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한기진 서정은 기자] 지난 16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에 있는 금 매입업체인 ‘사구팔구’. 고객으로 보이는 한 모씨는 “한때 유행했던 휴대폰 장식용 금 돼지를 11만원에 샀었는데 지금 팔면 얼마나 하나, 요즘 금값이 떨어지고 있다는데….”라며 매도문의 때문에 들렸다고 말했다.
사구팔구 주인인 박성환 씨는 “비쌀 때 금 한 돈(3.75g)이면 24만원도 했는데 요즘은 19만원 수준으로 떨어졌다”면서 “지난주 말부터 금을 팔겠다는 문의가 갑자기 늘어 요즘 많이 사고 있는데 계속 금값이 하락하자 서둘러 팔려는 것 같다”고 했다.
국제 금값이 33년 만에 최대 규모로 곤두박질치며 금 재테크가 혼란에 빠졌다. 15일(현지시각)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1980년 이후 처음으로 9.3%나 떨어지더니 16일에도 낙폭을 확대했다.
원화 가치가 떨어져 국제 금값 하락폭을 만회하기는 했지만 국내 금값도 최근 부쩍 내렸다. 신한은행이 발표하는 국내 금 시세는 최근 3개월 사이 20% 가까이 내렸다. 한때 1g당 5만8000원대였지만 최근 4만8700원대로 떨어졌다.
최근 폭락하는 금값을 두고 '금 시장 엑소더스(대탈출)'라는 말도 나온다. 국내에서도 금 투자 열기가 꺾일 것이란 관측이 있다. 장롱 속 돌 반지라도 서둘러 팔아야 할지 아니면 저가 매입 기회로 봐야 하는 걸까.
<사진 : 뉴시스 제공> |
◆ 골드뱅킹 수익률 하락에도 가입 고객 계속 증가
금값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재테크상품은 은행이 파는 ‘골드뱅킹’으로 금 통장에 예치된 예금이 국제 금 가격과 원/달러 환율에 의해 결정되는 거래 가격에 따라 변동되는 원화 수시입출금식 상품이다.
16일 기준 KB국민은행 골드뱅킹 기간별 수익률은 3개월 -4.1%, 6개월 -12.9%로 전부 손실이다. 금값을 최초 가입한 날부터 따져 수익률을 낸 것으로 가입기간이 길수록 손실 폭이 크다. 상투를 잡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수익률이 뒷걸음쳤어도 가입은 꾸준히 늘고 있다. 국민은행 골드뱅킹 좌수는 3월말 1만9008좌로 지난해 12월말 1만7317좌보다 증가했다. 작년 1월말 9652좌와 비교하면 두 배나 큰 규모다. 다만 잔액 규모가 450억원으로 지난해 1월말 329억원보다 많았지만 증가비율은 계좌 수보다 작았다.
우리은행 골드뱅킹 추이도 KB국민은행과 비슷했다. 잔액을 보면 3월말 79억원으로 2012년 3월말 18억원에 비해 많이 증가했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국제 금값을 반영해 수익률은 하락했지만 저금리와 금융종합소득과세 강화로 꾸준하게 금 투자 수요가 있다”고 말했다.
증권사 중 유일하게 골드 바(금괴)를 취급하는 삼성증권 SNI지점 관계자는 “고객들의 문의전화가 뜸해 의외”라고 말했다.
◆ 투자자들 “손 떼야 하나”, 거액자산가는 저가 매입 기웃
금 투자 시장의 속을 들여다보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큰손인 거액자산가들이 증여 목적으로 금에 투자해서 덤덤하기 때문이다. 손실 입은 소액투자자들은 발을 빼려 하지만 호수에 돌 몇 개 던진 충격에 그친다.
한 대형증권사 관계자는 "금 거래는 기본적으로 상위 계층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라며 "세금 없이 자녀에게 상속이나 증여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 금을 투자하기 때문에 단기적인 이슈에 부화뇌동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 또한 "올해 들어 골드 바에 대한 문의가 부쩍 늘었다"며 "새 정부가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을 낮추고 증여나 상속에 대한 감시의 칼을 뽑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금을 사면 수수료와 부가세까지 15%가량 내야 하지만 상속이나 증여할 수 있어 세금을 아낄 수 있다.
이와 달리 일반 투자자들은 신경이 곤두서있다.
이석진 동양증권 연구위원은 "거액자산가들은 전쟁 위험이나 증여 등의 목적으로 금을 매입하기 때문에 당장 수익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다"며 "하지만 금 펀드 등 금 자체를 투자수단으로 봤던 개인투자자들은 최근 2~3일 사이에 15%가량의 손실을 짊어지게 됐다"고 분석했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사 관계자도 "이날 금 펀드에 투자했던 투자자들의 문의전화가 쏟아졌다"며 "이들은 단기간 수익률을 노리고 금 펀드에 가입한 만큼 금값 하락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상태"라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한기진 기자 (hkj7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