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선엽 기자]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최근 논란이 된 정부와의 '정책공조(policy mix)' 문제에 대해 해명하고 나섰다.
김 총재는 "(올해 초에) 정책공조를 말한 것은 기준금리를 인하하겠다는 의미가 아니었다"며 "이미 인하했으니, 이제 (정부) 네 차례다(now it′s your turn)라고 말한 것"이라고 지난 3일 설명했다.
사실이라면 중앙은행 총재로서 그의 발언은 너무도 아마추어적이었다. 김 총재가 '정책공조'를 언급했을 때, 이것이 정부를 향한 충고였다고 해석했던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거의 모든 시장 참여자는 으레 김 총재의 발언이 완화적 통화정책을 통해 정부와 보조를 맞추겠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정책공조의 주체는 한은이었지 정부가 아니었다.
이후 무려 4개월이 지나서야 총재는 발언의 진의를 설명하고 나선 것이다. 그 숱한 발언의 기회들은 전혀 커뮤니케이션의 경로로 활용되지 못했다.
김 총재의 모호한 발언으로 4개월간 시장은 극도로 혼탁한 모습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한 번도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을 준 적이 없다. 단지 시장이 나를 믿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 것은 무책임하게 느껴진다.
더욱 큰 문제는 '훈수'의 적시성이다.
지난해 한은이 기준금리를 두 번이나 내리며 경기침체 상황을 경고했지만 MB정부는 '국가신용등급 상향조정'이라는 트로피를 얻기 위해 '균형재정' 달성에 몰두했다.
즉 지난해 한은과 정부는 명백하게 '정책공조'에 실패했던 것이다. 정작 자신을 총재로 임명했던 정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못하다가 새정부가 들어서자 '이제 네 차례'라고 김 총재는 주문을 내놓았던 셈이다.
시간을 거꾸로 돌려, 지난해 7월 기준금리를 내리면서 당시 정부를 향해, "재정정책은 통화정책과 함께 가야 한다"고 말했으면 어땠을까. 우리 경제는 장기 저성장 국면 속에서 한 발짝 빠르게 움직였을 수 있고 한은의 독립성도 의심 없이 당당하게 지켜졌을 것이다. 주군이 바뀌자 느닷없이 독립투사가 됐다는 일각의 비판에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김 총재가 새정부를 향해 정책공조를 요구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재정지출 확대를 원하는 인수위에게 명분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의도를 대중은 물론 정작 새 정부 조차 전혀 읽지 못한 듯 보인다.
또 하나의 가능성은 김 총재 특유의 '버냉키 따라하기'다. 지난해 말 통화정책 수장으로서 미국 의회에 당당하게 재정절벽(Fiscal Cliff) 해결을 촉구한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에게서 총재가 어떤 용기 혹은 모멘텀을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모호한 훈수는 시장에서 노이즈가 됐고 김 총재는 '엇박자', '정책공조 실패'라는 수식어를 감당해야만 하는 처지가 됐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한은의 독립투사'가 된 것은 그나마 보너스다.
이에 대해 김 총재는 "엇박자라고들 하는데 그럼 늘 동시에 움직여야 된다고들 생각을 하는 것이냐"며 "단정적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면 선진국이 될 수 없다"며 언론과 세상을 향해 다시 돌직구를 던졌다. '정부와 한은의 충돌'이란 문제로 한 달 넘게 골머리를 앓았던 세상을 비웃는 느낌이다.
이번 커뮤니케이션의 실패로 우리사회가 감당해야 했던, 혹은 앞으로 감당해야 하는 비용은 너무 커 보인다. 늘 몇 수 앞을 본다고 자평하던 스스로에게도 뼈아픈 실책이 될 것이다.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총재는 자신이 학자가 아니라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중앙은행의 수장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싶다. 경제주체들은 총재를 통해 최신의 경제이론을 배우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경제활동을 디자인하려 한다는 것을.
[뉴스핌 Newspim] 김선엽 기자 (sunu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