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윤경 국제전문기자] 일본 정부가 아베노믹스의 '세 번째 화살'로 내놓은 성장 전략 속에는 비효율적 산업의 통합을 추구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지만 정작 업계에선 통합에 대한 반대 기류가 거세다. 얼마 전까지 공격적으로 진행됐던 해외 기업에 대한 인수합병(M&A) 또한 시들고 있는 상황. 무제한적 양적완화가 내수에 불을 붙였을 지는 모르나 엔저는 해외 기업 사냥을 위한 돈주머니 사정을 악화시키고 있는 것.
17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선박 등의 산업에 있어 M&A를 통해 생산성을 높여 내수 시장에서 살아남고 해외 경쟁력도 키우는 것이 필요하지만 업계에선 저항적이라고 전했다.
가장 최근엔 일본 2위의 조선업체 가와시키중공업 임원들이 '35분간의 쿠데타'로 알려진 임시 이사회를 통해 사장을 내쫓고 미쓰이조선과의 M&A 논의를 백지화한 예가 있다. 하세가와 사토시 전 가와사키중공업 사장 등이 독단적으로 추진한 미쓰이조선과의 합병에 반대한 임원들이 35분만에 이 같은 일을 벌였다. 신임 사장으론 무라야마 시게루 상무가 추대됐다.
전 세계 선박시장에서 일본의 점유율은 갈수록 하락하고 있다. 붉은 선이 일본의 점유율.(출처=월스트리트저널) |
액정표시장치(LCD) 패널의 경우 일본 내에서 5개 업체가 경쟁하고 있는데, 한국이 2개, 미국과 유럽이 각각 1개 업체들로 나서고 있는 것에 비해 업체 수가 많다. 일본 내 철도 제조업체도 가와사키를 비롯해 5개나 돼 1개 업체가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한국과 비교해 어려운 상황.
아마리 아키라(甘利明) 일본 경제·재정상은 지난달 말 기자회견에서 "산업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향후 5년간 긴급 구조개혁을 취할 것이며, 새로운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기업간 통합을 촉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최근 산업 경쟁력 위원회는 포화 상태에 있는 산업 내 경쟁사들이 M&A할 경우 세제 혜택을 주는 내용이 담긴 새 성장 전략 최종안을 내놨다.
그러나 세제 혜택만으로 M&A에 불을 붙이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이 WSJ의 판단이다. M&A라는 것이 서로 다른 기업문화간의 결합이라 쉽지 않으며, 중복되는 생산설비 폐쇄와 이로 인한 감원 등을 두려워하며 M&A에 대한 반감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히타치와 미츠이 중공업의 M&A도 진행됐으나 실패했고, 한 해 전인 2010년 키린 홀딩스와 선토리 홀딩스가 합쳐 안호이저-부시 인베브에 준하는 연 매출 규모의 회사로 부상하려 했지만 결국은 성공하지 못했다.
모리 다카히로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 애널리스트는 "대기업들은 다양한 사업을 거느리고 있고 M&A를 통해 중복된 사업과 생산시설을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 때문에 전체적으로 이득을 볼 수 있는 통합임에도 불구하고 잘 성사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선박 사업의 경우 특히 인원을 줄이기 힘든 업종이며 따라서 M&A를 통한 비용절감이 매우 제한적이다"라고 밝혔다.
한편 아베노믹스는 해외 기업 사냥도 주춤하게 만들고 있다. 딜로직에 따르면 올들어 현재까지 일본 기업들의 해외 기업 M&A 거래규모는 2009년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고, 인수 건당 규모도 작년보다 줄어들어 10억달러를 넘긴 인수는 2건 뿐이었다.
[뉴스핌 Newspim] 김윤경 국제전문기자 (s91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