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사헌 기자] 김중수 호가 선수를 급히 바꾸어 전격 금리인하를 단행하면서, '뒤늦게' 글로벌 환율전쟁에 뛰어들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G20 회담에서 선진국들이 환율전쟁 같은 것은 없다면서, 일본의 강력한 완화정책에 대해 면죄부를 줄 때도, 우리는 중국과 함께 일본 때리기를 시도했을 뿐 건진 것이 없었다.
선진국들은 "우리가 살아야 신흥국에도 좋으니, 당분간 완화정책에 따른 주요통화 가치 하락 등의 불편함을 참아내거나, 아니면 이 충격을 줄이기 위해 대응 완화정책을 하거나 거시건전성 정책을 사용할 것"을 사실상 종용했다. 우리는 완화대열에 동참보다는 거시건전성 대책을 사용했다.
하지만 당시 김중수 총재는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한국 같은 나라는 선진국 정책에 따른 거품 발생을 주의해야 한다는 인식을 보여주더라면서, 하반기에 우리는 인플레이션을 오히려 걱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농산물 가격 상승과 같은 제어 불가능한 변수가 문제라는 한국은행 측의 상황 인식이 소개되기도 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
물론 현오석 기획재정부 장관은 취임 직후 주요20개국(G20) 회담 데뷔 무대에서 "북한 위협보다 엔화 약세가 더 걱정"이라며 적확한 인식을 보였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정책 당국의 인식은 안일한 단면을 보여줬다.
당시 한국은행 금리동결 결정에 이은 설명과정에서 당국자는 엔 약세가 아직 별 영향을 주지 않고 있어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기획재정부는 새 장관 취임 후 내부 인사가 덜 진행되어서 이 문제를 팔로업하는 주체가 명확지도 않았으며, 특별한 대책도 없었다.
4월 초 현 장관이 주재한 경제장관간담회에 관계기관 합동으로 제출된 <엔화 약세의 영향 및 대응방안> 보고서는 "수출 등에서 엔저의 영향이 아직 본격화되지 않고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게다가 우리 브랜드와 품질 경쟁력이 높아져 환율 변동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과거에 비해 축소됐다면서, 대일 의존도가 높은 부품소재 등 수입단가 하락으로 완제품 수출경쟁력 제고에 긍정적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안일한 인식은 4월 한 달 엔화 약세가 주춤하면서 그대로 무사통과했을지 모르지만, 5월 들어 다시 엔 약세가 전개되고 급기가 100엔 환율시대가 열리면서 용인될 수 없는 지경에 도달한 것으로 판단된다.
9일 자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한국: 바보야, 문제는 엔이야"라는 자극적인 제하의 기사를 통해 "김중수 총재가 이끄는 한국은행 위원들은 금리를 인하하면서도 일본을 손가락질하지 않는 점잖은 태도를 보였지만, 사실 외환시장에서 엔화 약세가 지속된 것이 마음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 뻔하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원/엔 환율 차트를 보면 알 수 있듯, 3월에 반등했던 환율이 더 하락하지 않고 4월에 안정되기만 했더라도 금통위는 이번에도 금리를 동결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4월에 다시 환율이 하락하자 참지 못하고 금리인하 대열에 동참했다는 얘기다.
※출처: 톰슨로이터, FT에서 재인용 |
이번에 금통위는 정책결정문에서 한국 경제의 생산갭이 상당 기간 동안 마이너스에 머물게 될 것이라면서, 그 이유로 엔화 약세 뿐 아니라 세계경제 회복 지연과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험을 함께 제시했다.
실제로 HSBC의 분석가 로널드 먼도 보고서에서 "김 총재의 기자회견에서 뽑아낼 수 있는 핵심은 ▲ 금리인하는 정부의 부양책을 지원하기 위한 것 ▲ 유럽중앙은행과 호주연방준비은행의 전격 금리인하를 고려한 대응 ▲ 일본은행의 완화정책이 한국에 큰 영향을 줬기 때문 등 세 가지로 요약했다.
FT는 이런 세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 6주 만에 한국 원화가 일본 엔화 대비로 7% 평가절상되면서 6개월 만에 무려 20%의 평가절상이 이루어졌다는 점을 그 자체로 이번 결정의 배경임을 웅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외환당국인 기획재정부의 개입 움직임도 환율 변화를 더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인식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원 환율은 하루 만에 1090원 선을 회복한 환율은 달러화 강세에 힘입어 1100원을 돌파하고 있다.
하지만 전날 한국은행의 금리인하에도 1080원대 중반을 지키던 환율은 막판 당국 개입 물량으로 추정되는 달러 수요에 따라 1091.00원으로 거래를 마감했다.
시중은행 딜러들은 "장 막판 움직임은 종가관리"라면서 "내외 수급이 비등한 상황에서 환율 상승 요인은 개입 말고는 생각할 것이 없다"고 했다.
이날 환율 움직임은 외환당국과 중앙은행 공조, 특히 당국의 환율 문제에 대한 확고한 인식에 대한 확신이 커진 투자자들이 숏커버에 나선 것이 주효한 것으로 판단된다.
달러/원은 당국의 관리가 예상되는 여건인 4월에도 거의 4% 가까이 하락했다. 이 기간 한국 외환보유액은 14억 달러 증가한 3288억 달러로 3개월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당국의 최대 관심사는 역시 일본 엔화. 지난 1년 동안 엔화는 한국 원화 대비로 약 25% 평가절하되면서 조선, 자동차, 전자 등 한국 핵심 수출 대기업 실적에 직접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외국인 투자자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엔저와 원화 강세로 인한 부담을 인식한 외국인들은 한국 증시에서 4월에만 모두 2조 7000억 원을 순매도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외환당국과 중앙은행의 우려와 대응 의지에도 불구하고 환율 하락 추세 자체를 전환시키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특히 미국 재무부가 환율보고서에서 투명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 한국 외환당국의 기본 입장은 '스무딩 오퍼레이션'으로, 원화 약세 속도를 조절하거나 외환시장의 변동성을 억제하는 것이지 시장의 추세를 역전시키는 것이 될 수 없는 상황이다.
선진 7개국은 이번 주말 회동할 예정인데, 주요 의제가 유럽 수요 진작과 일본 '아베노믹스'와 엔화 환율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미국 재무부는 일본이 엔화 약세를 너무 이용하면 안 된다는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일본 정부도 엔화 환율이 100엔을 넘어서 좋을 것이 없다는 인식을 이미 밝혔지만, 글로벌 외환시장의 속성상 당분간 '오버슈팅' 움직임은 제어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미국 경제 펀더멘털인데, 여기서 확실한 회복세가 확인될 경우 달러/엔 환율은 상당한 기간 세자릿 수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경제신문은 9일 뉴욕 외환시장의 분위기를 전하면서 "일단 심리적 저항선이던 100엔 선이 돌파되면서 당분간 엔화 약세를 예상하는 전문가들이 우세하다"면서, 슈로더자산운용의 수석이코노미스트가 달러/엔이 110엔까지 상승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으며 일부 헤지펀드 사이에는 120엔 환율 전망도 제기된다고 소개했다.
신문은 또 "미국 시장에서 달러/엔 상승이 화제거리가 되면서 경제 TV 프로그램에도 특집 코너가 마련되었으며, 헤지펀드와 같은 투기세력의 엔화 상장지수펀드(ETF) 공매도 움직임을 주목을 받고 있다. 엔 약세가 되면 가치가 오르는 구조 ETF는 선풍적인 인기로 급등하는 등 기금 매수세가 전개되고 있다"고 전했다.
[뉴스핌 Newspim] 김사헌 기자 (herra7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