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선엽 기자] 삼성물산의 백기사로 등판한 KCC가 삼성물산 자사주를 지나치게 비싼 가격에 매입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경영권 프리미엄이 없는 블록딜의 경우 1~10% 가량의 할인이 이뤄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KCC측이 제값을 주고 샀기 때문이다.
특히 자사주 매각을 결정할 무렵 삼성물산 쪽이 주주명부폐쇄를 앞두고 다급했다는 점, 1대 0.35의 합병비율을 고려하면 삼성물산 주가가 그날 제일모직 주식에 비해 20% 가량 고평가된 상태였다는 점 등을 근거로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의문을 던지고 있다.
KCC는 지난 10일 오후 삼성물산이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 899만주(5.76%)를 전일 종가인 주당 7만5000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다음 달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과 표 대결을 앞둔 삼성물산의 백기사로 자청하고 나선 것이다.
엘리엇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비율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불리하다는 이유로 주총에서 반대의사를 표명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삼성물산 경영진 입장에서는 우호 지분 확보가 시급한 상황이었다.
KCC의 등장으로 삼성물산과 엘리엇의 경영권 분쟁에서 삼성 측이 일단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 삼성물산 주가는 11일과 12일에 걸쳐 8.8% 곤두박질쳤다.
문제는 KCC의 주가도 함께 떨어졌다는 점이다. 6743억원을 들여서 삼성물산 주식을 샀는데 이틀 만에 593억원대의 평가손실이 발생했다.
이에 몇몇 포털사이트의 KCC 종목 토론게시판에는 "왜 삼성에 KCC가 끌려 다니는지 모르겠다", "경영진의 명백한 배임 행위"라는 항의성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도 KCC가 삼성물산의 자사주를 할인 없이 제돈 주고 산 것에 의문을 표한다. 대량매매로 주식을 처분하는 경우 대부분 1~10%의 할인율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이후 이뤄진 주요 매각 사례를 봐도 마찬가지다. 거래량 대비 비중이 작거나(외환은행) 주식스왑을 한 경우(엔씨소프트)가 아니면 할인해서 매각했다.
게다가 자사주 매각 당시 당시 급한 쪽은 삼성물산이었다. 11일까지 자사주를 매각해야 다음 날 주주명부폐쇄에 앞서 우호지분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상황상 삼성물산 측이 KCC에 비해 다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매매가격을 전일 종가로 결정된 것이 합당한가에 대해서는 충분히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어느 정도 디스카운트를 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고 말했다.
밸류에이션 측면에서도 의문이다. 합병 이후 삼성물산 주식 1주가 제일모직 주식 0.35주와 교환될 예정이므로 10일 제일모직 종가 17만8500원에 0.35를 곱하면 6만2475원이 적절한 가격이다. 무려 20%나 비싸게 주고 산 것이다.
현대증권 전용기 연구원은 "신사업이나 배당 쪽에 유보금을 사용하기를 바라는데 그렇지 못해 실망스러워 하는 것 같다"며 "합병되는 제일모직 주가를 고려했으면 보다 저렴하게 살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KCC 관계자는 "삼성물산 지분참여 및 주주총회 의결권 행사를 통한 시너지 제고 및 전략적 제휴가 지분취득의 목적"이라며 "매매 가격과 관련해서는 특별히 언급할 사항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삼성물산과 KCC 사이의 이면계약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하지만 삼성물산 측은 "풋백옵션 등 이면계약은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뉴스핌 Newspim] 김선엽 기자 (sunu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