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노종빈 기자] 최근 미국계 기업들이 유럽기업들을 인수, 세율이 낮은 영국이나 스위스 등으로 본사를 옮기려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른바 법인의 '국적이전(corporate inversion)' 현상으로 대부분 글로벌 기업들이 법인세를 회피, 더 많은 주주이익을 챙기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 높은 세율 피해 국적이전…제약업종서 활발
이 경향은 최근 특정 국적이 큰 의미가 없는 글로벌 기업들 가운데 제약바이오업종에서 특히 많이 나타나고 있다.
110여 년간 미국에서 약국체인점을 영위해 온 월그린은 최근 유럽 기업에 대한 M&A(인수합병)을 통해 스위스로의 법인 국적 이전을 시도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또 세계 1위 제약업체인 화이자도 영국으로의 법인 이전을 위해 아스트라제네카 인수를 시도하다 현지 경영진의 반발로 일단 M&A 계획을 접은 상황이다.
이들 기업이 미국 국적으로 유지할 경우 약 40%까지 법인세와 지방세를 부담해야 하지만 법인세율이 낮은 스위스(18%)나 영국(21%)등으로 옮길 경우 세금 관련 비용을 절반에서 3분의 2까지 줄일 수 있다. 예컨대 화이자는 지난해 43억달러(약 4조4500억원)가 넘는 세금을 냈으나 이를 절반 가까이 줄일 수 있는 것이다.
◆ 오바마 "경제애국주의 요구된다"
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최근 3년간 20~30여개 대형 기업들이 이 같은 방식으로 국적을 이전했거나 이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경제적 애국주의가 요구된다"며 미국 의회에 입법을 통해 이 같은 행위를 막아달라고 요청했다. 제이컵 루 재무장관도 의회의 동의 없이는 이를 방지할 방법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오바마 대통령의 주장에 지지를 보였지만 반면 다수의 공화당 의원들은 이런 결정으로 오히려 기업들이 대거 해외로 빠져나가는 역효과를 볼 수도 있다고 비판했다.
의회의 일치된 협력이 쉽지 않다고 판단한 오바마 행정부는 의회 동의 없이도 연방조세규정 7874조 등 세부 규정의 변경 조치만으로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을 강구하고 있다.
익명의 재무부 관계자는 최근 인수합병 사례들을 바탕으로 연방조세규정 7874의 개정을 비롯한 효율적인 기업이전 방지 대책을 면밀히 살피고 있다.
◆ 방치하면 美세수구멍 200억$ 이를 듯
기업들이 해외로 본사를 이전할 경우 미국 정부는 향후 10년간 약 200억달러(약 20조6700억원) 이상의 세수 구멍이 생길 것으로 관측된다.
이는 수 년 전부터 예견됐던 것이다. 전문가들은 결국 글로벌기업들이 이 규정을 회피하기 위해 결과적으로 해외로 국적을 이전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앞서 지난 2010년 홍콩중문대학 논문 등에 따르면 오바마 행정부의 조세 정책은 미국내 법인이 보유한 글로벌 기업들의 법인세 비용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 바 있다.
이 규정은 지난 2004년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미국내 일자리를 확대하기 위한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명문화됐으나 업계의 반발 등으로 여러 차례 수정을 반복해왔다.
◆ 11월 중간선거 지지층 결집 노려
오바마 행정부는 각계 전문가들의 자문을 바탕으로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기업들의 국적이동 결정 자체를 제한하는 방법부터 국적 이전이 일어날 경우 기업들에 주어진 세제 혜택을 줄여 타격을 주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방법을 찾아내더라도 정식 규정 변경과 시행까지는 상당 기간이 소요될 수 있어 자칫 오바마 대통령의 잔여 임기 중 실현되지 못할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오바마 행정부가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지지층을 확산하기 위한 전략으로 국적이전 이슈를 선택했다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미국 의회 관계자는 "의회의 동의 없이 재무부가 결정하는 규정 부분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며 "입법만이 가장 심도있는 방지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경제보좌관을 지낸바 있는 재럿 번스타인은 "정책적인 의도는 충분히 이해하나 차기 대선 결과에 따라 정권교체가 이뤄질 경우 또다시 제도 변경이 있을 수 있으므로 바람직한 정책은 아닐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스핌 Newspim] 노종빈 기자 (unti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