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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 국제칼럼] 크루그먼, 경제학자와 선동가 사이

기사등록 : 2013-01-08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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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김윤경 국제전문기자] `울트라 케인지언(Keynesian)`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최근 다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역시나 케인지언답게 부양론의 기치를 높이고 있다. 전 세계 정부가 유례없는 재정난을 겪고 있는 마당에 지금 미국과 전 세계 경제를 구할 수 있는 건 정부 곳간을 푸는 것밖에 없다고 외친다.

지난 6일(현지시간) 샌디에이고에서 폐막된 미국경제학회(AEA) 연례 총회에서도 크루그먼의 목소리가 꽤 컸던 것 같다. AEA는 매년 1월 초 열리는 경제학계 최대 행사. 위기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최근 몇 년간은 석학들이 솔루션이나 혜안을 제시할 수 있을 지 특히 더 주목을 끌고 있다.

직접 취재를 가보지 못해 아쉽지만 내외신을 통해 전해진 소식을 추려보면 크루그먼 교수의 부양론이 단연 눈에 띈다. 그는 현 시점에서 정부 지출을 줄이면 재앙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새로운 얘긴 아니다. 지난 2008년에는 오히려 그의 이 일관된 부양론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집권과 함께 속된 말로 먹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대적인 공공 투자를 통해 일자리를 살리고 경제를 살리겠다는 신(新) 뉴딜 정책으로 경제 정책의 첫 발을 내딛었다. 크루그먼 교수는 그 해 노벨 경제학상까지 수상하며 상한가를 쳤다.

폴 크루그먼 미 프린스턴대 교수(출처=가디언)
크루그먼 교수의 부양론은 멈춘 적이 없다. 지난해엔 <지금 이 디플레이션을 끝내라(End This Depression Now)>란 책을 펴냈고 뉴욕타임스(NYT)에 싣는 칼럼을 통해서 계속해서 정부의 펌프질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재정절벽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미국 경제, 재정난 때문에 전 세계를 뒤흔든 유럽, 그리고 금융위기에서 헤어 나오느라 최대의 재정정책을 펼쳐 더 이상 여력이 없는 각국 정부들을 생각할 때 지금 이것이 유효한 주장인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게 사실이다. 특히 미국은 재정절벽 협상 1라운드를 가까스로 넘겼지만 다음 달 15일까지 부채한도(16조4000억달러)를 늘리지 못하면 부도를 맞을 수밖에 없는 긴박한 상황.

이에 비해 AEA 총회에서 201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크리스토퍼 심스 프린스턴대 교수는 재정적자를 줄이기는 것이 중요하며 그건 증세를 통해 가능하다는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했다. 재정적 물가결정 이론(fiscal theory of the price level determination), 즉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다시 말해 과도한 재정적자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이론의 대가 다운 말이었다.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 총재 등은 연방준비제도(Fed)의 양적완화가 더 이상 지속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그렇잖아도 지난달 연준 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서 양적완화 중단 논의가 이뤄졌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어쩌면 한계를 넘어서까지 계속되고 있는 지도 모르는 통화정책의 중단까지도 얘기되는 지금이다.

물론 4년 전 구제금융과 재정, 통화정책이란 모든 카드를 동원했던, 결과적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퍼부었던 미국 등 각국 정부와 통화당국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고 본다. 그 땐 수렁에 빠지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좀 달라지지 않았는가.

그래도 크루그먼은 6일자 NYT에 게재한 <큰 실패(The Big Fail)>란 칼럼에서 그리스 사태로 인해 재정지출을 줄이는 데만 혈안이 돼 있는 각국 정부와 이를 종용하는 경제학자들을 어리석은 자들로 몰았다. AEA에서도 그런 주장들이 판을 쳤다면서 "설익은 긴축은 심각한 실수를 불러올 것"이라고 독설을 서슴지 않았다.

최근엔 일부의 주장이긴 하지만 크루그먼을 오바마 2기 재무장관으로 추대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마크 웨이스브롯 미 경제 및 정책 연구센터(Center for Economic and Policy Research) 이사는 지난 5일 영국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크루그먼은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경제학자일뿐 아니라 월스트리트의 긴축 요구에 맞설 수 있는 지적 능력과 통합력을 갖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재무장관으로 임명되어야 한다"고 했다.

크루그먼 재무장관 기용 주장엔 유명 배우 대니 글로버까지 합세했다. 글로버는 오바마 대통령이 크루그먼을 재무장관으로 임명하길 바란다는 청원을 올렸다. 크루그먼은 이 소식을 접하고 자신의 블로그에 "천만의 말씀. 정말 나쁜 아이디어입니다(I’m flattered, but it really is a bad idea)"라면서 소신있는 발언을 하기 위해선 미스터 아웃사이드(Mr. Outside)로 남아있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다행이다. 적어도 이 답변으로 그가 경제학자로서 존재 이유를 찾는다는 걸 알게 되어서. 그가 하도 자신의 전공분야인 무역과 국제경제학보다는 너무 정책 선동적인(?) 발언들에 충실해 오다보니 그가 입각에 관심이 있는건 아닌가 의심스러운 차였기 때문이다.

또 7일자 칼럼에서 최근 백악관에 재정절벽을 넘기 위해 1조달러짜리 백금 주화를 발행하자는 청원이 줄을 잇고 잇는 것에 대해 경제학자다운 일침을 가한 것도 반갑다. 백금 주화는 연준이 아니라 재무부가 발행할 수 있기 때문에 이걸 발행한 뒤 연준에 맡기고, 이걸 정부가 다시 사용하도록 하면 재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은 관심을 끌 만한 술책(gimmick)이겠지만 바라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누구보다 열정적인 크루그먼의 칼럼니스트로서의 칼날은 무뎌지지 않길 바란다. 다만 마냥 공격적인 부양론만 펴기엔 지금의 상황도 감안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뉴스핌 Newspim] 김윤경 국제전문기자 (s914@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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