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강혁 기자] 조성진 LG전자 사장이 지난해 9월 독일에서 삼성전자 세탁기를 '고의 파손'한 혐의 등으로 최근 기소된 가운데, LG전자가 현장 폐쇄회로(CC)TV 영상을 지난 16일 전격 공개했다. 조 사장은 이날 출입기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지난 40년간 세탁기 개발에 힘써 온 제 명예는 물론 회사의 명예를 위해서 현장 CCTV를 분석한 동영상을 공개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검찰이 수개월에 걸쳐 조사한 결과를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자, 경쟁사 세탁기 파손은 고의성이 전혀 없는 일상적인 테스트였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영상 공개를 통해 조 사장과 LG전자는 정식재판에 앞서 일종의 여론재판에 먼저 자신들의 주장을 회부하고 직접 답을 구한 셈이다.
삼성전자는 이같은 영상 공개에 대해 하루가 지난 17일 적극적으로 반격에 나섰다. 재판을 앞둔 시점이라서 삼성이 가지고 있는 전체 동영상을 공개하지는 않겠다고 했으나, LG전자가 공개한 영상이 편집·왜곡돼 사실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날 삼성전자는 "검찰이 고의 파손 혐의를 인정해 이미 법원에 기소한 사안"이라며 "LG전자가 자의적으로 편집한 동영상을 올렸다고 해서 우리도 똑같이 대응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 전체 동영상을 공개하지 않는 등 대응을 자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이 동영상은 의도적으로 사실을 명백히 왜곡하고 있어 이에 관련한 정확한 사실을 설명하는 게 옳다고 판단하게 됐다"며 "체중 80kg으로 추정되는 건장한 성인 남성이 무릎을 굽혀가며 세탁기 문을 여러 차례 누르는 행위는 통상적 테스트의 범위를 넘어서 목적이 분명한 파손 행위이며, 이것이 이 사안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현장 영상을 교묘하게 편집해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며 "전체 영상을 보면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장면과 조 사장이 세탁기를 파손하는 장면 사이에는 상당한 시간차가 있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 법 테두리 안에서 벌어지던 양사 간 세탁기 파손 진실공방이 장외 신경전으로 본격화된 순간이다.
양사의 입장을 뒤로하고 제3자의 시선에서 보자면, 사실 LG전자가 굳이 재판을 앞두고 영상을 공개했어야 하느냐에는 아쉬움이 뒤따른다. 양사의 주장은 앞으로 재판부가 듣고 판단할 문제다.
때문에 이번 LG전자의 영상 공개가 오히려 여론몰이를 통해 재판부 판단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역풍이 될 가능성도 있다. 차라리 영상을 공개하려고 했다면 사건 초기에 했어야 하는 게 맞다는 여론도 나온다.
또한 LG전자가 공개한 영상을 보면, 경쟁사 제품 테스트라는 조 사장의 주장이 명확히 설득력 있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상만으로 '고의로 파손했느냐'를 판단하기는 모호하다.
또 굳이 지난해 6월에 출시돼 3개월 가량이나 시중에서 팔리고 있는 경쟁사 세탁기를, 그것도 독일까지 가서 테스트 해봤어야 하느냐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특히 검찰의 기소한 내용처럼 조 사장 일행은 한 곳의 매장이 아닌 두 곳의 매장에서 세탁기를 파손했다. 삼성전자 매장이나 LG전자 매장이 아닌 하이마트 매장 두 곳에 가서 테스트를 했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LG전자가 공개한 영상은 한 곳의 매장만 나와 있다.
조 사장 일행이 제품 테스트를 하려는 의도였다고 하면, 한 대만 테스트하면 될 것을 왜 다른 매장까지 옮겨다니며 여러대의 세탁기를 만져봤느냐는 삼성전자의 공세를 피해가기 어려운 대목이다.
삼성전자도 이런 맥락에서 공세를 퍼붙고 있다. 세계 어느 가전회사도 매장에 진열된 경쟁사 제품으로 성능 테스트를 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 측은 "해외 매장에서 경쟁사 제품을 테스트하는 것은 세계 어느 가전회사에서도 하지 않는 행위"라며 "매장에 진열된 제품은 소비자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경쟁사 제품의 성능을 테스트하려면 제품을 구매해 실험실에서 하는 것이 통상적인 절차"라며 "더구나 출시된 지 3개월이 지나 어디서나 살 수 있는 제품을 매장에서 테스트한다는 것은 억지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업계 관계자는 "사법적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문제를 여론 이슈로 부각시키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며 "삼성이든, LG든 법의 판단을 존중하는 것이 옳다"고 의견을 전했다.
[뉴스핌 Newspim] 이강혁 기자 (ik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