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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정부, '특허괴물' 악행 막기 나서..업계에 '득'이기만 할까

기사등록 : 2013-06-05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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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소송 남발 막는 행정명령 발표..법원 재량권 넓히고 ITC역할 축소

[뉴스핌=김윤경 국제전문기자] 특허 괴물(Patent Troll). 상품이나 서비스를 직접 개발해 특허를 내는 기업이 아니라 특허만을 사들인 뒤 이걸로 소송을 걸어 돈을 버는 기업을 일컫는 말이다.

삼성전자나 애플이 서로에게 특허 소송을 걸어 우선권을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특허만 갖고서 특히 특허가 중요한 기술 기업들에게 소송을 걸어 이기면 배상금을, 아니면 로열티, 합의금을 두둑히 챙기는 특수목적을 가진 법인을 말한다.

미국 정부가 이 특허 괴물들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4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특허 괴물들의 소송 남발을 막기 위한 5건의 행정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의회에 7건의 제안을 했다. 기업들이 연구개발이 아니라 특허 방어에 많은 돈과 시간을 쏟고 있는 현실을 바로잡고 제대로 된 특허 시스템을 자리잡게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 특허괴물이 뭐길래

백악관이 4일(현지시간) 특허괴물들의 소송 남발을 막기 위한 행정명령 등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출처=쿼츠)
특허 괴물은 특허(patent)와 괴물(troll)이란 단어가 합쳐져 만들어진 말. 스칸디나비아 신화에 나오는 이 트롤이란 괴물은 몰래 숨어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통행료를 '갈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허전문회사, 혹은 지식재산관리회사(Nonpracticing Entities; NPE)로도 불린다

태생 자체가 소송을 통한 이익 쟁취인 이들 특허 괴물의 '권리 행사'는 법적으로야 자연스러운 것이겠지만 소송을 당하는 기업들 입장에선 협박이나 '악(惡)'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 '괴물'이란 명명 자체가 이런 단면을 드러내고 있다.

대표적인 특허 괴물로는 지난 2009년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대상으로 로열티 16조5000억원이나 되는 로열티를 요구했던 인텔렉추얼 벤처스(Intellectual Ventures; IV)가 있다. 블랙베리(옛 리서치인모션)에 이메일 특허 소송을 내 6억만달러가 넘는 엄청난 합의금을 받아낸 NTP도 잘 알려져 있다. 

특허 괴물들은 정보기술(IT) 기업을 중점적으로 공격해 오다 최근엔 생명과학이나 음원 특허도 주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

◇ 특허소송 남발에 백악관이 나섰다.

백악관이 나선 이유는 특허 소송의 남발로 업계의 에너지가 낭비되고 경제적 피해가 발생하는 상황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2월 "실제로 어떤 구체적인 제품도 갖고 있지 않은 기업들이 다른 기업의 아이디어에 영향력을 미치거나 훔쳐 돈을 벌려고 한다"며 특허 괴물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특허소송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의도로 세워진 RPX란 곳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내에서만 2900건 이상의 특허 소송이 걸렸다. 이는 2006년에 비해 거의 6배나 늘어난 것이다. 게다가 특허 소송의 상당수가 미국 특허청(USPTO)으로부터 인증을 받지도 않은 가짜 특허를 갖고 벌어지는 경우가 많아 업계에선 골머리를 앓아 왔다.

소송 비용도 막대하다. 미국지식재산권법협회(AIPLA)에 따르면 2500만달러 이상 규모가 되는 소송의 경우 비용이 최소 65만달러에서 500만달러까지 드는 것으로 집계된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일부 잘 알려진 기업들은 연구개발(R&D)보다 특허 소송에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는데 이는 경제 성장을 해치고 혁신 또한 방해한다"고 말했다.

미 정부는 그래서 우선 특허청이 특허 소유자가 누구인지를 명백하게 가릴 수 있는 룰을 만들도록 했다. 기업들이 종종 실체를 알 수 없는 유령기업(Shell company)로부터 소송을 당하고 특허 소유자가 누구인지를 실제로 모르는데도 제소당하는 경우도 적잖아서다.

법원의 역할은 강화한다. 남용되고 있다고 판단되는 소송에 대해선 법원이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재량권을 더 주는 내용의 법안을 의회에 넘기고 통과시켜줄 것을 요청했다. 이 법안에는 특허 괴물들의 규모가 최근 몇 년간 크게 급증, 지난 2011년 기준으로 290억달러에 달한다는 통계도 담겨 있다. 

반면 최근 특허 소송 중재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국제무역위원회(ITC)에선 다소 힘을 빼려는 입장이다. ITC는 불공정 무역 행위에 대한 사법권을 갖고 있으며 특허를 침해한 제품에 대해선 수입을 금지시킬 수도 있다. ITC에서 내려지는 판결이 대개 연방법원에서보다 빨리 이뤄지고 있다. ITC의 판단 기준도 연방법원보다 낮은 편이기 때문. 삼성전자-애플 등의 소송도 ITC를 통해 제기돼 판결되는 경우가 많아 입법화될 경우 상황이 어떻게 바뀔 지 주목된다.   

◇ 기술 기업들 일단 '환영'..꼭 반길 일 아닐 수도

미 정부의 이번 조치에 기술 기업들 대부분은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클라우딩 컴퓨터 업체인 랙스페이스 호스팅의 지식재산권 부문 부사장 반 린드버그는 "특허 괴물 문제를 해결할 묘안은 없다"면서 "그러나 정부의 이번 조치는 상당히 괜찮은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반겼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그러나 이번 조치는 백악관에서 일방적으로 내려진 것이며 이는 대형 기업들의 엄청난 로비에 의한 것이란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의회 통과가 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란 우려도 있다. 

일부에선 특허청이 특허 보유자에 대한 정보까지 알아야만 하는 등 도를 넘는 부분이 있으며 이는 정보를 보유하거나 라이센싱하는 것을 비밀리에 하고자 하는 업계의 이해에 반할 수 있다고 본다고 WSJ은 전했다. 

또 대학이나 연구소 등은 법안을 통해 오히려 차별당할 수도 있다. 대학이나 연구소 등은 발명품을 직접 생산하지 않고 기업에 라이센스를 주는 형태라 자칫 특허 괴물의 범주에 들어갈 가능성도 있기 때문. 같은 맥락에서 특허 괴물이 부적절하게 지목되는 경우도 우려된다. 

이와 관련해 한 변호사는 "암 치료제를 개발하는 발명가들까지 제재를 가하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지만 이들을 위한 내용은 없다"면서 "발명가들은 발명할 수 있도록 하고, 이들이 그 능력으로부터 이득을 얻도록 해주는 분명한 조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애플 같은 기업들은 사실 이런 특허 괴물을 이미 자회사로 두고 있다. 록스타 비드코란 특허 괴물은 애플이 지분의 절반 이상을 갖고 있으며 마이크로소프트(MS), 소니에릭슨 등이 투자해 만든 회사. 특허 괴물에 대적하기 위해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이들 스스로도 특허 괴물인 만큼 손이 묶일 상황도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뉴스핌 Newspim] 김윤경 국제전문기자 (s914@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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