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윤경 국제전문기자] "인터넷은 인류가 만들어놓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다"
구글 회장인 에릭 슈미트와 역시 '구글맨'인 제러드 코언이 쓴 <새로운 디지털 시대(The New Digital Age)> 머리말 첫 문장이다. 슈미트 회장이 구글에 합류하기 전인 지난 1997년 4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자바원 컨퍼런스(Javaone Conference)에서 한 연설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책을 막 읽기 시작하자마자 접한 이런 문장은 내게는 일종의 회의감이나 좌절감 같은 것을 느끼게 했다. 아마도 '기술 급진주의자들'에게는 도전 의식이 피어나겠지만.
인터넷은 계속 진화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방대한 디지털 콘텐츠가 생산되며 소비되고 있다. 연결성(connectivity)은 놀라울 만큼 높아졌다. <새로운 디지털 시대>에 따르면 21세기 첫 10년간 인터넷으로 연결된 전 세계인의 숫자는 3억5000만명이었던 것이 이제 20억명 이상으로 늘어났다.(2010년 기준) 인터넷 사용은 훨씬 더 쉬워졌다. 월드와이드웹(WWW.W3)에 대해선 사망선고까지 나오고 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가 보편화되면서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되는 앱(application)의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
그 변화의 영속성 때문이다. 인터넷이 우리의 삶, 사회와 경제, 국가의 현재와 미래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를 예측하고, 또 변화하고 있는 현재에 대해 어떤 가치판단을 내릴 지 혼란스러워지는 것은.
급진주의자(나는 때로 이들을 '기술 원리주의자'라고 말하고 싶어진다)들의 발언은 아직도 종종 미디어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인터넷 미디어의 등장과 부상이 한창일 때는 이런 단언이 유행이었다. "인터넷 때문에 신문이나 방송이 망할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 시대에도 신문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방송 역시 마찬가지다. 시간이 더 흐르면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아직은 종이로 된 신문, 전파를 타고 있는 영상은 광고하기 좋은 매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페이팔 공동창업자 피터 시엘(출처=CNN머니) |
밀켄 연구소가 개최한 글로벌 컨퍼런스에 참석한 피터 시엘은 "현재 1000명쯤 되는 트위터 직원들은 지금부터 10년 뒤에도 직업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선 "지금 인쇄매체 선봉에 서 있는 뉴욕타임스(NYT)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람들은 일자리가 얼마나 더 유지될 수 있을 지에 대해 걱정해야만 할 것"이라고 했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트위터가 NYT를 능가하게 될 것이란 얘기.
헛소리로 웃어 넘기긴 어렵다. 정보기술(IT) 분야에서라면 거의 예지자에 가까운 인물이기 때문.
헤지펀드 매니저로 일하던 그는 모교인 스탠포드대에서 강의를 하다 맥스 래브친과 우연히 조우, 의기투합해 페이팔을 세웠다. 그는 페이팔을 성공적으로 이끌다 이베이에 매각했다. 마크 저커버그가 막 페이스북을 만들 때 그를 찾아와 투자를 부탁하자 50만달러를 투자해 당시 지분 100%를 확보했다. 기업공개(IPO) 이후 지분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갖고 있든 팔았든 그 가치는 엄청나게 뛰었음이 분명하다.
지금은 '더 파운더스 펀드(The Founders Fund)'란 투자사를 만들어서 벤처기업들에 투자하고 있다. 옐프(Yelp), 링크드인(LinkedIn) 등에 실리콘밸리의 성공적인 스타트업들에도 투자했으니 혜안은 어느 정도 검증됐다 할 수 있다.
그가 "트위터는 흥하고 NYT는 망한다"고 한 건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이 그 만큼 커졌음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일 것이다.
140자로 재잘거리는 공간 정도의 개념으로 시작했던 트위터의 힘이 막강해 진 것은 사실이다. 지난달 23일 뉴욕 증시를 뒤흔든 것도 트위터에 올라 온 허위 내용의 트윗 때문이었다.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이 2일(현지시간) 트위터 계정을 만들고 활동을 개시했다(출처=데일리메일) |
140자도 안 되는 문장이 뉴욕 증시를 뒤흔든 건 일대 '사건'으로 일단락됐지만, 앞으로 이런 일은 더 많아질 것 같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기술의 발전에 계속해서 마치 레지스탕스처럼 굴던 워렌 버핏이 2일 트위터 계정을 만들었다. 2개의 트윗을 날렸는데 나까지 합해 팔로워들은 벌써 19만명에 가깝다. 버핏의 트윗 하나가 시장을 쥐락펴락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과장을 보태면 140자에 전 세계 경제가 흔들릴 지도 모른다. 기술 발달과 함께 디지털 콘텐츠의 생산과 유통이 '민주화'되면서 생긴 부작용 중 하나다. 누구나 정보를 생산해 유통시킬 수 있지만 그 정보가 양질일 가능성, 그리고 사실일 가능성은 검증되기 어려운 모순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NYT로 대표할 수 있는 전통적 의미의 미디어의 생명도 더 연장되는게 아닐까.
사실인지 여부를 검증하고 걸러낼 수 있는 '필터' 역할이 앞으로 미디어가 해야할 가장 큰 의무이기 때문에. 그 능력을 갖춘 미디어만이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게 되겠지 싶다. 슈미트는 새 책에서 그 역할을 '신뢰성 필터(credibility filter)'라고 했다. 지금은 기술의 발전이라는 반(反)에 맞서 합(合)을 찾는 변증법적 경쟁력 강화가 미디어에 요구되고 있는 중요한 순간이다.
[뉴스핌 Newspim] 김윤경 국제전문기자 (s91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