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노종빈 기자] 인기 작가 김진명이 지난 2002년 발표한 소설 '바이코리아'에는 흥미있는 대목이 나온다.
바로 삼성전자에 대한 외국인들의 인수합병(M&A) 시나리오가 등장하고 삼성의 이병철 선대회장과 이건희 회장이 실명으로 거명된다.
◆ 소설 속에 나타난 삼성전자 M&A 시나리오
이 소설의 후반부에는 글로벌 기업사냥꾼 제임스 코크란이 등장, 외국인 주주들을 규합해 세력을 형성한 뒤 자신의 지분을 매입 가격의 두 배인 주당 600달러에 되사줄 것을 요구한다.
소설 속에서 이건희 회장은 코크란의 지분을 50억달러에 사들이고 이로 인해 코크란은 앉은 자리에서 25억달러의 순이익을 챙긴다.
하지만 주가가 폭락할 것이라는 코크란의 예상과는 달리 삼성전자는 바이오(생물)반도체 기술을 공개하면서 오히려 더 강력한 매수세를 형성, 급등하게 된다.
씨티그룹 등 외국인 주주들은 이 부회장과의 회동에서 일개 기업사냥꾼의 말에 부화뇌동한 것은 부끄럽다며 머리숙여 사죄한다는 줄거리다.
◆ 현실성 없는 줄거리…여전한 '리스크'
상용화 가능성이 입증되지 않은 바이오 반도체 기술로 막대한 시가총액의 삼성전자의 주가가 마치 소형주처럼 급등했다는 것은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또한 수조원을 주무를 수 있는 투자자가 더 큰 욕심을 부려 삼성전자에 그린메일(기업사냥꾼이 경영진에게 주식을 되사라고 요구하는 행위)을 시도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세계적인 금융회사의 노회한 수장들이 삼성 CEO 에게 머리숙였다는 점들은 비현실적인 요소로 소설의 재미를 크게 반감시키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소설이 지적하는 한 가지 포인트는 지금도 변하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 있다.
다시 말해 삼성전자에 대한 삼성 이건희 회장 측 우호적 지분은 그때나 지금이나 17.6%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마저도 고객의 돈으로 운용하는 금융계열사인 삼성생명 등의 의결권이 제한될 경우 실질적 지배력은 8.8%로 크게 떨어지게 된다. 반면 삼성전자에 대한 외국인 지분율은 50.7%에 이르고 있다.
삼성 측 관계자는 최근 대선국면에서 제기되고 있는 경제민주화 논의 등으로 인해 의결권이 크게 줄어들 경우 삼성전자가 외국인들의 손에 넘어가는 상황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 삼성전자, 애플 대비 3분의 1 이상 저평가
최근 국내외 IB업계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애플에 비해 크게 저평가됐다고 입을 모은다.
올해 5월 141만 8000원까지 상승했다 현재 주당 130만원 초반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삼성전자가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의 빠른 성장 환경 등을 감안할 때 가장 저평가된 주식 중 하나라는 것이다.
이들은 보수적으로 봐도 애플에 비해 30~40%는 저평가돼 있다고 지적한다.
신한금융투자 김영찬 연구위원의 분석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올해와 내년 예상 주가수익비율(PER)는 10.6배와 9.6배로 애플의 14.7배와 12.2배에 비해 크게 저평가돼 있다.
또한 지난 6월말 결산 현재 주당자산가치도 애플에 비해 절반 이상 저평가돼 있고 자기자본이익률도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또한 스마트폰과 부품 부문간 결합 시너지에 따른 월등한 수익창출 능력과 수익성 방어능력을 감안하면 최근 삼성전자의 강세에도 불구 여전히 저평가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한 외국계 IB투자업계의 임원는 "삼성전자의 기업가치는 M&A 관점에서 대단히 매력적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면서 "애플에 비해 3분의 1정도 혹은 절반 정도로 저평가 돼있다"고 지적했다.
◆ 애플, 삼성전자 송두리째 삼킬 가능성은?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재 삼성전자 주식을 사들일 여력을 가진 곳은 많지만 삼성전자에 대한 M&A 차원에서 가장 관심을 가질만한 곳은 애플이다.
애플은 두가지 이유에서 삼성전자를 인수하려는 욕구를 가질 수 있다.
첫째로는 글로벌 휴대폰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누르고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거나 더욱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다.
애플이 북미 시장에서 최강인 것과 마찬가지로 삼성의 브랜드는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는 카드이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융합하는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다.
애플의 연구개발 기술력은 높지만 디지털컨버전스(전자기기융합)라는 자신들의 전략을 성공시키기에는 제품군이 다양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약점이라는 지적이다.
◆ 애플 인수시 삼성전자 분리매각 가능성
잡스 사망 이후 애플은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서비스를 TV 등 가전분야 전반으로 확대하려는 전략을 검토하고 있지만 상용화 과정에서 크고 작은 기술적 한계를 경험하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의 경우 반도체 메모리 전자 통신 부품 가전에 이르기 까지 전자산업 전반에서 꾸준히 제품을 내놓고 있다.
또한 애플과의 시너지 효과를 노릴 수 있는 반도체와 통신단말 부문 역시 다각화돼 있고 부품마저 수직계열화 돼 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가 가진 부품이나 기술력만으로도 애플의 수요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을 전망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거대하지만 큰 돈이 되지 않거나 애플의 전략상 관심이 없고 불필요한 사업 부문도 많을 전망이다.
따라서 전략적으로 불필요한 사업부문은 오히려 조기에 매각함으로써 투자금 회수와 현금 확보를 꾀할 전망이다.
◆ 돈은 큰 문제 안되지만…실제 걸림돌 산적
하지만 엄청난 규모의 두 회사 간 인위적 결합이다 보니 걸림돌도 산적해 있는 모습이다.
무엇보다 미국과 한국, 유럽 주요국에서 삼성과 애플의 점유율을 합칠 경우 대부분 과반에 가깝거나 이를 넘어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경우 반독점 금지 규정에 따라 인수합병 자체가 승인이 나지 않을 전망이다. 따라서 인수를 위해서는 이같은 걸림돌을 효과적으로 최소화해야 한다.
애플의 관점에서는 삼성전자를 인수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재무적 투자자들을 동원할 수 있을 전망이어서 자금력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삼성전자 주가 100만원대 이상으로 들어온 후발 투자자들은 이같은 삼성전자의 경영권 분쟁가능성도 어느 정도 계산하고 들어온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한 IT시장 분석가는 "애플이 투자금이나 노력에 비해 너무 복잡한 사업들을 떠안게 된다는 점이 오히려 번잡스러운 리스크가 될 수 있다"면서 "한가지 분명한 것은 잡스가 살아있었다면 애플의 삼성전자 M&A는 상상하기 힘든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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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노종빈 기자 (unti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