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한기진 기자] 대포통장의 주요 출처였던 NH농협은행이 전쟁을 선포하면서 이미 발급된 통장들이 대포통장으로 거래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보이스피싱, 금융사기, 자금세탁 등에 대포통장을 이용하려는 범죄수요가 NH농협은행에서 막히자, 풍선효과로 KB국민은행과 SC은행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기존에 발급된 통장이 대포통장으로 악용되고 있고, KB국민은행과 SC은행이 모니터링 시스템으로 찾아내면서 숫자가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20일 금융감독원의 대포통장 현황 자료를 보면, NH농협은행은 2013년만 해도 은행권 전체 대포통장 1만6081건의 절반(7583건) 가까이를 차지했지만, 올 상반기 2680건으로 크게 줄였다.
금감원이 지난해 8월과 9월 현장점검과 업무협약을 체결해 농협은행의 내부통제 강화 이행상황을 꼼꼼히 챙긴 효과가 나타났다.
또 농협은행과 농협상호금융은 비상대책을 수립해 대포통장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4월부터 전국 5700여 영업점에서 입출금통장 개설 전용창구를 운영하는 한편, 통장 개설 시 금융거래목적 확인서와 증빙자료를 받았다. 또 서류는 팀장 이상 책임자가 직접 심사토록 했고, 계좌 개설 목적이 불명확하거나 증빙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통장개설을 거절했다.
반면 국민은행은 지난해 760건에 불과했지만 올 상반기 2375건으로 급증했다. SC은행도 2013년 551건, 2012년 482건으로 적은 편이었는데 올 상반기 553건이 적발돼, 지난해 전체 수준을 넘겼다.
이 수치는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지급 정지된 대포통장 계좌수다.
문제는 이 같은 대포통장 증가세를 은행 자체적으로 막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범죄 우려가 있는 신규계좌 개설은 은행들이 최근 모니터링을 강화하면서 막고 있다. 90개 사례를 만들어 은행들이 영업창구에서 활용하고 있다. 가령 신원확인을 피하기 위해 마스크나 모자를 착용하거나 의사표현이 곤란한 고객(노숙자, 지적장애인)을 후견인이나 가족이 아닌 자가 동행해 통장 개설을 돕는 경우는 계좌개설이 어렵다. 법인계좌 개설 시 유선전화 없이 휴대전화 번호만 등록하거나 동일한 휴대전화 번호로 기개설된 법인계좌도 제한된다.
또 불법 거래가 의심되는 경우 자동으로 찾아내는 '대포통장 모니터링시스템'도 최근 가동되면서, 타 은행과 정보를 공유하거나 거래를 중단시킨다.
결국, 이미 발급된 통장의 거래를 막을 수 없어, 사후 조치만 하는 셈이다.
금감원 서민금융지원국 관계자는 “신규 통장 개설은 과거보다 까다롭게 보는데 SC은행 등에서 대포통장이 증가한 것은 (범죄집단이) 기존에 발급된 통장을 거래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한기진 기자 (hkj7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