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강혁 기자] 올해 상반기 인수합병(M&A) 시장 최대어인 벌크선사 STX팬오션 매각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하지만 업황 불확실성에 인수 유력 후보자로 물망에 오르는 국내 대기업들의 사정이 여의치 않아 흥행몰이가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시장 일각과 매각 측에서는 국내에 팔리는 것이 제값받기나 해운산업 경쟁력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해외쪽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4일 M&A업계에 따르면 STX그룹과 매각주관사인 모건스탠리,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 등 매각 측은 올해 초 매각작업이 시작되면서부터 국내 대기업들의 STX팬오션 인수전 참여를 긍정적이라고 내다봤다.
해외보다는 국내에 매각하는 것이 흥행을 통한 가격형성 측면에도 도움이 된다는 게 매각 측의 생각이었다. 매각 측 한 관계자는 "최대한 적극적이고 신속하게 팔아 보겠다는 입장"이라면서 "흥행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국내의 관심이 높아 기대치는 물론 있다"고 말했다.
벌크업황 부진과 신용등급 하락의 여파 속에서 흥행코드를 고민해 왔지만 주거래은행이자 2대주주인 KDB산업은행 측이 지원을 검토하는 등 매각의 원활한 진행에도 힘을 받고 있다는 판단이다. 산업은행은 STX팬오션 지분 14.99%를 보유 중이다.
이같은 분위기 속에서 지난달 매각주관사는 티저레터(매물설명서)를 SK, CJ, 삼성, 현대차 등 국내 대기업 인수 물망 후보자들에게 발송했다.
제값을 받기 위한 가치산정 실사가 최근 마무리되면서 투자제안서(IM)는 구정 직후부터 후보자를 중심으로 발송돼 이달 말까지는 어느정도 매각작업의 윤곽을 잡아보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는 인수전 참여를 두고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던 대기업들의 사정이 여의치 않아지면서 고민스럽게 됐다.
인수의향을 내비치며 '적극 검토' 입장을 밝혔던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의 법정구속 사태에 따라 각종 신규 사업을 잠정 중단키로 결정했다. 총수 구속사태 해결에 그룹 수뇌부가 역량을 집중해야 하는데다, 총수의 부재 속에서 의사결정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황규호 SK해운 사장은 지난달 초 해운가족 신년인사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확실하게 결정된 것은 없지만 여건이 되는지 보고 있다"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전한 바 있다.
물류사업 확대와 시너지 극대화 측면에서 STX팬오션 인수에 관심을 보여왔던 CJ그룹 역시 분위기가 좋지 않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상대로 한 이재현 CJ 회장의 부친 이맹희씨의 상속분 청구 소송이 패소로 결론나면서 어느 때보다 그룹의 분위기는 무겁다.
여기에 CJ대한통운과 CJ GLS의 통합작업이 5월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보여 STX팬오션에 눈길을 돌리기가 만만치 않다. CJ의 한 고위 관계자는 "티저를 받아서 검토작업을 하고 있지만 현재로써는 인수전에 뛰어들기가 쉽지 않다"고 회의적인 시선을 나타냈다.
삼성그룹이나 포스코(POSCO)그룹 등 잠재적 후보자도 내실경영을 통한 질적성장을 올해 최대 과제로 잡았을 만큼 대내외 경영환경을 우려스럽게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업황 불확실성이 여전한 1조원 가까운 벌크선사 매물에 대해 주주들을 설득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주요 주주인 국민연금의 눈치도 보이는 상황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경제민주화 코드에 따라 이들 대기업의 주요 주주인 국민연금이 시장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STX팬오션의 매물설명서가 들어간 삼성물산의 경우는 9.68%의 지분율을, 포스코의 경우는 5.94%의 지분율을 보이며 최대주주 지위에서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다.
M&A업계 일각은 그나마 국내 대기업 중에서는 STX팬오션의 잠재적 후보 중 가장 가능성 있는 후보로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글로비스를 거론하고 있다. 다만 글로비스 역시 국민연금의 지분율(8.08%)이 상당하고, 그룹 물량 의존도가 높아 벌크선사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기는 만만찮다는 시선도 나온다.
이런 맥락에서 매각 측은 이달 중 IM 발송이 시작되면 해외 후보자들에게도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낼 예정이다. 이미 모건스탠리가 매각작업을 주도하면서 유럽계 등 해외 선사와 투자은행 몇몇 곳과 의견을 주고받는 것으로 전해진다.
매각 측 관계자는 "2004년 STX팬오션의 전신인 범양상선을 인수할 당시, 세계 5위 선사인 조디악 마리타임 등 해외업체 14곳이 뛰어들어 경쟁이 치열했다"면서 "벌크선사로는 국내에서 1위이고, 세계에서 5위이다보니 해외쪽에서는 당연히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해운비즈니스만 살아나면 충분한 경쟁력과 가치가 있다는 게 해외쪽의 판단이라는 것이다.
한편, STX팬오션 매각작업은 STX가 보유한 27.35%의 지분과 STX조선해양의 지분 7.02% 등이 대상이다. STX 내부에서는 전체지분의 35% 매각(약 7000억원대)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붙여 1조원 안팎의 최종 매각가격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M&A업계 관계자는 "STX의 경우 그룹 전체 10조원 가량의 부채를 5조원 가량의 부채를 가지고 있는 팬오션 매각으로 반으로 줄일 수 있어 적극적이고 신속하게 작업을 진행할 필요성이 있다"면서 "최근 해운 사이클 등을 고려할 때 흥행요소는 충분하다"고 내다봤다.
[뉴스핌 Newspim] 이강혁 기자 (ik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