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승환 기자] 덩샤오핑(鄧小平)과 함께 중국 개혁개방의 주역으로 꼽히는 위안겅(袁庚) 전 초상국(招商局)그룹회장이 31일 새벽(현지시간) 광둥성(廣東) 선전(深圳)에서 노환으로 숨졌다. 향년 99세.
그는 중국 개혁개방의 최전선인 선전 셔커우(蛇口) 공업지구를 설계하고 추진한 인물이자 중국 최고(最古)의 민족 해운기업 초상국 그룹의 2대 경영인이다. 그가 생전에 남긴 "시간은 돈이다. 효율은 생명이다"라는 말은 중국 개혁개방을 상징하는 구호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그는 지난 2012년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로부터 런중이(任仲夷) 전 광둥성 당서기, 푸젠성(福建) 전 당서기 샹난(項南) 등과 함께 '중국 개혁개방의 선봉'으로 꼽혔다. 앞서 2008년에는 파이낸셜타임즈가 선정한 중국 개혁개방 30년 10대 인물에 덩샤오핑과 함께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군인 출신으로 공산당에 투신한 위안 전 회장은 초상국 그룹의 이사장 자리를 맡기 전까지 호치민의 군사 고문, 자카르타 주재 총영사 등을 역임했다. 문화혁명 기간에는 간첩으로 몰려 7년간 베이징에 투옥되기도 했다.
위안겅 전 초상국그룹 회장 <사진=바이두> |
위안 전 회장의 가장 큰 업적은 선전경제특구의 핵심지역인 셔커우 공업구 건설 프로젝트를 설계하고 완성한 것이다.
1978년 10월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초상국 그룹 이사장을 맡게 된 위안 전 회장은 광둥지역의 대외개방을 당 중앙에 정식적으로 건의했다. 동시에 홍콩과 가까운 선전에 외국자본을 유치할 수 있는 초상국 공업단지를 건설할 것을 제안했다. 개혁개방의 바람이 불어오기 전인 당시 위안 회장의 제안은 파격 그 자체였다.
1978년 12월18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11기 3중전회에서 위안 전 회장의 구상은 정식적으로 비준됐다. 이듬해 당 중앙으로부터 선전 공업지대 건설 안이 통과되자 그는 불도저처럼 일을 밀고 나갔다. 땅을 매우고 부두를 만들어 교통 인프라를 확충했다. 당시 그가 공업지대로 할당 받은 셔커우는 밀항자들이 모여있는 무법천지였다.
셔커우 공업구 건설과 관련해 위안 회장의 개혁 의지를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근로자들의 작업효율을 높이기 위해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한 것. 그는 시멘트를 운반하는데 한 트럭당 2분(分,1/100 위안)의 인센티브를 걸었다. 55트럭을 초과할 경우에는 2분의 근무 장려금을 추가로 지급했다.
그 결과 셔커우 공업지역 근로자들의 하루 평균 시멘트 운반량을 20트럭에서 80트럭으로 4배 가까이 늘었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한 발상이지만, 이 소식을 접한 당 중앙은 노발대발하며 당장 인센티브 제도 시행을 중지시켰다. 설립된 지 30년밖에 안된 사회주의 국가에서 인센티브 제도는 주자파(走資派,자본주의 추종파)의 전유물로 받아들여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위안 전 회장은 자신의 주장을 견지한 끝에 결국 당국의 허가를 받아냈다.
위안 전 회장은 홍콩 등 외국은행과 기업으로부터 자금을 유치하고 근로자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한 끝에 셔커우를 중국에서 가장 개방되고 발전된 공업지대로 변화시켰다. 입주 기업에 2년새 100개로 늘어나며 선전 경제 특구는 물론 중국 개방개혁의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중국의 한 지역신문은 이와 관련해 "위안 전 회장이 중국 개혁개방의 시작을 알렸다"며 "처음으로 공동 분배의 개념을 깨고, 외자를 유치하고, 부동산을 상품화하고, 인재 시스템을 체계화 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선전이 경제 특구로 발돋움하는 과정에서 위안 회장의 초상국 그룹도 기존의 항운 기업에서 종합 금융 기업으로 빠르게 탈바꿈 했다. 셔커우 공업 지역을 비롯한 선전 경제특구의 경제적 과실로 국유기업인 초상국 그룹의 내실을 다진 것이다.
그는 지난 1992년 75세의 나이로 퇴직하기 전까지 초상은행(招商銀行)과 평안보험(平安保險)을 설립해 중화권 일류 금융기관으로 키워냈다. 그의 재임시절 초상국그룹의 자산은 1억위안에서 200억위안으로 200배 가까이 증가했다.
초상국그룹은 위안 전 회장의 부고가 전해진 지난 31일 홈페이지 메인화면을 검은색으로 바꾸고 애도를 표했다. 화면에는 그가 생전에 남긴 '앞으로 전진하라, 뒤를 돌아보지 마라(向前走,莫回頭)'는 구호가 걸렸다.
중국 최대 주택개발 기업 완커(萬科)의 왕스 주석은 이날 "중국 개혁개방의 선구자이자 시대의 본보기였던 위안 전회장에 대한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뉴스핌 Newspim] 이승환 기자 (lsh89@newspim.com)