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강혁·강필성 기자] 세계의 대표적 조세피난처인 영국 버진아일랜드(Virgin Islands)에 페이퍼컴퍼니(서류상 회사)을 설립한 재계 오너의 명단이 일부 공개되면서 파장이 확대되고 있다.
당장 여론의 비난이 들끓고 있는데다 향후 관련 기업과 오너에 대한 세무조사, 나아가 검찰의 수사까지 이루어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는 이제 막 시작됐다는 점에서 그 후폭풍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입수한 버진아일랜드의 페이퍼컴퍼니 설립자 명단에는 국내의 유력한 각계 인사들도 대거 포함된 상태다.
현재 한국인 페이퍼컴퍼니 설립자들은 총 245명으로 확인됐다.
◆그들은 왜 버진아일랜드로 갔나
버진아일랜드는 사실 국내에서는 아직 낯선 지명이다. 이곳은 아프리카 서인도 제도의 리워드 제도에 위치한 약 80여개의 섬 무리로 이중 영국령을 버진아일랜드라고 한다. 그야말로 격오지인 이곳이 이처럼 세간의 시선을 모으는 것은 순전히 ‘조세피난처’라는 점 때문이다.
버진아일랜드는 자치령 내 법인의 소득, 수익 등에 대해 조세를 거의 부과하지 않고 있다. 그러다보니 전세계의 부호들이 이를 악용해 재산을 은닉하는 등 조세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이곳을 선택하고 있다.
페이퍼컴퍼니가 등장하는 것도 이 대목이다. 실제 존재하지 않는 기업을 서류상으로만 존재하게 한 뒤, 이 기업명의의 제3국의 계좌를 만들거나, 수익을 취득하게 하는 방법을 쓰는 것이다.
때문에 이곳에 유입된 자금은 대부분 정부당국에 신고 되지 않은 자금일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외환관리법 위반 및 세금포탈의 요충지가 바로 이 '조세피난처'라는 이야기다.
이미 ICIJ에 의해 명단이 공개된 그루지아의 비드니자 이바니슈빌리 총리, 러시아의 이고리 슈발로프 제1 부총리의 부인 올가 슈발로프, 탁신 전 태국 총리의 전 부인 포자만 나폼팻 등이 이곳에서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고 이로 인해 각 국에서 파문을 일으켰다.
국내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처음으로 공개된 이수영 OCI 회장과 부인인 김경자 OCI미술관 관장,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의 부인인 이영학씨, 조욱래 DSDL 회장과 그의 아들 조현강씨가 버진 아일랜드에서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해당 페이퍼컴퍼니에서 어떤 성격의 자금을 이용했고, 얼마나 많은 자금을 묻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세금 회피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떳떳하지 못한' 자금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중론이다.
OCI 등 이번에 명단이 공개된 기업은 이전에도 주가조작 등 부적절한 운영과 얽혀 검찰이나 국세청의 조사를 받은 전력이 있다. 해당 기업들은 충격 속에서 사태 추이를 지켜보며 대응방안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후폭풍에 떠는 재계 '다음은 누구?'
결국 이번에 폭로된 OCI, 대한항공, DSDL 오너일가의 페이퍼컴퍼니 및 해외 부동산 취득 과정, 그 자금에 대한 전방위 세무조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검찰 조사까지 갈 수 있다는 시선도 나온다.
재계에서는 이번 버진아일랜드 후폭풍이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박근혜 정부가 출범 당시부터 '지하경제 양성화'를 표방하며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대폭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 연장선에서 관련 법안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크다. 명단이 발표되자 정치권은 비난의 수위는 높이는 중이다. 민주당은 "조세피난처의 대기업 총수 은닉재산은 빙산의 일각"이라며 "철저한 조사로 탈세 의혹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미 CJ그룹의 역외 탈세혐의에 대한 검찰의 전방위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도 부담요인이다.
국내 기업 중 조세피난처에 계열사를 설립한 사례는 적지 않다. 나아가 기업명이 아닌 오너 개인 지분이 투입된 경우까지 포함하면 그 범위는 상당부분 넓어지리라는 평가다.
ICIJ와 공동취재를 벌인 뉴스타파 측은 "각계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포함돼 있다"며 "이름 대면 알만한 대기업집단이 포함돼 있고 기업 임원들도 많이 포함될 거 같다"고 말했다.
뉴스타파는 오는 27일 추가 폭로를 통해 재계의 또 다른 인사를 공개할 예정이다.
한국인으로 확인된 페이퍼컴퍼니 설립자 245명 중 현재 신분이 확인된 것은 약 20명 정도. 이 외에 법인명을 포함하면 폭로의 규모나 기간은 훨씬 장기화 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이 안에는 10대 재벌도 포함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결국 재계에서는 행여나 자신이 포함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재계 관계자는 "페이퍼컴퍼니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면서 "세금이 싸고 거래가 자유로워 이미 수십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항변했다.
[뉴스핌 Newspim] 이강혁 기자 (ik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