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노종빈 기자] 또다시 주식시장에서 국민연금의 전략적 결단이 요구되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전광우(사진) 이사장이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5일 여의도 증권가에 따르면 한라공조 지분 70%를 보유한 최대주주 비스티온이 한국증시 상장폐지를 전제로 한 공개매수 계획을 밝힌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 비스티온, 9131억 투입…돌연 '상장폐지' 선언
비스티온은 이날 한라공조 공개매수에 총 9131억원을 투입키로 하고, 오는 24일까지 기존 주주들 지분 30%를 주당 2만8500원에 공개매수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10시 43분 현재 한라공조 주가는 2만8100원대까지 솟아오르며 공개매수가에 불과 2%대 차이까지 육박하고 있다.
비스티온은 한국을 차량 공조 시스템의 글로벌 R&D 허브로 육성하겠다는 방침을 정하고 한라공조를 100% 자회사로 편입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날부터 또다시 국민연금의 고민이 시작되고 있다. 국민연금은 한라공조 주식을 9.81% 보유한 2대 주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개매수 가격인 2만8500원은 증권가에서 평가하는 한라공조의 주당 가치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이어서 국민연금의 참여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이는 한라공조의 전일 종가보다 14.2% 프리미엄을 더한 금액이다. 하지만 증권업계 전문가들은 한라공조의 주당 적정가치를 3만5000원~5만원대까지 보고 있다.
이날 KB투자증권의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쥐게 될 '캐스팅 보트'에 대한 밸류에이션은 주당 3만8000원에서 5만원 사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회사는 한라공조의 기존 목표주가로 3만5000원을 제시하고 있다.
◆ 헐값 매각, 혹은 국부유출 가능성?
따라서 국민연금이 2만8500원대에 공개매수에 응하게 되면 헐값 매각과 함께 더 나아가서 국부 유출이라는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국민연금이 한라공조 지분을 인수한 가격대는 주당 8000원대 후반인 것으로 알려져 두배가 넘는 수익을 실현하고픈 욕구를 느낄 만한 상황이다.
현재 국민연금이 검토할 수 있는 방안은 공개매수 참여와 거부, 제3자 매각 등 3가지로 분석된다.
공개매수에 참여할 경우에는 헐값 매각이 된다. 또한 참여 거부할 경우에는 대주주로서의 권리를 챙겨야 하는데 이와 관련한 관리 프로세스가 매우 불투명한 상황이다.
공개매수가 성립되면 국민연금 몫을 제외한 한라공조의 비스티온 지분은 90%에 육박하게 된다. 이 경우 나머지 9.8%대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이 과연 상장폐지 뒤에도 주요주주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2003년 이베이의 옥션 100% 공개매수에서 참여하지 않았던 소액주주들이 주주권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 불만족했던 경우와도 유사한 사례를 나타낼 것으로 분석된다.
국민연금으로서는 이 점이 보이지 않는 리스크인 셈이다.
◆ 국민연금, 전략적 판단 상황에 '취약'
따라서 국민연금은 이와 같은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이번 제안을 받아들이고 홀가분하게 지분 처분에 따른 차익을 챙기고 싶다는 욕구가 강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관점에서 국민연금은 이번이 아니더라도 지분 매각 쪽으로 방향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결정을 유보한 채 제 3자인 전략적 투자자(SI)에게 지분을 넘기는 방안도 충분히 검토할 수 있다.
세계 4대 규모로 덩치가 커진 국민연금은 그동안 국민들의 노후를 보장하는 기금이라는 무게감과는 달리 증시에서 전략적 판단이 필요한 경우에 직면하면 제대로 된 결단을 내리지 못해 아쉬움을 줘 왔다.
지난 1월 넥센그룹의 대주주 승계 작업에서의 넥센타이어 주식 교환을 위한 공개매수에서도 국민연금은 들러리를 서주는 역할을 했다.
국민연금은 넥센과 넥센타이어의 주요 주주였음에도 불구 별다른 액션을 취하지 않았다.
이같은 '전략적' 결정으로 인해 국민연금의 지주회사 넥센에 대한 지분율은 기존보다 약 20% 가까이 줄어들었을 것으로 분석됐다.
국민연금은 공개매수에 참여하지는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넥센과 넥센타이어 등 주요기업들에 대한 영향력을 크게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던 것이다.
◆ 글로벌 '갑' 국민연금에 거는 기대
당시 국민연금의 입장은 국내 대기업들의 내부적 경영상의 결정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주식을 사긴 사되 주주로서의 권리보다는 투자자로서의 수익률 관리에 더 치중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비스티온은 국내 기업도 아니고 외국 기업이기 때문에 이와는 무관한 경우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 측은 "현재로서는 노코멘트"라는 것이 공식적인 입장이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400조원에 이르는 글로벌 '갑' 국민연금이 과연 위상에 걸맞게 세계적인 기업의 대주주로서 전략적 결정을 하고 주주로서의 권리를 충분히 행사할 만한 능력이 되는지 여부다.
만약 그러한 모습을 보이지 못할 경우 국민연금은 커다란 '국민적 신뢰도' 리스크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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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노종빈 기자 (unti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