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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문의 風流여행기] 말없이 정상을 향해 오르는 담쟁이, 국악인 송문선

기사등록 : 2015-12-07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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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 中


흔히 국악 가수들은 자신의 곡 이전에 전통으로 구전돼 오는 곡들을 많이 부른다. 전통 곡의 제목으로 가수의 타이틀이 정해지기도 한다. 가수들의 곡에 대한 갈증과 갈망은 국악의 대한 투자로 이어지기 이전에 시장성을 판단해 트로트 음악으로 쉽게 전향되기도 한다. 시장경제 사회에서 국악에 대한 애정만으로 대중음악에 맞서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2010년, 어느 날 국악가요 '담쟁이'가 발표됐다. 곡을 노래한 가수는 당시 국립전통예고에 재학 중이던 송문선이라는 학생이었다. 자신의 곡을 앞세워 국악인으로 당당히 대중음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가수다.

2015년 수많은 활동으로 바쁜 그녀를 처음 만났던 건 한 여름 이태원의 카페에서였다.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의 촬영장으로도 유명한 이 카페엔 밥 말리의 음악이 쉬지 않고 흐르고 있었다. 자메이카의 레게리듬이 한여름 매미 소리처럼 익숙하게 귓가를 맴돈다고 생각했다. 우리 국악 속 여름과 어울리는 곡은 뭐가 있을까 생각할 때 그녀가 나타났다. 풍류여행기에도 여러 차례 언급됐던 동리 신재효, 예능인이 갖추어야 할 조건이 바로 머릿속에 떠올랐다. 인물치레부터 너름새까지. 국악 음악에 대한 대화가 시작됐다. 레게리듬에서 벗어나 '담쟁이'가 귓가를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송문선은 충청북도 청추 출신으로 금천초등학교 3학년 시절 아름다운 가야금 소리에 이끌려 국악을 시작하게 됐다. 가야금 연주에도 재능이 보였는지 선생님은 그녀를 이끌고 국악원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도왔다 한다. 가야금에서 가야금 병창, 판소리 등 선배들의 전통 곡을 들으며 자신도 꼭 저 소리를 배우고 말겠다고 다짐했다는 송문선은 서울국악예술중학교,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에서 판소리를 전공했다. 이후 중학생 때부터 경험한 음악극의 좋은 기억을 바탕으로 중앙대학교에 진학해서는 노래 연기 전공을 선택했다.

자신의 전공에 대한 답변을 할 때면 송문선의 눈빛은 강하게 빛났다. 음악에 대한 대화를 더 진지하게 나눠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후 다시 한 번 그녀를 이태원 카페에서 만났다. 만남이 조금은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을까. 그녀는 전보다 더 겸손하고 더 어렵게 답변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담쟁이라는 타이틀곡에 대한 대화가 시작됐을 때였다. 쉽게 첫 마디를 열지 못했고 한참을 고민했다.

"'담쟁이'는 저에겐 너무나 특별합니다. 저를 아시는 분들은 저를 보면 항상 담쟁이, 담쟁이 하시곤 합니다. 심지어 어릴 때 냈던 음반의 타이틀곡이 '담쟁이'가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웃음) 다른 곡들보다 애정이 많았고, 애정이 많은 만큼 쉽게 부르기 힘들었어요. 어릴 때라 가사에 대한 디테일한 해석은 너무나 부족했지만, 가사를 보면 마지막에 '담쟁이'는 결국 그 벽을 오른다는 구절대로  이 노래가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가사를 생각하면서 이 노래를 부르면 저도 항상 힘을 얻어요.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시는 이 곡은 정말 저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아주 감사한 곡입니다."

송문선 하면 바로 나오는 곡 '담쟁이', 흔히들 가수는 자신의 히트 곡을 따라간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일까 송문선은 이후 쉼 없이 최고의 국악인을 향해갔다. 최근엔 광복 70주년 기념 음악회 '아리랑 페스티벌'에 명실상부 최고의 드라마 음악감독인 지평권 감독의 '강원·정선 아리랑'으로 무대에 서기도 했다. 특유의 울림이 있는 지 감독의 곡으로 다시 한 번 무대 위에서 부르고 싶다는 송문선. 그녀는 도전하고 싶은 것이 또 있다고 했다.

"'춘향가', '심청가', '남도민요' 외에 또 도전하고 싶은 것은 경기민요예요. 제대로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늘 있어요. 어렸을 때 판소리를 전공했다하면 놀라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판소리를 하면 목소리가 걸걸하거나 탁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그런 거 같아요. (웃음) 고등학생 땐 일주일에 한 번 실기과목으로 경기민요를 배웠거든요. 판소리와는 또 다른 매력을 느끼기도 했고, 남도발성 외에 저에게 꼭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해요."

쉬지 않고 도전을 생각하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 깊다. 던지는 질문마다 고민하고 쉬이 답변하지 못하는 송문선을 보며 마지막으로 물어봤다. 관객과 함께할 때 무엇에 가장 집중하는지 궁금했다.

"저는 빼어난 말솜씨를 가지지도 않았고, 퍼포먼스로 보여져야하는 무대들을 즐겨하는 것도 아닌지라…다만 제가 집중하는 것은 그 노래에 대한 정서예요. 느껴지는 감정들이 관객에게 온전히 전해졌으면 하거든요. 찰나의 교감이라고 할까요. 그 부분에 집중해요. 오롯이 전통이 아니더라도, 국악 곡을 편안하게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김광석, 이선희님의 노래를 들을 때 느껴지는 정서처럼요. 울림이 있고 따뜻한 노래로 감동을 부르고 싶습니다."

송문선과의 만남이 지난 후 최근 이태원 거리에서 담쟁이를 보았다. 겨울이라 바스러지게 마른 담쟁이를 보며 걱정 돼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풍류 여행기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음악에 대한 대화를 정리하며 송문선은 국립창극단 작품을 연습하고 있다고 했다. 다시 사뿐히 담을 타고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역시 기우였다. 2015년 이 겨울, 송문선의 국악이란 늘 파랗고 굵은 줄기의 여름 담쟁이였다. 오늘도 저 위로 오르고 있을 뿐이었다.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02-794-8838,  sm29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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