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강혁 기자] 현대차그룹이 18일 한국전력공사 삼성동 부지 낙찰자로 발표되면서 베팅한 10조5500억원의 금액을 두고 세간의 시선이 쏠린다. 단일 부지 매각 건으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천문학적 금액이기 때문이다.
재계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현대차그룹이 왜 10조원이 넘는 가격을 베팅했는지 궁금증이 증폭되는 형국이다. 한전에서 입찰 성립요건으로 설정한 예상낙찰가는 감정평가액인 3조3346억원과 동일하다. 매물을 쥐고 있던 한전에서도 10조원대의 베팅은 상상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이 베팅한 10조5500억원은 평당(3.3㎡) 환산액이 무려 4억3800만원에 달한다. 전국의 땅값 중 가장 비싼 서울 명동 땅값이 평당 1억~1억5000만원 선이라는 점에서 엄청난 도박으로도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맥락에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결단이 과연 옳은 선택이었는지, 실무선에서 삼성그룹을 의식해 무리하게 전략을 짠 것은 아닌지, 예상낙찰가에 대한 정보력 부재였는지 등 입방아가 끊이질 않고 있다.
특히 경쟁입찰에 참여한 삼성전자가 얼마를 써냈는지 가격이 공개되지 않으면서 궁금증은 더 증폭되는 형국이다. 삼성전자에서는 이번 입찰과 관련해 일절 함구하고 있으나 삼성 주변에서는 5조~6조원 이상의 베팅은 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삼성 내부 관계자들 대부분이 자사의 입찰가를 알지 못한다는 전제를 깔기는 했으나 현대차그룹의 10조원 베팅 소식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놀란 반응을 보여 이같은 관측에 힘을 싣는 분위기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무리한 베팅이라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주식시장은 이를 반영하듯 현대차를 비롯한 현대차그룹 주요 계열사 주가가 이날 하루 곤두박질쳤다.
현대차는 이날 하루만에 시총이 4조원 넘게 증발했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현대차는 전일보다 9.17% 떨어진 19만8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종가기준으로 20만원선 아래로 내려온 것은 지난해 6월17일 19만7000원 이후 1년3개월만이다. 장중 19만6000원까지 밀리며 52주 신저가를 갈아치웠다.
현대차와 함께 한전 부지 컨소시엄에 참여한 현대모비스와 기아차도 각각 7.89%, 7.80% 급락한 채 장을 마쳤다. 현대모비스와 기아차도 이날 하루 시가총액이 각각 2조원 가량 감소했다. 6조원대의 시장의 예상을 뒤엎은 결과에 크게 우려한 셈이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의 표정은 이날 하루 상당히 여유로웠다. 꼭 가져야 할 것을 손에 넣고 환호하는 분위기도 엿보였다. 이와 관련, 현대차그룹의 한 임원은 "현대차가 무슨 구멍가게도 아니고 승자의 저주를 고려하지 않고 무리한 베팅에 나섰겠냐"면서 "면밀한 검토를 진행해 충분히 감당할 수준에서 베팅이 이루어졌다"고 잘라 말했다.
현대차그룹에게 절실한 부지를 확보함과 동시에 경영상 전혀위험하지 않은 수준의 금액을 설정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무엇보다 유무형의 미래가치를 꼼꼼하게 따져보고 결정한 금액으로 재계의 예상보다 다소 높은 금액일 수는 있으나 그 이상의 가치를 보고 투자한 것이라는 얘기다.
한편 재계 일각에서는 현대차그룹의 10조원대 베팅이 삼성을 견제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 베팅에 나섰다기 보다는 꼭 가져와야 한다는 정 회장의 단호한 의지와 더불어 박근혜 정부에 대한 보은(報恩) 성격에서 정 회장이 통 큰 결정을 내린 것 아니겠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뉴스핌 Newspim] 이강혁 기자 (ik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