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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국회의원 사라진 보좌관 전성시대?

기사등록 : 2012-02-13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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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통은 간데없고 깃털만 나부끼는 여의도

최근 여의도 국회를 중심으로 대형 비리사건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의원은 어디 가고 보좌관만 보이냐”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지난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와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거액의 거마비제공, 부산저축은행 구명로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디도스(DDoS: 분산서비스거부) 공격 등 정·관계를 뒤흔들고 있는 대형사건이 외견상 모두 보좌관들을 중심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 박희태 의장은 모르쇠…비서가 주도

지난 9일 박희태 국회의장은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당시 돈봉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고명진 전 비서가 고승덕 의원에게 300만원을 돌려받은 후 이 사실을 당시 캠프 상황실장이던 김효재 정무수석에게 보고했다는 내용이 한 일간지에 보도되면서 전격 사퇴를 결정했다.

박 의장은 지난 1월 4일 고승덕 의원의 폭로 이후 여론의 비판과 소속당인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의 사퇴 촉구에도 불구하고 모르쇠로 일관하며 사퇴를 거부해왔지만 검찰 수사를 앞두고 전직 비서의 양심고백까지 보도되자 의장직 사퇴를 결심했다.

하지만 박 의장은 마지막 사퇴의 순간까지도 “저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 큰 책임을 느끼며 국회의장직을 그만두려 한다.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가겠다”는 모호한 말로 구체적인 책임을 회피했다. 전대 돈봉투는 관행으로 자신은 모르는 일이며 보좌관들이 알아서 한 일에 불과하지만 수장으로서 도의적인 책임을 지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지난 9일 열린 국회 본회의. 디도스특검법 등이 통과됐다.[사진제공: 국회]

◆ 최시중 위원장은 도의적 책임만…비리는 보좌역 몫

지난달 27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국회 문방위 소속 의원들의 해외여행시 거액의 용돈(500만원)을 제공했다는 한 신문의 고발기사로 사퇴한 배경에도 역시 최 위원장의 양아들로 불리는 최측근 정모 전 방통위 정책보좌역이 있다.

2009년 당시 국회 문방위 소속 의원의 한 보좌관은 “정 보좌역이 국회의원회관 의원실로 찾아와 명함을 건네며 최시중 위원장이 (의원이) 해외출장을 갈 때 용돈으로 쓰라고 전해달라며 500만원을 건넸다”고 말했다. 돈은 준 사람도 받은 사람도 모두 보좌관·보좌역이다.

최 위원장 역시 사퇴하면서까지 “저로 인해 방통위 조직 전체가 부당한 공격을 당하거나 주요 정책들이 발목을 잡혀서는 안된다. 이번 퇴임이 오해와 편견에서 벗어나고 새로운 도약을 하기 위한 디딤돌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자신은 이번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으나 방통위 조직을 위해 물러난다는 점을 완곡하게 역설했다.

◆ 이상득 의원 불출마 “측근 관리소홀 때문”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으로 상왕(上王)으로까지 불린 이상득 의원이 지난해 12월 11일 올 4월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유도 역시 측근인 박모 보좌관이 알선수재 혐의로 이날 검찰에 구속됐기 때문이다.

박모 보좌관은 SLS그룹 이국철 회장으로부터 구명로비 자금 5~6억 원을 받아 챙긴 혐의에 이어 제일저축은행 유동천 회장에게서 1억 5000만원을 받은 정황이 검찰수사로 확인됐다.

이상득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보좌관의 불미스러운 일과 관련해서는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점, 다시 한 번 사과드린다. 긴 설명보다 옛말의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 疎而不失)’의 심정임을 밝힌다”며 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 의원이 언급한 한자성어는 “하늘이 친 그물은 눈이 성기지만 굉장히 넓어서 악인에게 벌을 주는 일을 빠뜨리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본인은 관계없지만 보좌관의 비리에 책임을 지고 불출마를 선언할 수밖에 없는 억울한 심정을 토로한 것일까.

◆ 선관위 디도스공격 “9급비서가 공명심으로 1억 썼다”

‘보좌관 전성시대’의 백미는 역시 중앙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이다. 경찰과 검찰 특별수사팀은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중앙선관위와 박원선 서울시장 후보 홈페이지에 대한 사이버공격 사건에 대해 경찰과 검찰 특별수사팀이 수사에 나섰다.

경찰 수사는 최구식 한나라당 의원의 전 수행비서 공모씨의 단독범행이라는 결과를 발표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특별수사팀까지 꾸린 검찰 수사도 윗선의 개입 없이 공적을 세우기 위한 의원 보좌진들의 단순·우발 범행으로 결론지었다. 검찰은 공씨와 박희태 국회의장 의전비서 김모씨, 도박사이트 운영업체 직원 차모씨 등 7명을 정보통신기반보호법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했다.

검찰 수사결과에 따르면 선거 전날 룸살롱에서 술을 마시던 공씨(경남 진주)는 고향선배인 김씨에게 디도스 공격을 상의했으며 불법도박사이트를 운영하던 고향후배 강모씨에게 이를 지시했다. 최구식 의원의 운전과 잡무를 담당하던 9급 비서 공씨가 나경원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의 당선을 위해 국가기관 사이버테러용으로 강씨에게 1억원을 건넸으며 이 가운데 대가성이 인정되는 것은 1000만원뿐이라는 것이 검찰 수사결과의 핵심이다.

이 사건의 배후에 대한 의혹이 해소되지 않아 지난 9일 ‘디도스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수행비서가 사건 주범으로 구속기소된 최구식(무소속) 의원은 “특검수사에 협조하겠다”면서도 “이미 가혹할 정도로 수사를 받은 사람들이 이중, 삼중의 고통을 당할 걸 생각하면 가슴 아프다. 이 사건은 배후가 있을 수 없는데 수십억 혈세를 쓰며 특검까지 가는 우리 정치현실이 안타깝다”고 주장했다.

◆ ‘보좌관 전성시대’란 말이 회자되는 이유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최근 보좌진들이 주도했다는 대형사건들이 연달아 터지면서 국회 보좌관들 사이에 ‘보좌관 전성시대’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며 “9급 비서(월급여 평균 150만원 수준)가 IT회사에 1억원씩을 줘가며 디도스 공격을 주도한 사건을 두고는 ‘비서 월급이 보좌관보다 많은가봐’라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왜 보좌관들은 몸통을 대신해 구속까지 감수하는 희생양의 역할을 자임하는 것일까.

다른 보좌관은 “국회 보좌관들이 받는 대우는 나쁘지 않은 편이지만 의원 말 한마디에 잘리는 ‘파리목숨’이다 보니 의원에 대한 충성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며 “의원들도 이를 알기에 ‘네가 이번에 책임지면 내가 알아서 해줄게’라는 말로 보좌관들이 덮어쓰기를 요구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현행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의원 한명 당 보좌진은 별정직 4급(2명), 5급(2명), 6급(1명), 7급(1명), 9급(1명)으로 구성된다. 보통 4급을 보좌관, 5급을 비서관, 6·7·9급을 비서라고 부르지만 일반적으로 보좌진이라고 하면 이들 모두를 총괄하는 의미다. 국회 보좌관협의회 가입대상도 보좌진 모두다.

문제는 보좌진의 임면권이 전적으로 해당의원에게 귀속된다는 것이다. 물론 ‘프로’ 혹은 ‘선수’로 인정받는 보좌관들의 경우 “직업이 보좌관”이라고 할 정도로 전문성을 인정받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영감’으로 불리는 의원과의 관계가 원만하고 ‘코드’가 잘 맞으면 장수할 수 있으나 그렇지 못했을 때는 의원이 “그만 두라”고 하면 바로 짐 보따리를 싸야 하는 게 보좌진들의 현실이다. 그마나 모시던 의원과 잡음 없이 좋게 헤어져야 다른 의원실로라도 갈 수 있다.

지난 9일 박희태 국회의장의 사퇴를 결정지은 고명진 전 비서는 컴퓨터로 작성해 ‘고명진’이라는 이름과 지장을 찍은 ‘고백의 글’을 통해 “정작 책임 있는 분이 자기가 가진 권력과 아랫사람의 희생만으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썼다.

몸통은 사라지고 깃털만 나부끼는 늦겨울 여의도 국회 풍경이 스산하기만 하다.

[뉴스핌 Newspim] 이영태 정경부 부장 (medialyt@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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