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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 국제칼럼] 최경환 부총리에게서 아베 총리를 보다

기사등록 : 2014-10-15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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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신뢰 얻으려면 일관성 필요…일본식 해법은 답 아니다

[뉴스핌=김윤경 국제전문기자]  석달 전, 새로운 경제팀이 들어설 때 기대감은 꽤 높았던 것 같다.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가 가장 많이 들었던 지적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였기 때문이었다. 

우리 경제가 아직 빈사(瀕死) 상태는 아니란 판단이었을까. 인플레이션은 분명히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디플레이션 위험이 있다고 할 수 있는지 진단을 하기 어려운 상태라 판단을 유보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변명을 해주자는 건 절대 아니지만 경제학자라는 '출신성분(?)'을 놓고 보면 크게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지난 7월 들어선 2기 경제팀은 그런데 확 달라졌던 것이다.

(출처=CNBC)
'왕(王) 부총리'가 왔다는 말까지 나왔다. 말도 행보도 과감(?)했다. 경기가 바닥이니 올려놔야 한다는 선언이 이어졌다. '보여주기'에 능한 정치인 기질이 느껴졌다. 

기업에게 엄포도 놓았다. 갖고 있는 돈을 더 풀어서 일자리도 만들고 임금도 올려주고 주주들 배당도 늘려주라고, 그렇지 않으면 그 돈에 세금을 물리겠다고 했다.

부동산 시장을 띄우겠다는 의지도 분명했다. 추운 겨울에 한 여름 옷을 입고 있어야 되겠냐며 부동산 투기 광풍이 불던 시절에 박힌 '대못'이라고 지적받아온 대출 규제, 총부채상환비율(DTI)와 주택담보비율(LTV)을 확 풀었다. 재건축이나 그린벨트 활용 규제도 과감히 풀었다.

머뭇머뭇 현 경제에 대한 판단을 유보해 온 사람들에겐 "아, 지금은 춥구나. 이걸 벗어나기 위해서 뭐라도 해야하는 것이구나"란 생각이 들게 할 만큼 신속하고 과감했다. 시장도 화답하는 듯 보였다. '최경환 효과'란 말이 많이 등장했다.

하지만 들여다 보니 뭔가 하긴 한 건 같은데 결과가 안 보인다. 그랬더니 석달 만에 또 "초이노믹스(최경환 부총리 경제팀의 경기 부양책) 약발이 다했다"는 비판들이 나오고 있다. 물론 증시가 좀 떨어졌다고 해서 경기 부양책의 효과가 다했다는 분석은 옳지 않다. 증시는 기대심리를 반영하는 것이지 경제 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해 주는 바로미터는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단기 부양책의 한계가 금세 드러났다는 점이다. 당장 스테로이드 주사를 놓으면 기운 팔팔해 보일 수 있겠지만 약발이 떨어지면 그런 것이다.

부동산이나 주식 가격이 뛰면 사람들은 '주머니 사정이 나아졌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게 바로 부(富)의 효과다. 피구효과라고도 한다. 그래서 소비가 늘어나게 되고 여기에 기업까지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나서게 되면 경기가 선순환할 수도 있다. 최경환 부총리 경제팀도 바로 그걸 겨냥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에서 보듯 실질임금이 정체 상태인데 자산 가격만 들썩인다고 해서 경기는 살아나지 못한다. 지난달 우리나라 임금 노동자 실질임금 상승률은 '0%'다. 올라도 물가 상승률과 거의 같아 오른 것을 실감하지 못한다는 얘기. 임시직 노동자의 경우엔 오히려 실질임금 상승률이 마이너스다. 당연히 소비를 늘릴 유인이 없다.

실질임금은 오르지 않는데 재정 사정도 힘든 정부는 서민들에게 받는 세금을 찔금찔끔 올려받으려 한다. 한국은행은 지난달에 이어 오늘(15일) 기준금리를 또 내렸다. 최 부총리가 "척 하면 척(정부가 경기 부양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한국은행은 알아서 금리 인하로 화답할 것이란 뜻)"이라고 하는 등 계속 압력을 넣으니 "금리는 우리가 결정한다"고 하던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라고 별 수가 있나 싶다. 금리 인하와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 등은 가계가 대출을 통해 숨돌릴 수 있게는 해주니 한동안 급증세가 주춤했던 가계대출 잔고가 확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도 최 부총리는 여전히 단기 부양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지난 11일(현지시간) 국제통화기금(IMF) 및 세계은행(WB) 연차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임금이 오르지 않으면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다. 과거에는 주가 상승과 부동산 가격 상승에 기대 살 수 있었는데 현재는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고 말했다.

이 얘긴 공무원 보수를 3.8% 인상하기로 한 것과 관련해서 나왔다. 공무원들의 사기도 진작하는 한편 민간 기업에도 메시지를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계소득증대세제 3종 패키지를 내놓은 것도 기업들에게 임금을 올릴 필요가 있다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비로소 '아베노믹스'를 밀어붙이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모습과 비로소 너무도 흡사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된 발언이었다.  기업들에게 직접 임금을 인상하라고 지시한 아베 총리였다.

(출처=텔레그래프)
경제성장률(물가상승률)을 2%대까지 올려놓을 때까지 재정정책도 통화정책도 한도껏 하겠다는 입장이고, 기업들에게 임금 인상까지도 압박해서 실제 기업들이 시늉이라도 하긴 했지만 지난 8월 일본 노동자의 실질임금 상승률은 마이너스 2.6%로 14개월 연속 하락했다. 지난 2분기 일본의 경제 성장률은 연율 마이너스 6.8%를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8월 소비지출은 작년 대비 4.7%나 줄었다. 

리처드 카츠 오리엔탈 이코노미스트 에디터는 지난 1일자로 낸 '경고(Alert)'란 보고서에서 이 같은 상황을 상당히 심각하게 짚었다. 그는 일본 정부가 고려하고 있는 추가 소비세 인상은 더욱 큰 악재가 될 것으로 봤다. 기업들은 해외로 나갈 것을 고려하고 움직이는 상태다.

유럽도 점점 오랜 침체에 빠지고 돈을 푸는 것 밖에 쓸 카드가 없는 상황이 되자 자신들의 경제가 '일본화'되는 것을 상당히 우려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역시 일본화가 우려된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일본화된 경제는 지금의 일본이 그렇듯 일본식 해법으로는 못 푼다는 것이다.

그나마 일본이 우리가 다른 점이 있다면 모든 정책의 방향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2년째 일관되게 부양 일로를 걷고 있으며 부족한 재정을 위한 증세도 확실히 했다. 

그런데 우리는 "증세는 없다"며 사실상 세금을 더 걷어가는 정부를 보고 있다. "공공요금 인상은 없다"고 하지만 상수도, 가스, 전기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업들의 부채를 보면 결코 믿기가 어렵다. 신뢰가 사라지면 정책은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잘못된 역사의식으로 자국민들의 인기를 조금이라도 얻고 진행했던 아베노믹스도 저 지경인데 말이다. 

[뉴스핌 Newspim] 김윤경 국제전문기자 (s914@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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