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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서거] 금융실명제 도입 "경제정의 세워"... IMF 위기 '오점'

기사등록 : 2015-11-22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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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한기진 기자]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재임 기간중 가장 큰 업적은 금융실명제 도입이다. 그러나 임기 막판 IMF 외환위기로 나라 경제가 크게 흔들렸다는 점은 큰 오점이다.

[사진공동취재단]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에 김 전 대통령 영정사진이 놓여 있다.
김 전 대통령은 "변화와 개혁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경제개혁 의지가 뚜렸했다. 특히 가명이나 차명 거래가 각종 금융비리사건은 물론 정치 부패사건의 원인이라는 지적이 지속되자, 금융실명제 도입 필요성에 대한 여론이 높았다.

김영삼 정부는 집권 초기 8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업고 금융실명제를 도입하며 부패 차단과 과세 형평성 확보에 팔을 걷어붙였다.

김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1993년 8월 12일 '대통령긴급재정경제명령 16'호 발동을 통해 전격 시행했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담화문에서 "금융실명제를 실시하지 않고는 이 땅의 부정부패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없고, 정치와 경제의 검은 유착을 근원적으로 단절할 수 없다"고 실시 배경을 설명했다.

이에 앞서 김 전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자신과 가족들의 재산을 전격 공개했다. 공직자들의 비리를 차단하고자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 제도 도입을 위해 솔선수범한 것이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이것이 역사를 바꾸는 명예혁명”이라며 공직자들의 재산공개를 종용했고 이에 고위공직자들의 재산 공개가 자리 잡는 기틀이 마련됐다. 김 전 대통령은 또 91년 이후 실시되던 지방자체제도를 확대해 95년 7월부터 특별시와 광역시직할시장, 도지사 및 시장, 군수까지 주민들이 직접 선거로 선출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금융실명제로 시작된 경제개혁은 부동산 거래 실명제로 이어졌다.

금융실명제법 도입으로 부동산에 자금이 쏠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자 투기를 막으려고 1995년 1월 6일 부동산 실명제 실시 계획이 발표됐고 발의부터 입법까지 3주 만에 신속하게 이뤄졌다. 

실명제로 경제 투명화를 꾀한 김영삼 정부는 우리나라 경제 규모가 커지고 산업구조가 고도화되면서 정부의 규제가 민간부문의 발목을 잡는다는 인식으로 규제개혁에도 나섰다. 기업창업·공장입지, 자금조달, 시장진입 관련 행정 절차가 크게 간소화됐다.

대외적으로는 임기 전반기 빠른 경제 성장과 적극적 시장개방을 바탕으로 1996년 12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점도 업적으로 꼽힌다.

정부 차원에서 OECD 가입을 역점 사업으로 정하고 가입 협상을 벌여 성사시킨 일이었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는 OECD 가입을 계기로 경제개혁·개방 정책에 피치를 올렸지만 1997년 1월 재계 14위인 한보그룹 계열사인 한보철강 부도를 계기로 대기업 연쇄 부도 사태를 맞았다. 같은 해 7월 기아자동차 도산 사태 이후 쌍방울그룹, 해태그룹, 고려증권, 한라그룹이 차례로 쓰러졌다. 1997년 한 해 동안 부도를 낸 대기업의 금융권 여신만 30조원을 훌쩍 넘어서면서 나타난 신용 경색과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졌다. 결국 외환보유액이 바닥이 나자 김영삼 정부는 1997년 11월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해 모라토리엄(대외채무 지불유예) 선언을 가까스로 면했다.

이 때문에 김 전 대통령은 임기 막판 국가를 외환위기로 빠트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참으로 송구스러울 뿐"이라며 난국 타개에 힘을 합쳐달라고 국민에게 호소했다.






[뉴스핌 Newspim] 한기진 기자 (hkj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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