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분유시장 1위 남양유업이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있다. 보수경영으로 잘 알려진 남양유업이 '막말 파문'의 된서리를 호되게 맞고 있기 때문이다. 남양유업 전 영업사원이 대리점주에게 폭언한 내용을 담은 음성 녹취 파일이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파문은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위기에 처한 남양유업을 통해 한국유통산업의 후진적 행태 가운데 하나인 '밀어내기' 영업방식의 발전적 대안은 없는지 '위기의 남양유업- 유통산업 이대로 좋은가'라는 기획을 통해 짚어본다.<편집자주>
[뉴스핌=김지나 기자] ‘물품 밀어내기(물품 강매)’ 관행을 놓고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밀어내기는 비단, 특정 기업만이 아니라 사실상 유통업계를 비롯한 산업 전반에 만연해 있다는 사실도 새삼 부각되고 있다.
이런 문제의 이면에는 제조업체 본사와 대리점 간 관계는 강자와 약자, 곧 '갑을 관계‘라는 종속관계가 자리잡고 있다.
본사(甲)가 지시하는 강압적 요구에 대리점(乙)은 따라야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우리사회에 만연해 있는 이런 관행이 이번 사태로 여론의 질타를 받으며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남양유업이 영업사원의 폭언과 물량 밀어내기 파문에 휩싸인 가운데 8일 오후 삥시장(밀어내기 제품을 헐값에 넘기는 시장)으로 불리는 서울 동대문구 청량종합도매시장에 남양유업 제품을 비롯해 유제품, 청량음료 등이 쌓여 있다.[사진=김학선 기자]
◆본사가 일방적으로 목표치 설정…대리점주 “너무 과도해”
본사가 과도한 물량을 대리점에게 억지로 떠넘기는 행태가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남양유업 본사의 영업직원은 대리점주를 상대로 강매하는 과정에서 욕설과 폭언을 한 녹취록도 이런 강압적인 물품 판매 실상을 보여준다.
본사는 매출목표를 정해 영업직원을 압박하고, 이런 압박은 영업직원이 대리점주에게 그대로 전해지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유업계가 아니더라도 밀어내기 판매 방식은 대부분 식품업계에 만연한 게 사실”이라면서도 “남양유업이 특히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목표치를 못 채우면 회사에서는 전혀 용납할 수 없는 분위기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른 동종업체도 사정은 비슷하다.
한 대기업 식품업체 N기업 특약점 전국협의회 대표 B모씨는 “남양유업 쪽만 밀어내기가 있는 게 아니라 소(小) 유통상인들 100%가 이런 밀어내기를 겪고 있다고 장담할 수 있다” 고 목소리를 높였다.
본사가 일방적으로 매출 목표를 비현실적으로 높여 설정하고, 대리점에게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를 달성하도록 강제한다는 것이다.
그는 “매출 목표를 과하게 잡혀 있다고 하더라도, 판매기준치 80% 미만이면 (대리점은)판매장려금 지원대상에서 제외시킨다”며 “우리같이 대리점하는 사람들은 제조업체에서 주는 판매 장려금을 못 받으면 운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판다. 100원짜리를 50원에 파는 것이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게 N기업이 수십년간 해 왔던 것이고 모든 유통업종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며 강압적인 ‘밀어내기’ 방식이 본사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고착화된 관행임을 주장했다.
◆ ‘밀어내기’ 관행 개선책 있나
연세대학교 오세조(경영학과) 교수는 “(본사와 대리점이) 계약을 체결할 때, 본사인 갑이 유리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할 여지 많다”고 지적하며 “리더(본사)는 상도의, 윤리의식, 파트너십, 특히 신뢰를 보이는 게 중요하다. 양측이 오픈된 협상을 거쳐 공동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올바른 사업방침”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모 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밀어내기를 근절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대리점은 제조업체를 대리하는 입장이어서 힘은 본사가 갖고 있고, 영업사원은 그 힘을 이용해 대리점에 압력을 넣는 것”이라며 근본적으로 본사와 대리점 간 관계가 ‘종속 관계’에 있는 만큼, 일방적인 강압 행위 자체를 해소하는 건 어렵다는 뜻이다.
이어 “공정거래위원회 등 제3자가 갑을관계에 개입해서 상호간에 합의를 거쳐 표준계약서 등 제도적 장치를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밀어내기’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 허용될 것인지가 관건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그는 “신제품이나 시즌상품이 출시되면 최대한 매장에 대거 진열해야 하기 때문에 밀어내기를 안 한다는 건 시장논리에 역행하는 것이다. 밀어내기 자체도 하나의 영업전략 방식이라서 안 할 수는 없는 게 현실”이라고 전제한 뒤 “다만 도를 넘지 말아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로서는 밀어내기 기준이 없기 때문에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며 “표준약관 또는 계약서상에 명시하도록 규정을 만들면 업체들이 이를 따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김지나 기자 (fres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