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홍승훈 기자] 정부는 11일 발표한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을 통해 공기업 부채를 잡기 위한 수단으로 사업부별로 재무제표를 작성케하는 '구분회계제도'를 도입키로 했다.
구분회계는 주로 민간기업들이 사업 및 조직내 경영성과와 재무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사업부 및 단위별로 재무정보를 산출해왔는데 주로 이는 내부 성과관리 목적으로 활용해왔다. 수익을 많이 낸 곳은 성과급잔치와 승진이, 그렇지 못한 곳은 반대의 결과가 따라오곤 했다.
이에 공기업에서도 어느 사업부, 어느 부서에서 부채가 많이 발생하고 방만경영이 이뤄지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이른바 '돈에 꼬리표 달기'라 할 수 있는 구분회계를 적용키로 한 것이다.
기업별로 산출하는 정보 수준의 차이는 있겠지만 예컨대 사업부제를 운영중인 삼성전자와 호텔신라 등 삼성 계열사들은 사업부별 순이익(이자비용 등 영업외손익 포함), 자산과 부채 등까지 산출된다.
기획재정부 최광해 공공정책국장은 11일 "민간기업에선 구분회계를 통해 사업부별, 부서별 수익성과를 파악해 성과급 기준을 잡지만 우리는 이를 거꾸로 적용해 어디서 부채가 많이 발생하고 방만경영이 이뤄지는지 파악해 강도 높게 개혁하겠다는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 사례로 LH(토지주택공사)의 사내은행을 들었다. LH의 경우 사내은행에서 각 사업부에 돈을 빌려주고 받는 가상시스템을 운영중인데 이를 통해 사업부별 부실 여부를 잘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 국장은 "똑같이 용돈을 받아도 직접 관리하는 것과 집사람 주머니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 다르듯 사내은행을 통해 관리될 경우 부채관리가 보다 효율적일 수 있다"며 "강도 높은 부채관리, 경영혁신 등이 일어날 수 있는 여지가 늘어난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이를 위해 우선 한국전력공사, 가스공사, LH, 코레일, 수자원공사, 예금보험공사, 중소기업진흥공단 등 7개 기관을 시범기관으로 선정했다. 이들 공공기관에 대해 올해 연말까지 구분회계 도입방안을 마련케 했고 내부 회계시스템 수정을 거쳐 내년 상반기 중 구분회계정보를 산출하도록 했다. 또 내년 중 6개기관(도로공사, 철도공단, 석유공사, 광물자원공사, 대한석탄공사, 장학재단)에도 추가 확대시행키로 했다.
문제는 공공기관들의 의지와 정부의 세밀한 관리감독 여부, 기술적인 한계 등이다.
조세재정연구원 박진 공공기관연구센터소장은 "구분회계를 도입하기 위해선 기술적인 여러 어려움이 나타날 수 있다"며 "공기업들에게 구분회계방식으로 해오라고 하면 결국 기관들은 그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결과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 이를 꼼꼼하게 뜯어보고 검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건물 혹은 사옥유지비의 회계처리시 이를 어디로 둘 지다. 예산비율대로 나누긴 하겠지만 이 같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공기업들로선 애매한 회계처리부문을 가능한 한 정부 정책사업쪽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우려다.
현재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공공기관별 회계구분안 역시 미흡하다는 평가다. 한전의 경우 전기판매와 기타(해외) 등 2개 부문으로, 가스공사는 가스공급과 해외 등 2개 부문으로 사업구분이 됐는데 디테일하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즉 한전의 경우 전력사업은 최소한 송전과 배전으로 나누고, 가스공사도 가스공급과 해외부문 외에 보다 직접 구매해 들여오는 자원과 해외투자를 통해 현지에서 생산해서 들여오는 자원 등 보다 디테일하게 구분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또한 구분회계를 통해 밝혀진 부채원인 중 국가책임부분에 대해 정부가 내놓을 뚜렷한 대책과 책임이 있느냐도 남아있는 과제 중 하나다.
전일 조세재정연구원 주최로 열린 '공공기관 부채문제의 현황과 해결방안' 토론회에 참석한 LH공사 정인억 부사장은 "구분회계로 부채원인을 소명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 결과 국가책임과 공기업책임이 발라내졌을때 과연 정부가 국가책임부분을 얼마나 감내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과도한 대규모 정책사업을 수행하면서도 임대주택에 대한 정부지원의 한계를 겪으며 부채를 늘려온 LH로선 답답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일각에선 정부가 최근 전기요금을 올렸듯 결국 구분회계 도입을 통해 공공요금 인상을 위한 명분을 쌓은 뒤 공공요금을 올려 서민부담을 키울 것이란 우려도 흘러나오고 있다.
[뉴스핌 Newspim] 홍승훈 기자 (deerbear@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