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글로벌 패닉장에 무섭게 치솟고 있는 엔화 때문에 일본은행(BOJ)의 추가 완화 압력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하지만 섣부른 결정은 오히려 정책 한계와 신뢰 상실만을 초래할 수 있어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21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구로다 총재에게 정책 신뢰도는 그가 가장 중점적인 목표로 내세운 디플레이션 타개에 핵심 요인이지만 현 상황은 중대한 신뢰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초부터 금융시장 전반에 리스크 회피 심리가 확산되면서 대표적 안전 자산인 엔화 가치는 빠르게 오르고 있다. 달러/엔 환율은 20일 한 때 115엔 수준까지 밀렸다가 현재는 117엔 수준으로 회복된 상태다.
달러/엔 환율 1년 추이 (엔화 가치와 반대) <출처=블룸버그> |
엔화 가치가 치솟다 보니 일본증시는 본격 약세장에 진입했고 기업들의 실적 불안과 경제 성장 우려는 깊어지고 있다. 배럴당 20달러선까지 밀린 저유가로 제로 수준에 발이 묶인 일본 인플레이션도 추가 완화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러한 비상 상황에 시장은 오는 28일과 29일 열릴 통화정책회의에서 BOJ가 추가 완화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익명의 정부 관계자는 BOJ가 추가 완화에 나설 여건이 조성됐다며 "조치가 나오지 않으면 아베노믹스의 중대한 프레임워크라 할 수 있는 인플레이션 기대감 형성에 심각한 타격이 초래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메이지야스다 생명보험 수석 이코노미스트 고다마 유이치는 "BOJ가 다음주 회의에서 추가 완화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신뢰도가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완화가 너무도 당연해 보이는 상황에서 동결 결정이 내려지면 은행이 정책 한계에 부딪혔거나 무능하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디플레이션 타개를 위해 뭐든지 하겠다던 구로다 총재 발언에 대한 신뢰도는 이미 줄고 있는 상황이다. 작년 10월과 12월에도 일본 경제가 침체에 버금가는 암울한 상황이었음에도 BOJ의 대응은 시장 예상보다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 구로다 위협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출처=신화/뉴시스> |
추가 완화의 당위성과 싸늘해지는 전문가 시선에도 구로다 총재가 섣불리 완화 카드를 꺼낼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시장에서는 이미 BOJ의 완화 정책이 한계에 부딪히고 있으며 대규모 자산매입 확대에 나설 경우 시장 혼란이 초래될 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오리엔탈 이코노미스트리포트 수석 에디터 리차드 카츠는 BOJ가 딜레마에 빠졌다며 "추가 완화가 오히려 통화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통화정책을 제시했는데 효과가 없으면 투자자들은 BOJ의 실탄이 바닥났다고 결론 내리고 추가 위기가 발생해도 구로다 총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JP모간 수석 이코노미스트 간노 마사아키는 "BOJ가 이번이 마지막 완화라는 인상을 심어주지 않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엔고로 불안한 투자자들을 진정시키겠다고 추가 완화에 나섰는데 일본 국민들과 기업들 사이에서 낙관론이 형성되지 않을 경우의 수도 문제다.
이코노미스트들은 구로다 총재가 이번 회의서 정책을 동결하고 그로 인해 엔화 가치가 더 오르는 상황이야 말로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지적했다. 이 경우 일본 기업 부담도 늘고 임금 성장세도 가로막아 아베노믹스는 더 큰 위기에 봉착할 것이란 분석이다.
한편, 전날 시바야마 마사히코 아베 신조 총리 자문은 "최근 주식 및 환율 움직임에 대해 일본은행(BOJ)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은 이르다"고 발언했다.
이 발언 이후 달러/엔은 116엔 중반선까지 밀리고 닛케이 주가지수도 크게 반락했다.
크레디아그리콜 사이토 유지 외환전략가는 "시바야마의 논평이나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의 구두 개입 부재로 주식 매도세와 엔화 매수세가 강화됐다"고 지적했다.
한편, 22일 오전 도쿄시장의 닛케이 주가지수는 3% 중반까지 급등했다. 달러/엔은 118엔 부근까지 오르기도 했다. 전날 국제유가 반등에다 유럽중앙은행(ECB)의 추가 완화 시사로 뉴욕 주가가 상승한 것도 호재였지만, 니혼게이자이신문이 BOJ 역시 추가완화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돌고 있다고 보도한 영향이 컸다.
[뉴스핌 Newspim] 권지언 시드니 특파원 (kwonji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