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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10주기] 왕회장과 '현대'

기사등록 : 2011-03-11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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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이강혁 기자] 고(故) 정주영 창업주의 '현대'는 1947년 5월 25일 중구 초동에 '현대토건사'가 설립되면서 시작된다.

시작 당시 종업원은 기능공 10여명 정도에 불과했고 사무실도 한 해전에 설립한 '현대자동차공업사' 건물의 한 편을 이용하는 초라한 살림살이였다.

건설업에 뛰어 든 배경도 소박하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기왕이면 나도 큰돈 받아내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건업이 그렇게 생소하지도 않았다. 우선 토목 공사판에서 노동도 했었다..(중략)"

이후 현대토건사와 현대자동차공업사를 합병해 '현대건설 주식회사' 를 설립한 것은 1950년 1월.

이 당시 자본금은 3000만원(3만 圓), 종업원은 25명에 불과한 소규모 영세 건설업체였다.

그러나 이후 현대건설은 미군공사와 전후복구공사를 수행하며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한다.

현대건설이 국내 건설업 순위 1위에 오른 것은 이로부터 불과 10년만인 1960년으로 자본금 1억원, 종업원 125명의 종합건설회사로 부상한 것.

현대는 60년대말부터 자동차, 중공업 등 중공업분야에 적극 진출하면서 사업다각화를 추진하게 된다. 아울러 중동 건설시장을 적극 공략하면서 한국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수행한다.

 

현대가 그룹체제로의 변신을 시도한 것도 이 무렵으로 1971년 1월, 그룹 회장 직제가 신설돼 정주영 그룹 회장이 취임했다.

현대는 이후 조선사업 진출 등 중공업 위주의 사업다각화를 적극 추진해 70년대 말에는 계열사 수가 30여 개로 늘어나는 등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한다.

현대가 재계 정상의 기업으로 군림하게 된 것은 새롭게 이전한 세종로 사옥 시대인 70년대 중반부터. 건설ㆍ자동차ㆍ조선을 주축으로 한 중공업체제의 구축이 완료된 시기이다.

1975년 미국의 경제지 포춘이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에 선정되면서 현대는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같은 성장세는 매출액의 급격한 증가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데 1971년 239억원이었던 매출액은 3년 후인 1974년에 1,204억원으로 천억원대를 넘어섰고, 다시 3년 후인 1977년에는 1조3,278억원으로 1조원대를 돌파했다.

현대가 매출액 10조원대를 돌파한 것은 1986년(12조 199억원)이었고, 1999년에는 매출액이 97조원에 이르렀다.

2001년 정 창업주 사후 현대그룹은 지금의 현대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현대그룹, 현대백화점그룹, KCC 등으로 분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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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이강혁 기자 (ikh@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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