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박민선 기자] 사모펀드 시장의 문턱이 크게 낮아지면서 새로운 시장 형성에 대한 기대감이 무르익고 있지만 성급한 낙관론은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은 최근 사모펀드 관련 규제를 완화하면서 헤지펀드 운용사를 기존 인가제에서 등록제로 전환하고 모든 증권사에게도 시장의 문을 전면 개방키로 했다. 일부 증권사들은 새로운 '먹거리' 가능성에 대해 검토에 착수했고, 헤지펀드 전문 투자자문사들은 속속 무대에 오르는 상황이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한국형 헤지펀드 한계가 해소되지 않는 상황에서 증권사들이 공격적인 진출을 하는 것은 또 다른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신중한 접근을 당부하고 있다.
2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NH투자증권을 비롯해 KDB대우증권, 삼성증권, 미래에셋증권, 신한금융투자, 키움증권 등은 사모펀드 시장 진출을 두고 내부 검토가 한창이다. 업계 차원에서는 금융감독원 주도로 금융투자협회 TF(태스크포스)도 구성했다.
다만 사모펀드 진출을 검토 중인 증권사들 사이에도 미묘한 온도차가 있다. 인수합병(M&A) 실적이 있는 NH투자증권은 앞서 사모펀드 겸업이 허용돼 있어 이를 기반으로 한 신성장동력을 마련한다는 계획이지만 대부분의 증권사들은 '기초적인 검토 수준'에 그치고 있다. "시장 확대에 대한 기대감이 낮아 공격적인 진입은 없을 것"이라고 답한 증권사들도 있었다.
이처럼 금융투자업계가 헤지펀드 시장에 대해 경계를 보이고 있는 이유는 ▲ 대차거래 시장의 여건 부족 ▲ 검증된 헤지펀드 운용역의 부재 등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코스닥 시장에서 최근 3개월간 대차거래내역 상위 10개 종목은 셀트리온, 다음카카오, 서울반도체 등 큰 종목들이다. 이들 비중이 전체 중 35.58%에 달하고 있다. 평균 대차거래 잔고는 51조 가량으로 전체 시장 규모로만 봤을 때 현재 3조원 규모의 헤지펀드 시장을 커버하기에는 무리없는 수준이지만 시장 확대시 이 역시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숏할 수 있는 종목이 부족하거나 대차시장 규모가 작아 '롱' 온니(only) 트레이딩에 의존하게 된다면 헤지펀드로서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며 "결국 폭락시 자동방어가 되지 않는 일반 펀드들과 비슷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헤지펀드 운용에서 안정적인 트랙레코드를 쌓아온 운용역들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도 발목을 잡는 부분이다. 브레인자산운용과 트러스톤자산운용 등은 한발 앞서 헤지펀드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최근 2년간 성적표는 시장 대비로도 크게 언더퍼폼하며 '손실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11월 현재 브레인자산운용의 '백두 전문사모투자신탁 1호'는 연초 이후 -14.49%의 수익률을 기록 중이며 '한라 전문사모투자신탁 1호' 역시 -15.45% 수준의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의 '탑건 코리아롱숏 전문사모투자신탁 제1호' 역시 -8.34% 수준의 손실을 보였으며 동기간 '탑건 멀티스트레티지 전문사모투자신탁 제1호'의 수익률도 -6.84%에 그쳐 시장(5.5%) 대비 10%포인트 이상 언더퍼폼 중이다.
이같은 성과 부진은 설정액 감소로 이어지면서 2년전 6500억원 규모에 달하던 브레인자산운용의 헤지펀드 설정액은 절반 수준인 3200억원 수준으로 줄어들었고 트러스톤자산운용도 1년 사이 600억원 이상 설정액이 감소했다.
그 외에도 자기자본으로 내부 인큐베이팅을 거친 결과 자체적으로 헤지펀드 계좌 폐쇄로 결론 내린 자산운용사들도 적지 않아 시장내 '회의론'이 짙어지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현재까지 퍼포먼스를 보면 제대로 된 헤지펀드 운용스킬을 가졌다고 볼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며 "최근 안다자산운용이나 하이자산운용 등은 투자범위를 아시아권까지 확대하면서 그나마 양호한 수준을 보이고 있지만 한국형 헤지펀드의 활성화는 환경 조성이 선제되지 않는 한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투자자문사 대표는 "국내에 헤지펀드라는 것을 운용해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면서 "결국은 헤지펀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큰 혼란이 올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수익구조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는 증권사들 입장에서 신성장동력 마련을 위해 다방면에서 검토할 수 있다"면서도 "시장에 대한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진출했다가 수익률이 악화될 경우 고객 신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감안돼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뉴스핌 Newspim] 박민선 기자 (pms071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