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노종빈 기자] 지난 1968년 브레즈네프 집권 당시 소련은 체코 프라하에 침공, 자유와 개방의 물결이 한창이었던 '프라하의 봄'을 무력으로 짓밟았다. 오늘날과의 차이점이라면 브레즈네프 집권 시대만 해도 구소련의 글로벌경제 의존도가 낮아 루블화 폭락에 대한 우려는 없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반세기를 지나 현재 블라디미르 푸틴이 이끄는 러시아의 무력 행위는 무역 제재 가능성과 이에 따른 루블화 폭락을 불러와 러시아 경제에 미치는 타격이 적잖을 전망이라는 게 2일(현지시각) USA투데이 등 주요 외신들의 지적이다.
<사진> 러시아 루블화 |
지난 주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무력 개입에 따른 무역 제재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러시아 루블화 가치는 급락, 국제 외환시장에서 루블화는 달러당 34루블에서 36~37루블대까지 떨어졌다.
과거 '프라하의 봄' 당시 소련에서는 루블화가 사실상 통제됐기 때문에 별다른 경제적 우려는 없었다. 당시 국제 외환시장에서 루블화는 거래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러시아의 현실은 그 때와 다르다. 푸틴 정권이 국내외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쥐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루블화 폭락만으로도 러시아가 겪게 되는 경제·산업적 타격은 적지 않을 전망이다.
푸틴의 측근으로 러시아 주요 산업을 독과점하고 있는 재벌들에게도 루블화 폭락은 부담이다.
이들은 수익성이 좋은 자원 수출이나 가스 공급 사업을 중단하거나 외국 관광객들로부터의 막대한 현금 수입원이 막히는 것을 원치 않는다.
마이클 맥폴 전 모스크바 주재 미국 대사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경제적 측면에서 푸틴의 강경한 태도가 스스로의 손발을 묶는 행위임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러시아 주요 기업과 은행들은 푸틴의 결정 때문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러시아 정치권에서도 전체 상원의원 166명 가운데 90명 만이 푸틴의 무력 제재 결정에 찬성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유럽연합, 우크라이나 사태 정치적 대응 가능성
유럽연합(EU) 외무장관들은 3일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 요청에 대해 심도있게 논의할 전망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러시아에 대한 대외 경제제재보다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무력 충돌 사태에 관해 중재의 목소리를 내는 정도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특히 푸틴의 무력 행동에 대해서도 강력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면서 실질적 제재에는 동참하지 않는 외교적 해법을 채택할 가능성이 있다.
한 마디로 EU가 미국의 결정보다 앞서나가지는 않겠다는 자세로 풀이된다.
유럽 현지 외교 소식통들에 따르면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직접 언급하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미 독일과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핀란드 등이 우크라이나 위기의 조기 해소를 요청하고 나섰다.
◆ 주요국, 푸틴 너무 몰아세우지 않을 듯
러시아 군의 크림반도 점령으로 지난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서방진영과 러시아 간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계 시민들에 대한 보호를 명분으로 전격적인 무력 행동에 나섰다.
이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은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비롯한 유럽 주요 지도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는 완전한 불법행위"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서방 진영이 사태의 무력을 동원해 맞서는 결정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복안도 깔려 있다.
유럽 주요국들은 푸틴을 너무 몰아세우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자국과 러시아 간 에너지 산업 등 경제 교류 중단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하기 때문이다.
서유럽 각국은 러시아의 천연가스와 원유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경제 제재에 돌입할 경우 긴장 국면이 오래 지속돼 자국의 정치·경제적 이슈로 부각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 유럽 주요국,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 커
지난 2012년 EU의 대러시아 교역량은 1230억유로에 이른다. 이는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규모다.
또한 EU는 러시아 에너지 산업의 최대 수출 시장으로 사실상 러시아에 주요 에너지 자원을 의존하고 있다.
다만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등이 우크라이나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의 불법자산을 동결한 조치를 승인하는 정도의 제재 결정에는 합의할 수 있다.
한 EU 외교관은 "우크라이나 자산 동결은 여전히 선택권이 열려있는 상황"이라며 "불법자금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는 정도의 방법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뉴스핌 Newspim] 노종빈 기자 (unti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