력한만큼 반발도 강하고 적응도 더디기 때문에 1년밖에 안된 시점에서 법률의 효과를 논하기엔 무리가 있다"면서 "실제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사내 법인카드 사용 시 법 준수 여부 확인 등 제약이 다소 늘긴 했지만, 여전히 '관행'은 존재한다"고 귀뜸했다.
염 교수 역시 "조사 분석에 따르면 청탁금지법이 직장인들의 식사나 회식에 있어서 어느 정도 변화를 가져왔지만, 여전히 직무 관련 저녁·회식의 빈도 수와 금액은 변하지 않았다"고 했다.
또 "가족 혹은 혼자와 회식이 증가한 것은 청탁금지법 영향 뿐만 아니라 지난 1년간 경제상황과 '혼술'(혼자 술마시기) 트렌드 등 사회적 요인도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청탁금지법 도입으로 '사회적 관습과 문화가 전혀 바뀌지 않았다'고 답한 비율은 4%에 불과한 반면, '어느정도 변화가 있었다'(62%) 혹은 '변화가 있었고 새로운 문화가 정착되고 있다'(34%)는 응답 비율을 미루어 볼 때 시민들의 인식 변화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뉴스핌 Newspim] 김범준 기자 (nunc@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