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선엽 기자] 원화 환율이 3개월째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다. 일본과 같이 팽창적인 통화정책을 취하지 않았는데도 원화가치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원/달러 환율의 상승이 아베노믹스에 따른 충격을 일정 부분 상쇄한다는 점은 다소 위안이지만 환율 상승의 내면을 살펴보면 결코 반가운 상황만은 아니다.
일본이 아베노믹스를 통해 자발적이고 공격적으로 자국통화의 가치하락을 주도하고 있지만, 우리의 경우 당국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원화가치가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엔저 피해의 직격탄이 우려되는 기운데 북한발(發)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불거지면서 한국 경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증폭되고 있다.
◆ 원화 가치 추락, 니케이 지수 반년간 50% 급등
지난해 4분기 중 원화의 달러 대비 절상률은 3.8%로 G20국가 중에서 가장 높았다. 하지만 올해 들어 분위기는 급변했다. 1분기 동안 원화 가치는 3.6% 급락했다. 남아공(-8.4%), 일본(-8.4%), 영국(-6.5%), 아르헨티나(4.0%)에 이어 5위다.
원화 가치가 이처럼 급락한 이유에는 수급 등 여러 요인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우리 경제 펀더멘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지난해에는 상대적으로 견조한 우리나라의 재정건전성이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국제신용등급이 상승, 원/달러 환율의 하락세를 이끌었다.
환율 상승 원인에 대해 한국은행 외환시장팀 김신영 과장은 "지정학적 리스크 증대, 엔화 약세가 우리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 우려, 유로지역 위기 우려 재부각 등으로 환율 상승 기대가 높아진 데 주로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주가의 움직임도 이를 반증한다.
일본의 경기부양 정책이 실시된 지난 6개월 동안 달러/엔 환율의 상승과 함께 일본의 니케이225 지수는 급등했다. 지난해 10월 31일 8928.29포인트로 거래를 마감한 니케이225 지수는 4월 22일 13,611.58를 기록, 52.5% 상승했다. 이에 비해 코스피 지수는 지난해 10월 31일 1,912.06p에서 이달 11일 1,949.80p로 0.19%(37.74p) 상승하는 데 그쳤다.
2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주식시장에서 17조6300억원을 순투자했던 외국인은 올해 들어 3월까지 2조3320억원을 순매도했다. 이번 달에는 더욱 심각하다. 1일부터 22일까지 2조6000억원을 추가로 순매도했다.
채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올해 들어 4조8000억원 가량을 순투자했다. 하지만 외국인 채권투자에서 국채와 통안채가 차지하는 비중은 95%가 넘는다. 결국 한국시장에서 살 만한 것은 정부가 보증하는 국채 뿐이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G20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회의 참석차 미국 워싱턴을 방문중인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8일 오후(현지시간) IMF에서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와 양자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
◆ 상처 뿐인 영광, G20 재무장관회의
엔저와 관련해 기대를 모았던 G20 재무장관회의도 우리 입장에서는 특별한 소득 없이 끝나고 말았다.
회의 전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북핵보다 엔저가 더 큰 문제"라며 엔저문제를 의제화할 의지를 내비쳤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기재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일본 양적 완화정책의 목적을 디플레이션 탈피와 내수회복으로 제한했고 환율을 경쟁력 강화목적으로 사용하지 않기로 약속했다"라고 말했지만 이에 동의하는 시각은 많지 않아 보인다.
아울러 재정부는 "우리가 최근 발표한 추경, 부동산 대책 등 적극적 거시정책 조합이 세계경제 회복에 기여하는 정책으로 평가를 받았다"고 자화자찬했지만 이 역시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통상 통화정책은 환율상승을 유발해 자국의 수출을 증진시키고 타국으로부터의 수입을 억제시킨다는 점에서 주변국의 견제를 유발한다. 반면 재정정책은 특별히 국제사회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재정지출의 확대로 수입이 증가함에 따라 교역국가 역시 혜택을 보기 때문이다.
◆ '엔저', 변수에서 상수로…대응 패러다임은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엔저가 결국 상수화되면서 우리 기업과 정책당국의 대응 방안으로 자연스럽게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엔저 등 선진국의 유동성 팽창정책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에 있어서조차 여전히 논란이 지속되는 상황이다.
일단 이번 G20 회의가 엔저를 사실상 용인함에 따라 기축통화국인 선진국과 신흥국의 대결이 본격화됐다는 분석이 우선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은 일본 경제가 되살아나 글로벌 수요를 끌어올려준다면 세계 경제 회복에 긍정적이라는 점에서 일본의 통화정책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중국, 브라질 등 신흥국들은 수출 경쟁력에 영향을 주는 엔저를 마냥 두고 볼 수만은 없기 때문에 불만의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이번 G20회의를 기점으로 선진국과 신흥국의 대결 국면이 지나가고 양진영 모두 합의의 움직임이 시작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선진국은 글로벌 경기 부양 차원에서 양적완화를 지속하고 신흥국 역시 그동안의 인위적인 고환율 정책에서 벗어나 시장결정적 환율제도를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는 평가다.
이철희 동양증권 연구원은 "중국은 환율 변동폭을 높이는 것에 동의했고 브라질 역시 기준금리를 올려 헤알화 절상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가고 있다"며 "선진국의 양적완화가 신흥국의 수출업체에는 불리할 수 있지만 국민의 복지 측면에서는 바람직한 정책일 수 있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김선엽 기자 (sunu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