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영태 기자] 전라남도는 대한민국 국가대표 ‘농도(農道)’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로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지자체다. 이 지사는 2009년에 펴낸 <食전쟁-한국의 길>이라는 책에서 “농촌을 살리지 못하면 우리는 역사의 공동 피고인”이라고 규정했다. 전남을 이끌어가는 도백으로서 농촌 경제가 붕괴되고 있는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이 지사는 “한국 농업의 경쟁력을 살리면서 농민과 농촌이 붕괴되지 않도록 공동체를 유지하고 농민의 생활을 보장해드리는 것이 말은 쉽지만 쉽지 않은 문제다. 전자와 후자가 충돌하는 경우도 있고 개방화 시대를 탓하기만 해서는 개방화 시대를 이겨낼 수도 없고 막을 수도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개방화 시대를 방어적으로 대처할 것이 아니라 우리도 공격의 기회를 찾아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더구나 최근에 중국이 한국산 쌀, 김치, 삼계탕에 대해서 수입의 문호를 열겠다는 의향을 밝혔고 중국의 1가구1자녀 원칙이 수 십 년 만에 포기되고 1가구2자녀 정책이 채택됐으니까 이것을 한국 농업의 기회로 봐야 될 거다. 이런 기회도 활용하지 못하면서 농촌, 농업 이야기를 한다는 건 공허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 한국 농업 내부의 그만한 역량이 있느냐 인데 굉장히 충분치가 않다. 아직도 의존체제를 못 벗어나고 그 의존체제가 불가피한 측면도 있고 많은 고민이 있다”고 털어놨다.
과연 중국이 한국 농업을 살릴 활로가 될 수 있을까? 이 지사는 “중국이 기본적으로 식량부족 국가다. 한국은 중국이 수출만 하는 나라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경작지 면적 전체로만 보면 세계 4위인데 국민 1인당 경작지 면적은 126위다. 말하자면 중국 14억 인구가 먹고 살기가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주곡을 비롯한 몇 가지 주요 식량은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게 중국이다. 게다가 중산층의 증가에 따라서 안전식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에 그 언저리에 한국 농업의 기회가 숨어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쉽진 않겠지만 중국의 경제발전과 한국 농업의 고급화 전략이 맞물린다면 불가능한 전략도 아닐 것이다. 이 지사는 “(중국이) 지금은 돈을 많이 벌어서 세계 최대의 식량 수입국이 되었기 때문에 그 많은 인구가 굶지 않고 먹고 사는 것이지 자급자족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시카고 곡물 시장의 최대 큰 손이 중국”이라고 덧붙였다.
◆ 이 지사가 ‘엄지족’이 된 이유이낙연 전남지사가 지난 19일 뉴스핌과의 단독인터뷰에서 휴대전화 두 개를 들어보이며 엄지족이 된 일화를 설명하고 있다.<사진=김학선 기자>
이 지사는 문자를 이용해 인맥관리를 잘 하는 것으로 소문났다. 그래서 ‘엄지족’이란 별명을 얻었다. 휴대전화에 저장된 지인이 얼마나 되는지 물었다. “휴대전화가 두 대 있는데 정확히 모르겠다. 각각 1만명 가까이 될 텐데 아는 사람이 겹치고 중복돼 있다. 제 짐작에 전화 2대에 1만4~5000명 정도가 입력되어 있지 않을까 추정한다.”
60대 중반인 이 지사가 엄지족이 된 배경이 궁금했다.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활용은 여러 사람에게 동시에 문자를 보낼 필요가 있을 때 쓴다. 제가 2004년에 박준영 도지사가 첫 출마했을 때 선거기간 내내 선거대책위원장 중의 한 사람으로 찬조연설을 하고, 선거가 끝나자마자 목수술을 했다. 성대결절 수술을 했는데 이 수술을 하면 한 달 동안 목을 써서는 안 된다. 그래서 목을 안 쓰고 문자로 전화에 대한 응답을 했다. 그러다보니까 선수가 됐다. 고통의 시간이 오히려 저에게 좋은 자산을 남겨준 거지요. 그런 인연이 있다.”
이 지사는 국회의원 시절 적을 만들지 않는 유연한 성품을 갖고 있어 ‘젠틀맨’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젠틀맨이란 별명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없을까?
“2011년 국회의원들 사이에 만들어진 국회를 빛낸 ‘바른 언어상’이 처음 생겼다. 첫 해 ‘바른 언어상’에 세 가지가 있었다. 가장 위가 으뜸상이다. 그 으뜸상을 박근혜 의원과 제가 공동수상했다. 교수 10명, 대학생 100명이 1년분 국회 회의록과 동영상 모든 것을 갖다 놓고 검증을 했다. 채점 기준 따라서 점수를 매겨야 했는데 점수는 제가 박근혜 의원보다 더 높았었다. 굉장히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저는 신사는 아니지만 바른 말을 하려고 노력은 한다.”
이 지사가 자주 가는 전남의 명소는 어디일까? “산이 낮고 야트막한 언덕배기가 늙은 어머니 같은 곳을 드라이브하기를 좋아한다. 예를 들면 무안의 현경면, 해제면 쪽으로 가다보면 그런 곳이 10km가 이어진다. 굉장히 한국적이고 평화롭고 푸근하다. 어머니의 가슴 같은 그런 곳이다.”
또한 “굉장히 규모가 크지만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제가 사랑하는 곳으로는 완도수목원을 꼽는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넓은 수목원이다. 육지에서 유일하게 난대림이 있는 수목원이다. 거기에 50만평 규모의 동백 숲 단지를 조성할 계획도 갖고 있다. 꾸미지 않은 그냥 내버려 둔 자연상태의 숲을 볼 수 있는 그런 곳”이라고 강추했다.
전남을 찾는 중국 관광객 등 외국인은 물론, 내국인들에게도 추천할 여행코스로는 “여수의 금오도, 완도 청산도, 신안 증도 이 세 곳을 추천하겠다”며 “여수 금오도는 비렁길이 유명하다. 비렁이라는 것은 벼랑의 사투리로 절벽이란 뜻이다. 청산도는 대한민국 최초의 슬로시티다. 서편제를 촬영했던 곳이다. 신안 증도는 엘도라도라고 하는 유럽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리조트가 조성되어 있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좋아하는 맛집을 묻자 “맛집은 너무 많다. 각 시군마다 있다. 함부로 말하면 안 될 것 같다”면서도 한 곳을 찍어달라고 고집하자 “제가 어디를 좋아한다고 하기보다는 제 며느리가 아이를 가졌을 때 데리고 갔던 곳이 장흥 삼합집”이라고 추천했다.
이 지사는 “목포 삼합은 홍어와 돼지고기와 김치인데 장흥삼합은 한우고기와 키조개와 표고버섯이다. 제 손녀를 가진 며느리에게 권유했던 집, 맛집이냐 뭐냐 단골집이냐 따지기 전에 아이를 가진 며느리에게 먹여주고 싶었던 음식이 그것”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어 “장흥에 있는 한우 고깃집에 가면 대체로 그렇게 해준다. 몇 군데 있는데 원조가 탐마루일 거다. 제주도를 탐라국이라고 불렀잖아요. 탐라국으로 가는 나루라고 해서 탐진강인데 그 탐진강 변에 있는 마루라고 해서 탐마루다. 거기가 장흥삼합의 원조라고 주장하고 있는 곳”이라고 부연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농도를 이끄는 도백으로서 고민은 많지만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보겠다는 이 지사의 신념이 왠지 믿음직스럽게 느껴진다. 이 지사에게 다음에 찾아오면 장흥삼합을 맛보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전남도청을 떠났다.
10년 전 광주광역시에서 전라남도 무안군으로 옮긴 새 전남도청 청사 전경.<사진=김학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