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유럽중앙은행(ECB)의 올해 첫 정책회의가 열린 7일 유로화는 달러화에 대해 7개월래 최대폭으로 떨어졌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유로화 상승이 인플레이션 리스크를 차단하는 만큼 추가 금리인하 여지가 있다는 입장을 밝힌 데 따른 결과였다.
기준금리가 이미 제로에 가까운 0.75%라는 사실은 투자자들의 시선을 크게 끌지 못했다.
여기에 유로화 강세가 유로존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드라기 총재의 우려 역시 유로화 하락에 힘을 실었다.
8일 엔화는 달러화에 대해 장중 1% 이상 치솟았다. 지난해 11월 이후 16% 급락한 것과 뚜렷하게 대조를 이루는 움직임이다.
반전을 가져온 것은 엔화 낙폭이 예상했던 것보다 크다는 아베 신조 총리의 발언이었다. 내주 주요 20개국(G20) 회의를 앞두고 ‘관리’ 차원의 발언일 가능성은 관심 밖이었다.
미국 금융위기와 유로존 부채위기 이후 외환시장 투자자들이 정책자들의 발언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 가운데 일본의 부양책 강화로 환율전쟁이 본격화되면서 이들의 ‘입’이 시장 향방의 결정적인 좌표로 부상했다.
경제 펀더멘털보다 중앙은행 수장의 발언에서 엿보이는 투자정책 방향이 주요 통화의 등락을 쥐락펴락하는 상황이다.
투자가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중앙은행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데다 사실상 구두개입에 해당하는 정책자의 통화정책이 온전하게 이행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외환시장이 정책자의 ‘입’에 따라 일희일비, 이들의 영향력이 지배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는 게임이라고 주장했다.
다이와 캐피탈 마켓의 크리스 사이클루나 이코노미스트는 “환시 구두개입은 시장이 정책자들을 신뢰한다는 전제 하에서만 성립한다”며 “아직은 유로화가 지나치게 강세를 보일 때 ECB가 대응에 나설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가 식지 않은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ECB가 과연 정책적 수단을 통해 환율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인지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RBS의 리처드 바웰 이코노미스트도 “드라기 총재가 구두 개입에 성공적인 결과를 거뒀다”며 “문제는 그의 발언이 단순히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응에 나서야 할 때가 왔을 때 적절하게 대응하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아베 총리의 발언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독일을 포함한 해외 정부의 비난에 대한 바람막이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시장 전문가의 진단이다.
그는 당초 달러 당 80엔을 밑돌았던 엔화 환율을 90달러 선까지 올리는 데 목표를 뒀으나 실제 엔화 평가절하가 이보다 큰 폭으로 이뤄졌다고 밝혔다. 이는 연일 급락했던 엔화의 V자 반등을 이끌어냈다.
일본의 환시 개입에 날카롭게 날을 세우는 독일과 프랑스를 포함해 G20 정책자들은 내달 회의에서 이 문제를 크게 문제 삼을 것으로 보인다.
론 폴 전 텍사스주 공화당 하원 의원은 이날 블룸버그TV에 출연해 “통화 가치를 평가절하하면 단기적으로 반사이익을 얻는 것처럼 보이지만 중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 리스크를 높이는 한편 경제 펀더멘털을 오히려 악화시킨다”며 “최근 환율전쟁은 어떤 목표나 지향점도 없이 진행되고 있으며, 모두가 패자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기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