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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훈의 4색 여행기] 역사의 뒤안길에도 역사가

기사등록 : 2015-03-26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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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다르(Gondar)는 타나 호수에서 차로 서너 시간 달려간 곳에 있었다. 1636년에 왕국의 수도로 정해져 이백여 년간 지속된다. 그 이후로 에티오피아는 제국, 공산주의 정부를 거쳐 연방민주 공화국이란 이름으로 정착된다. 그 과정 속에 내전과 외전, 기근 같은 참사들이 아프리카의 숱한 국가들처럼 들끓면서 말이다. 성경의 구약에도 이름이 나올만큼 역사가 깊은 이 나라는 실로 파란만장한 여정을 거치면서 인류사의 질곡들을 보여준다.

수도가 되기 전에도 곤다르는 상업과 물자의 중심지였다. 권력을 잡은 파실리다스 왕이 그 터전 위에 대규모의 화려한 성을 짓는다. 이른바 곤다르 성이다. 이 나라의 고대 왕국인 악숨의 영향 외에도 포르투갈, 북아프리카 무어, 인도 풍의 다양한 건축양식의 영향을 받아 아름답게 꾸며진다.

성 안의 어느 공간인데 러브 시트(Love seat)라는 애칭이 붙어 있다. 왕과 왕비가 마주 앉아 밖의 경치를 감상하며 사랑을 속삭였던 곳이다. 호기심이 일어 그 자리로 가서 앉았다. 바깥 풍경이 새삼 다르게 보이는 것은 물론 무릅이 닿을 위치에 우아한 드레스의 왕비와 닿는 듯해서 짜릿해진다. 하지만 성곽 투어와 그 정도의 감정 이입은 큰 감흥까지는 아니어서 다소 시무룩하게 있자 그 표정을 보았는지 가이드가 말을 꺼냈는데 솔깃했다. 멀지 않은 곳에 이색적인 마을이 있다는 것이다.

성 안의 연회장, 기도실, 사자 우리 등의 관람을 마친 후 차로 이십 여분 달려가자 재미있는 문양들이 반겨주었다. 다윗의 별도 눈에 들어왔다.
“유대인 마을입니다. 펠레샤(Fellasha) 마을이라고 불리지요. BC 6 세기에 가나안 땅에서 바빌론 유수라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많은 유대인들이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 가지요. 근데 당시에 바빌론의 박해를 피해 시리아로 도망간 사람들이 있어요. 그들이 이곳까지 나일강을 따라 걸어와 산에 살고 있었는데 에티오피아의 황제가 땅을 하사해 이주해 살고 있는 거지요.”
아찔해졌다. 지금 들은 말은 지금껏 그 누구에게도 들은 바가 없던 것이다. 적당히 알고 있던 지식의 옆구리에 구멍이 뚫려 그곳을 타고 전혀 낯선 대지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역사란 실로 어느 일방향이 아니고 다방향일 수 있으며 기록되지 않은 것에도 나름의 의미가 절절하다는 평소의 생각이 강화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문양들을 요모조모 뜯어보다가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어느 집 안의 풍경이다. 그 틈에 끼여 앉는 순간 마치 역사를 호흡하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말로만 듣던 바벨론 유수며 그것에서 비껴난 또다른 흐름이 피부에 와닿는 듯했다. 그런 실감을 끌어안고 있다가 나오자 가이드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말했다.
“그런데 이들 중에 가짜도 있습니다. 진짜 유대인들도 있지만 그 수가 사실은 적지요.”
이게 또 뭔가 싶어 귀가 절로 기울어졌다.
“에티오피아에 공산 정권이 들어섰을 때 농업 집단화 정책을 펼치지요. 이에 유대인들이 반발하는데 도리어 집단 학살을 당할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그때 이스라엘 정부가 나서지요. 미국과 협력해 비행기를 동원해 상당수 유대인들을 이스라엘로 탈출시킵니다. 그때 끼지 못한 사람들만이 남아 있는 거지요.”
영화에서나 볼듯한 장면이 바로 이 장소에서 불과 몇 십년 전에 일어난 것이다. 그때 공동화되다시피 한 이 마을에 외지 사람들이 들어와 전에 진짜 유대인들이 만들어 팔던 수공예품을 팔며 행세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어느 것이든 역사 아닌가. 역사라는 말이 거창하다면 삶의 소중한 알곡들 아닌가. 진짜 유대인이든 가짜 유대인이든 다 나름의 삶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하나하나 다 가치가 있는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흘러가자 이 마을은 에티오피아 내에서도 이색적인 내음이 강한 곳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하긴 에티오피아 자체가 루시가 살던 선사 시대를 비롯해 솔로몬의 연인이었던 시바 여왕의 아들이 통치했다는 악숨 왕국 등등 숱한 이색들로 채워졌지만 말이다.

곤다르 시내의 데브레 베르한 셀라시 교회(Debre Berhan Selassie Church)의 천장에 그려진 천사의 얼굴들이다. 모두 135개라 하는데 천사치고는 귀엽다고나 할까 암튼 독특한 얼굴을 하고 있다. 곤다르 성과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유적지라 하기에 유대인 마을에 이어 봤지만 유명세만큼의 감화는 역시 얻지 못했다. 나는 정도보다는 샛길에 아마 마음이 더 가는 족속인가 보다. 하루의 일정을 마무리할 겸 유명하다는 식당에 가서 음식과 음료수, 맥주를 시켰다. 

서빙을 하는 미녀의 미소는 하루를 더욱 상큼하게 한다. 우리는 맛 좋은 음식과 맥주에 취해갔다. 가이드와도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자신의 아버지가 군인이었는데 에리트레아 분리 전쟁 때 사망했다고 했다. 역사라는 것이 진짜 멀리 있는 것만이 아니라 바로 내 앞의 사람에게도 있다는 사실이 더욱 엄연하게 다가온 순간이었다. 에티오피아는 정말 끝도 바닥도 없는 사연들을 품고 있다. 국경 문제만 해도 그렇다. 에리트레아와는 숙명적인 갈등 관계를 갖고 있다. 강제 병합 상태로 있다가 에리트레아가 1993년에 분리 전쟁을 일으켜 독립한다. 그 전쟁에서 가이드는 아버지를 잃은 것이다
그 후 삶은 더욱 곤궁해져 구두닦이 등 바닥 생활을 겪으며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삼십 대 초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이 나라를 할켜온 전쟁과 빈곤이 남겨놓은 흉터일 것이다. 곤다르의 밤은 역사라는 것의 다양한 모자이크를 보여주며 그 역시 맥주에 검푸르게 취해가고 있었다. 

이명훈 (소설 '작약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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