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노종빈 기자] 세계 최대의 유동성이 몰리는 미국 국채시장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가 점증하고 있다.
특히 올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가 제로금리에서 벗어나 수조 달러에 달하는 매입 자산을 정리해 들어가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영역(uncharted territory)'으로 가야 한다는 점에서, 파국적인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도 나온 상태다.
11일자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몇년간 회사채 시장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는 제기돼 왔으나, 최근에는 가장 거래금액이 크고 활발해야 할 미국 국채 시장에서도 일시적 유동성 부족 현상이 나타남에 따라 투자자들이 국채를 제 값에 팔고 사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진 = 블룸버그통신> |
투자은행 도이체방크의 분석에 따르면 최근 투자등급 및 고수익 채권 시장의 평균 거래금액은 지난 2006년~2007년 최고치 대비 각각 50%, 30% 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국채의 경우 이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으로, 거래액이 2006년 최고치 대비 70% 가량 줄어든 것으로 분석됐다. 일일 거래량은 2007년 고점 대비로 10%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지만, 시장의 상대적 규모를 감안했을 때 이런 수치가 나온다. 장기 평균 일일 거래량과 비교하면 약 35% 감소한 정도다.
올레그 멜렌티에프 도이체방크 연구원은 "투자자들은 고수익 채권의 유동성 부족으로 인한 문제를 우려하지만 진짜 문제는 국채 역시 유동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도이체방크의 유동성 분석 방식에 따르면 미국 국채는 투자등급 회사채에 비해 약 10배 가량 활발히 거래되고 있다.
하지만 자금 조달에 따른 비용을 의미하는 수익률의 상승을 감안하더라도 미국 국채 10년물 조달 비용은 과거 몇년 전만해도 생각하기 힘든 수준까지 높아진 상태다.
하루 5000억달러 규모로 거래되는 국채시장에서 대량 거래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JP모건의 분석에 따르면 대량 매수주문은 가장 거래가 활발한 시점인 신규 발행물량이 거래되는 첫 날 아침에 유입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10년물 국채의 대량 주문 물량의 평균치는 과거 8년간 1억7100만달러 규모였으나 올해 1억1600만달러로 줄어들었다. 특히 과거 금융위기 당시 대량거래 물량이 급격히 줄었고 최근에도 거래경색 국면에서 거래 부진이 가끔 나타나고 있다.
마이크 머터라소 프랭클린템플턴 국채부문 대표는 "현재까지 뚜렷하게 유동성 부족 문제를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유동성이 불안정해지는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 연준 양적완화·외국 중앙은행 매수로 시중 유동성 고갈
이 같은 채권시장 유동성 급락의 배경으로 여러가지 요인이 지적되고 있다.
무엇보다 금융위기 이후 시장 규모가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추가 발행물량은 연방준비제도의 양적완화 프로그램이 흡수했던 점을 꼽을 수 있다. 동시에 외국중앙은행들도 자국 통화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미국 국채를 대거 사들였고 이에 따라 실수요 투자자들이 거래물량은 상당부분 줄어들었다.
또한 채권형 상장지수펀드가 인기를 끌면서 시중의 유동성을 흡수하는 기능을 하는 등 미국 국채 수급이 일방적으로 쏠리는 양상이 전개되어왔다.
또 국채시장에서 대형은행들의 입지는 규제의 강화로 인해 점차 줄어들었고 일부 은행들이 손을 떼면서 이들의 시장 충격 완충 기능도 사라졌다.
미국 국채는 여전히 글로벌 금융시스템의 한 축으로 디폴트 우려가 없는 안전 자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 가장 큰 장점은 유동성 때문이다. 따라서 유동성이 부족하다면 국채 가격의 하락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특히 올해 안으로 예상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인상 직후 회사채 등 채권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매도세가 촉진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 IMF "수퍼 테이퍼 텐트럼" 경고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4월 '금융안정 보고서'를 통해 연준의 긴축정책으로의 전환과 관련해서 "채권시장 투자자들이 황급히 출구를 찾아 나가려고 아우성을 치면, 2013년에 경험했던 긴축 발작보다 강한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면서 '수퍼 테이퍼 텐트럼(super taper tantrum)'을 경고했다.
더구나 시장참가자들이 연준의 연내 금리인상 개시 경고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금리가 하향 안정될 것이란 기대를 키운 상황에서, "제로 그라운드에서 금리가 올라가기 시작하면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가 100bp(1bp=0.01%포인트) 상승하는 충격이 초기에 발생할 것"이라고 IMF는 예상했다.
'옐런 코넌드럼(Yellen conumdrum)' 쟁점도 제기했다. 통화정책 당국이 원하는 수준만큼 시중금리(장기금리)가 올라가지 않고 버티게 되면,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더 강하고 빠른 속도로 금리를 올려야겠다고 마음 먹을 수 있다는 위험을 일컫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10월 발생한 '플래시 크래시(flash crash)' 사태가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음도 내놓았다.
시장 전문가들은 일시적으로 매도자들이 과도하게 늘어나고 매수자들은 급격히 줄어들면서 채권가격이 급락하고 채권 수익률은 급등할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또 연준이 한편으로는 유동성 공급을 통한 완화 정책을 펼쳐왔지만 한편으로는 미국 의회와 손잡고 긴축적 정책과 규제를 지속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마이클 콘트로폴루스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 채권전략가는 "고수익 채권들의 경우 펀더멘털이 뒷받침됐다기 보다는 양적완화에 따른 유동성 공급으로 자산 가치가 상승했던 것"이라며 "실제 미국 경제 상황이나 고수익 채권의 실제 가치는 상당히 황량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수익 채권에 대한 불안 요인으로 기업들의 수익성 부진과 활발하지 않은 투자, 자사주 매입소각과 주주 배당 등의 경향을 지적했다.
◆ 루비니 교수 "유동성 시한폭탄"… 시장 급변시 유동성 불균형 쇼크 가능
글로벌 경제위기를 예측, 이른바 '닥터둠'으로 불리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최근 경제 상황의 일시적 변동과 금융 시장의 유동성 불균형으로 인해 쇼크가 찾아올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영국 가디언지에 기고한 컬럼에서 중앙은행이 유동성을 계속 공급할수록 주식과 채권, 자산가격의 버블이 형성된다"고 지적했다.
미국 연준은 그동안 4조5000억달러에 이르는 유동성을 채권매입 프로그램을 통해 시중에 투입했다. 또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은행(BOJ)은 지금도 양적완화를 지속하고 있다.
JP모건은 올해말 미국 국채 10년물 수익률 전망치를 경제 전망에 대한 변동이 없음에도 2.40%에서 2.55%로 높여 잡았다.
얀 로이스 JP모건 글로벌 자산배분 부문 대표는 "과거 몇년간 시장 투자자들은 회사채 부문의 유동성 부족 현상에 대해 우려했다"며 "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유동성이 활발한 미국 국채의 문제도 검토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노종빈 기자 (unti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