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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 국제칼럼]치마와 바지, 그 해묵은 논란

기사등록 : 2013-02-05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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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김윤경 국제전문기자] 만 여섯 살, 유치원 졸업을 앞둔 딸아이는 온 세계가 다 궁금하지만 그 궁금한 것 중 하나는 이것이다. "엄마는 왜 치마를 안 입어?"

내가 치마를 '절대' 입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입지 않는 것은 맞다. 아이에게도 어려서부터 실용적이란 이유로 바지 위주의 옷차림을 하게 했는데 언젠가부터 치마만 입고 싶다고 조르고 있다. 그러면서 이상했는지 엄마는 왜 바지만 입느냐고 천진한 질문을 하는 것이다. 

오랜 습관인지라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가 아이의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생각해 보니 "활동하기 불편하고 신경이 쓰여서" 겨울일 경우엔 "더 추워서"가 가장 큰 이유였다.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추가된 이유가 있었다. "여성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가 그것이다.

기자로 사회에 발을 디딘 1990년대 중반은 지금보다 훨씬 남성 중심적인 사회였다. 여기자 선배들은 있긴 했지만 많지 않았다. 선배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남성같은, 혹은 남성보다도 더 남성스러운 선배. 아니면 취재 분야든 어디든 조용히 구석 쪽을 찾는 선배. 후자 쪽은 당시엔 패자라고 여겼기 때문에 전자 쪽을 따라보려 했지만 마뜩찮긴 마찬가지였다. 여성성을 거부해야 하는 게 과연 맞는 것일까? 일부 남자 선배들이 "여기자도 여자냐?" "임신하고도 술 마시고 담배 피웠던 전설의 여기자들도 있다고"하면서 술을, 정확하게는 폭음 동참을 강요할 때 참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적어도 '천상 여자'로는 안보이고 싶다는 나름대로의 결심을 했다. 머리 길이는 어깨 이상으로 기르지 않기, 치마나 원피스를 입고 다지니 않기, 화려하지 않은 무채색 위주의 옷차림을 하기 등의 외모 관리도 여기에 속한다. 이게 십수년 굳어지다 보니, 게다가 취향도 그렇다 보니 지금까지도 치마를 잘 입지 않게 되었다. 이제 똑똑한 알파걸 후배들의 활동이 워낙 많아졌고, 옷차림이나 외양 갖고 여성을 차별할 수 없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됐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싶다.

바로 며칠 전에도 '치마 논란'에 화가 치밀었다. 아시아나항공 승무원들의 외모 규정이 성 차별적이어서 민주노총이 시정을 해달라고 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낸 소식이었다. "바지는 안되고 치마는 무릎 중앙선에 맞춰야 한다. 고개를 숙였을 때 머리카락이 흘러내리지 않아야 하며 머리핀은 두 개까지만 가능하다. 근무 중 안경을 쓸 수 없다" 같은 시대착오적인 규정들이 버젓이 여승무원들을 옥죄고 있었던 것이다. 풍문으로 들었던 얘기였지만 이렇게 확인을 하니 아연해졌다.

회사측에선 "지나치게 돌발적인 개성은 승객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며 반박했다고 하니 더 갑갑하다. 경쟁 항공사는 이미 몇 년 전부터 바지도 입을 수 있도록 허용했는데 하나도 돌발적이지 않아 보였다. 오히려 그들은 너무 세련된(!) 머리 장식이라든지 바지와 치마 색이 흰색이라 실용적이지 않다는, 그야말로 현실적인 항의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나자트 발로-벨카셈 프랑스 여성인권장관
오늘 새벽 출근 준비를 하며 라디오를 통해 프랑스 파리가 여자는 바지를 입을 수 없도록 했던 조례를 213년만에 비로소 폐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물론 파리 여성들이 바지를 입지 못해온 것은 아니지만 이런 조례가 있었고, 또 남아 있었다는 것 자체가 우스웠다.

나자트 발로-벨카셈 여성인권장관은 4일(현지시간) "1800년 11월17일 현대 프랑스 가치와 법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파리 여성들에게 바지를 입지 못하도록 한 조례가 남녀평등 원칙에 위배돼 이를 공식 폐지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찾아보니 더 우스웠다. 이 조례는 1892년과 1909년에 개정됐는데 "여성들이 자전거나 말을 타야할 때 바지 착용을 허용한다"고 살짝 바뀌었다. 그리고선 계속 형식적이긴 하지만 이 조례는 존재해 왔던 것이다.

하지만 파리 여성들은 이 조례가 있기에 앞선 1789년 프랑스 혁명 당시 여성도 바지를 입을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한 이른바 '상-퀼로트(Sans-culottes)'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퀼로트는 요즘엔 멋스럽게 입는 무릎 길이의 치마바지를 말하는데 당시엔 부르주아들이 선호했던 실크로 무릎 처리가 된 통 반바지를 지칭했다. '상(Sans)'이란 프랑스어로 '없는'이란 뜻. 이를 합친 말 '상-퀼로트'는 말 그대로는 '퀼로트를 입지 않은'이 되지만, 긴 바지를 입고 노동을 해야 했던 노동자 계급과 서민들, 혁명을 주도한 민중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그리고 '상 퀼로트'는 결국 프랑스를 지배했던 모순된 구(舊) 체제,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을 무너뜨리게 된다.

AFP는 여성들의 옷차림은 여전히 프랑스에서 정치적으로도 울화통 터지는 상황이 벌어지게 한다고 전했다. 37세의 세실 듀플로 지역평등주택장관은 지난해 5월 프랑수와 올랑드 대통령 내각의 첫 회의 때 청바지를 입고 갔다가 비판의 화살을 맞았고, 이후 꽃무늬 여름 원피스를 입고 국회에 갔다가 온갖 야유와 남성들이 불어대는 휘파람 소리를 들어야 했다는 게 그 예. 

바지를 입은 파리 여성이 거리를 겆는 모습(출처=France24)
그러나 프랑스 의회에서 동성 부부를 인정하는 법안이 1차 투표를 통과하던 지난 2일 일단의 여성 의원들이 청바지를 입고 의회에 출석하면서 의회의 의전(protocol)을 깨려는 시도를 보여 눈길을 끌기도 했다. 동성끼리도 결혼을 허하는 판에 아무리 법전의 박물관에서 잠자고 있던 것이긴 했어도 여성의 바지 착용 금지 조례가 이제야 폐지되다니.

"치마는 여성의 복장"이란 편견은 공식적으로는 깨졌지만 우리 사회엔 승무원 복장 규정처럼 여전하다. 

아이 유치원에서도 행사를 한다며 옷차림을 정해 온 안내문을 보면 "여자 아이는 청치마, 남자 아이는 청바지"식이다. 지난 2003년 여학생 교복을 치마로만 한정하는 건 남녀차별의 소지가 있다는 여성부의 결정이 있긴 했지만 사실상 여학생들은 거의 치마 교복 차림을 하고 있다. 바지를 입어 튀지 않으려 여학생들은 추운 겨울에 종아리를 내놓고 교문을 들어선다. 들어선 이후엔 활동성과 보온성을 위해 치마 안에 체육복을 껴입는 요상한 '레이어드(겹쳐입기) 룩'을 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요즘 여학생들은 오히려 더 패셔너블하게 교복을 입기 위해 치마 길이를 더 짧게 하려고 안간힘이라고 한다. 2년 전인가 한 도 교육청은 이렇게 짧게 입은 여학생들이 앉아있는 모습 때문에 교사들의 시선처리가 어려워져 8억원이나 들여 여학생 책상에 '치마 가림판'을 설치하기로 결정을 내리기도 했으니 뭔가 계속 엇갈려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뉴스핌 Newspim] 김윤경 국제전문기자 (s914@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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