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최주은 기자] 유럽중앙은행(ECB)이 공격적인 양적 완화를 시작하면서 유통업계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양적완화로 인해 유럽 제품의 가격이 대폭 하락, 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탓이다.
다만 주요 유통업계는 "단기적 현상보다는 장기적으로 봐야할 것"이라며 유보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다.
ECB는 오는 3월부터 매월 600억유로(약74조원) 규모의 양적완화를 시행한다고 22일(현지시간) 결정했다. 이번 조치는 최소 내년 9월까지 시행된다. 국채 매입 등으로 시중에 풀리는 돈만 1조1000억유로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1300조원이 넘는다.
이번 양적 완화는 엄청난 양의 유로화를 시장에 풀면서 유로의 약세를 가져온다. 즉 유럽 수입 제품 가격이 보다 저렴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이는 유통업계에도 큰 변수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미 백화점 등에서 취급하는 초고가 명품은 유럽산이 대부분이다. 더불어 와인, 돼지고기 등의 제품도 최근 유통업계의 뜨거운 아이템 중 하나다.
하지만 가격 인하 효과가 소비자 장바구니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앞서 한 EU FTA가 발효됐지만 소비자들은 크게 가격 인하 효과를 체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FTA 발효로 위스키와 와인에 붙는 15~20%의 관세가 사라졌지만, 국내 와인 가격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전국주부교실중앙회에 따르면 국내외에서 공통으로 판매되는 수입와인 8종을 대상으로 한 가격비교결과 국내 판매가격은 외국보다 평균 2.9배 비쌌다. 특히 프랑스산 와인의 가격차이가 심했다. 국내에서 평균 15만원에 팔리는 2009년산 샤또 딸보는 외국 가격이 평균 2만7600원에 불과해 무려 5.4배나 비싸게 가격이 책정됐다.
FTA 발효로 인한 관세 철폐가 고객에까지 이어지지 않은 탓이다. 유통 과정에서 마진을 남기거나 주류업체들만 관세 인하 혜택을 누린 대표적인 사례다.
유통업계는 ECB의 양적완화에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유럽 시장의 양적완화가 말단인 유통업계까지 영향을 미치려면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ECB 양적완화로 인한 가격 인하가 시장에 즉각적으로 반영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천일 무역협회 통상연구실 실장은 “양적완화로 인해 EU 국가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며 “여기에 FTA 관세 인하 역시 단계적으로 적용돼 효과는 더욱 클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하지만 구체적인 품목과 가격 인하 체감폭은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귀띔했다.
가격 체감효과와 별개로 유럽 제품의 국내 수입 증가는 유력해 보인다.
2007년부터 2013년까지 우리나라의 대 EU(유럽연합) 무역수지는 2013년 한 차례만 흑자였고, 나머지 6차례는 모두 적자다. 특히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후 독일 등 유럽산 수입차와 고가 소비재 등의 수입이 급증하고 있다.
ECB 양적완화가 EU 지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견인해 당분간 수입 증가세를 이끌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인 이유다.
[뉴스핌 Newspim] 최주은 기자 (jun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